나만의 일상을 찾아가는 집 [포토IN]

박미소 기자 2024. 5. 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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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번엔 〈쿵푸팬더〉를 보자." 이성희씨(64)가 영화관을 나서며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 4〉가 너무 잔인해서 눈을 뜨고 보지 못했다던 김금순 활동지원사는 "언니는 그래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잘 보더구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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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씨가 4월30일 서울 강서구의 한 영화관에서 직접 고른 캐러멜 팝콘을 먹으며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다음번엔 〈쿵푸팬더〉를 보자.” 이성희씨(64)가 영화관을 나서며 말했다. 영화 〈범죄도시 4〉가 너무 잔인해서 눈을 뜨고 보지 못했다던 김금순 활동지원사는 “언니는 그래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잘 보더구만”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성희씨와 금순씨는 ‘검정색 재킷을 입은 덩치 큰 남자 배우의 이름이 마동석‘이라거나 ’길가에 핀 분홍색 꽃은 진달래가 아니라 철쭉’이라는 소소한 수다를 떨며, 집으로 가는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렸다.

집에 도착하자, 김금순 활동지원사는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집에서 직접 만든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소고기뭇국과 두부조림, 고등어조림도 식탁 위에 차려놓았다. 소고기뭇국에 들어가는 고기는 성희씨가 직접 마트에서 사온 것이다. 성희씨는 퇴근하는 김 활동지원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주방으로 그릇들을 들고 가 설거지한 다음, 거실 소파에 앉아 빨래를 개켰다.

식사를 마친 이성희씨가 설거지를 하기 위해 빈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빨래를 개고 있는 이성희씨. ⓒ시사IN 박미소

성희씨는 각이 잘 잡힌 옷가지를 들고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서랍장 안, 오와 열이 맞춰진 옷들 사이사이에 개킨 빨래를 가지런히 넣었다. “잘했죠? 나 너무 잘했어”라며 웃고 나선, 핑크색 침구로 꾸민 침대 위에 앉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있을 때 성희씨는 3인1실 방에서 살았다. 침구는 무조건 ‘백색’이었다. 혼자만의 방이 생기자, 성희씨는 침구와 커튼을 평소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직접 골랐다.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에 앉아, 성희씨는 요즘 한창 빠져 있는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이성희씨가 자신의 방에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을 보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25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살던 성희씨는 2020년 9월에 장애인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한쪽 방엔 성희씨가, 반대편 방에는 다른 이웃 주민이 산다. 지원주택에 산다는 것은 서울시의 공공임대주택에서 주거 유지 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산다는 의미다. 지원주택 소속 코디네이터는 입주민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개인별 지원계획을 세워 지원하고, 활동지원사는 이들의 일상생활을 일대일로 지원한다. 그 덕분에 성희씨는 매주 한 번씩 언어재활사의 개별 의사소통 지원을 받고, 주말에는 동네 요가원에서 운동을 하고 뮤지컬 연습을 한다. 주간과 주말에는 각각 활동지원사가 한 명씩 성희씨의 집으로 찾아온다.

이성희씨가 4월27일 버스를 타고 동네 요가원으로 가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활동지원사가 버스에서 내리는 이성희씨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요가 밴드를 활용해 운동하고 있는 이성희씨. ⓒ시사IN 박미소
뮤지컬 연습실에서 발성 연습을 하는 이성희씨. ⓒ시사IN 박미소

지원주택은 서울시의 거주시설 퇴소 장애인 자립지원정책의 일환이다. ‘서울특별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와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탈시설지원조례)’에 근거해 운영된다. 그런데 지난해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등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안을 청구했다. ‘무분별한 탈시설로 지역사회 정착이 불가능한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탈시설조례 폐지안은 서울시의회의 논의와 심사를 앞두고 있다.

성희씨가 이웃 주민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마트에서 장을 보는 이성희씨. ⓒ시사IN 박미소
박종순 활동지원사(왼쪽)가 이성희씨(오른쪽)와 김금순 활동지원사(가운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무조건 탈시설을 해서 대책 없이 내보내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장애 당사자는 지역사회에 사는 여느 시민들처럼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삶을 찾아가는 것이고, 지역사회가 함께 이를 지원하자는 것입니다.” 임소라 코디네이터가 말한 것처럼, 성희씨는 소소하지만 자발적인 일상의 선택 하나하나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꾸민 자신만의 방에 앉아 인터뷰하며 성희씨는 말했다. “(시설에서) 나오길 잘했어. 사는 게 재밌어.”

배웅 인사를 하는 이성희씨. ⓒ시사IN 박미소
이성희씨가 살고 있는 지원주택 거실에 달린 문패. ⓒ시사IN 박미소

박미소 기자 psalms27@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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