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위기는 계속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이종태 기자 2024. 5. 8. 06: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월 위기설’ 이후에도 위기설은 달마다 새로 제기될 것이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철저히 무력하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장에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올림픽파크 포레온) 아파트 공사 현장 모습. 한때 PF 위기를 겪었다. ⓒ시사IN 신선영

올해 초부터 ‘4월 위기’라는 ‘소문’이 악몽처럼 끈덕지게 떠돌았다. ‘부동산 금융’ 부문의 부실이 건설사 줄도산을 거쳐 금융 전반의 위기로 터질 것이라고 했다. 4월인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4·10 총선까지는 부실 개발 사업장 및 건설사들을 지원하겠지만 이후엔 손을 뗄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이 소문은 대중적 불안감과 무력감의 표현이다. 시장은 부동산 부문의 과잉 부채가 쉽게 해결(연착륙)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동산 호황기에 큰돈을 빌린 사업장이 이를 갚지 못하는 경우(부실화)가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의 힘만으론 이 흐름을 멈추기 힘들다. 여론은 그 한계 시점을 4월 총선으로 봤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말 부도 위기를 겪은) 태영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이 개시되었고, 총선은 야당의 승리로 끝났다. 4월 말 현재까지 다른 대형 건설사의 부도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새로운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5월 위기설’이다.

5월도 무사히 지나간다면 6월, 7월, 8월 위기설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웃어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라 불리는 ‘부동산 금융’에 얽힌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PF의 이해관계자는 대략 3개 주체로 분류된다. 첫 번째는,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시행사(개발 전문업체, 재건축조합 등)다. 최소 3~5년 만기로 수백억~수천억 원 규모의 자금을 빌린다. 이를 갚아야 하는 최종 책임자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시행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행·보험사·증권사·저축은행·여신전문금융회사 등)이다. 세 번째는 공사를 실행하는 건설사(시공사)다. 건설사는 공사만 맡은 것이 아니다. 시행사의 대출금 상환도 보증하고 있다. 시행사가 못 갚으면 건설사가 대신 갚아야 한다(증권사가 보증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PF는 흔히 ‘선진 금융 기법’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한국의 PF란 것은 든든한(?) 보증인(건설사)을 매개로 장기 대출이 이뤄지는 관행적 금융거래일 뿐이다.

부동산 경기가 좋고, 금리가 낮으며, 건축 원가가 안정적이면 부동산 PF는 잘 작동한다. 차입자인 시행사가 완공된 건물을 비싸게 팔아 시공사엔 건축비를, 금융기관엔 원리금을 순조롭게 지급하니 모두가 행복하다. 잘 빌려주고 잘 갚는다.

그러나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거나 분양이 어려워지고, 상환(혹은 차환) 부담이 커지면 PF 역시 삐걱거리게 된다. 물건(건물)이 잘 팔리지 않으니 시행사가 금융기관에 돈을 갚기 어렵다. PF 사업장의 ‘부실화’다.

PF 부실화가 곧바로 타격하는 대상은 보증인인 건설사다. 하필 건설 원자재 가격까지 올라 건설사로선 설상가상이다. 시행사 대신 빚을 갚게 되었으니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태영건설처럼 부도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건설사는 여러 개발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데, 일부 사업장만 부실화해도 회사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다른 비교적 ‘멀쩡한’ 사업장들의 공사도 추진하지 못하게 된다. 피해자가 늘어난다. 시행사와 건설사로부터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금융기관 역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다. 수많은 채권·채무 관계로 얽혀 있는 금융기관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PF 위기’는 3대 주체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다.

물론 이는 가능성일 뿐이다. 일부 개발 사업장의 PF 부실이 실제로 건설사 줄도산 및 경제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이어지게 될지는 구체적 상황을 분석해봐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은행이 ‘스트레스 테스트’ 해보니

한국은행이 지난 3월28일 낸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현재 금융기관들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조6000억원이다. 증가세는 2022년 이후 크게 둔화되었다. 그러나 부동산 PF 부실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경기 하락 때문이다. 주택 거래량은 지난해 4분기 들어 둔화되었다. 매매 가격 역시 지난해 7월 이후 잠시 반등했다가 12월부터 계속 하락 추세다. 미분양 물량도 지난해 12월 이후 증가하고 있다.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상환도 위태롭다.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를 중심으로 PF 대출에 대한 금융권의 연체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증권사의 연체율은 떨어졌지만, 이는 회계 서류에서 PF 보증을 대출로 전환했기 때문이지 상환 실적이 개선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커진 리스크가 금융시스템 전반을 위협하게 될까? 한국은행은 이후 가능한 비관적 상황(시나리오) 두 가지를 가정해서 금융기관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시나리오들의 현실화로 손실이 발생했을 때 금융기관들이 그 손실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가졌는지 체크하기 위한 작업이다. 이 테스트의 대표적 성적표가 자본 비율(은행의 자기자본÷예상 손실액)인데, 높을수록 ‘해결 능력이 있다’는 의미다.

첫 번째 시나리오(시나리오 1)는, 금융기관들이 ‘악화 우려’ 혹은 ‘고위험’으로 분류된 개발 사업장에 대출한 금액 전체를 상환받기 어려워지는 경우다. 두 번째 시나리오(시나리오 2)는 좀 더 위험하다. 위험 사업장들의 부실로 건설사 경영 전반이 어려워져 비교적 멀쩡한 다른 PF 사업장의 공사도 중단하게 된다.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시나리오 1보다 더 커진다.

테스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금융기관들의 평균 자본 비율이 시나리오 1에서 내려갔고 시나리오 2에선 더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금융 당국이 정한 ‘최소 기준(규제 비율)’보다는 훨씬 높았다. 예컨대 저축은행의 평균 자본 비율은 14.1%(현실)에서 12.6%(시나리오 1), 11.4%(시나리오 2)로 각각 떨어졌지만 규제 비율(7~8%)에 비해선 월등히 높다. 규제 비율은,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규제 당국이 인정한 수치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예외적으로 안 좋은 상황이 닥쳐도 “금융업권의 자본 적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감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라고 결론지었다. 위기가 금융시스템 전반을 당장 몰아칠 것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뇌관은 제거되지 않았다. 더욱이 이 뇌관은 한국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다. PF 위기의 근본적 해결 방법은 부동산 경기 회복이다. 금리인하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인하는 올해 하반기로 늦춰질 것이라는 예측이 유력하다. 심지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온다. 더욱이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운이 진정되지 않으면 건설 원가 역시 내리기는커녕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연준의 금리인하 및 지정학적 위기(전쟁)가 해소되기까지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기고 PF 부실화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위기설은 달마다 새로 제기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우연적 사고(예컨대 대형 건설업체의 부도)가 발생하면 공포가 시장 전체를 지배하면서 위기를 공황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이런 국면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부동산 PF에 대한 불신과 공포가 더 깊어지고 다른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시장 전반에 신뢰감(‘빌려주면 상환받을 수 있다’)을 심어줘야 한다. 좀 잔인한 이야기이지만, 외부의 부정적 사건(연준의 금리인하 지체 및 전쟁)이 해소될 때까지, 한국 정부는 ‘신뢰’의 버팀목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