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당’으로 쪼그라든 보수, 재건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혜원 기자 2024. 5. 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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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총선을 거듭할 때마다 수도권에서 참패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 선거에 나서는 사람도 드물다. 보수정당 최전성기였던 2008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4월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제22대 총선이 남긴 과제들’ 토론회가 열렸다.ⓒ시사IN 조남진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108석을 얻었다. 이 중 수도권 의석은 19석에 그친다. 부산·울산·경남 34석, 대구·경북 25석, 충청 6석, 강원 6석에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18석이다. 지역구 의석 중 영남 비율이 65.6%에 달한다. 이것은 위기인가?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남구갑)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참패는 했지만 4년 전보다 의석은 5석이 늘었고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로 줄었습니다.”

사실이다. 그런데 2020년 총선 당시에도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은 수도권에서 16석밖에 얻지 못했다. 민주당이 103석을 가져갔다. 이번 총선 수도권 성적(국민의힘 19석, 민주당 102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코로나19 시기의 특수성을 말하기에도 옹색하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수도권 의석은 2016년 35석, 2012년 43석이었다. 이쯤 되면 수도권 참패가 ‘패턴’으로 고착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체 지역구 의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수도권(현재 122석)에서 선택받지 못한 정당이 ‘전국 정당’이 되기는 어렵다.

위기라면 수습해야 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총선 이튿날인 4월11일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한데 국민의힘은 후임 비대위원장을 구하는 데서부터 난항을 겪었다. 결국 박근혜 정부 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낸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77)가 새 비대위원장에 올랐다. 황우여 전 대표는 6월 말~7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 새 당대표를 뽑을 때까지 당을 이끌어야 한다.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사실상 정계 은퇴했던 인물이 당의 ‘혁신’을 이끌 수 있을지 물음표가 나왔다. 이번 비대위가 ‘관리형’이 아닌 ‘혁신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윤상현 의원(인천 동구미추홀을)은 황우여 비대위원장 지명을 두고 “어떤 혁신의 그림을 그려나갈지 잘 모르겠다”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국민의힘은 당초 5월3일 원내 의원들을 대표하는 직책인 ‘원내대표’를 뽑으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나서겠다는 사람이 없자 선거일을 5월9일로 미뤘다. 원내대표로 ‘친윤석열 대통령(친윤) 핵심’이라 불리는 이철규 의원(강원 동해태백삼척정선) 단독 출마설이 불거진 후 “패장(敗將)이 나와서 원내대표 한다고 설치는 건 정치 도의도 아니고 예의도 아니다(홍준표 대구시장)” 등 공개적인 비판이 제기되자 부담을 느낀 당 지도부가, 더 많은 후보자가 출마하도록 미룬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철규 의원은 총선 과정에서 당 인재영입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을 맡았다.

‘친윤 원내대표’는 괜찮을까? ‘용산 대통령실과 소통이 편할 것이다’라는 기대와 ‘총선에서 드러난 민의를 거스른다’는 비판이 공존한다. 어느 쪽이든 108석을 가지고 민주당(171석)과 조국혁신당(12석)을 상대로 김건희 특검법 같은 어려운 법안이나 소속 의원 상임위원회 배치를 두고 협상해야 한다. 국민의힘 차기 원내대표는 그 어느 때보다 부담스러운 자리가 되었다. 5월2일 현재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한 사람은 송석준 의원(경기 이천) 한 명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서로 내가 (원내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 봤어도 이렇게 안 나오는 건 근래엔 처음 본다. 이럴 때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당이 침몰하고 있다는 신호다”라고 말했다(5월7일 현재 송석준·이종배·추경호 3명이 출마했다).

원내대표와 호흡을 맞춰 당 전체를 총괄할 ‘당대표’에는 나경원·유승민·안철수·원희룡 등이 꼽힌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5월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윤상현 의원은 원내대표와 당대표 후보 모두에서 거론된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당대표에 나설지도 관심사다. 한 당내 인사는 “한동훈 위원장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내가 윤석열 대통령을 잘 안다’는 것이다. 지난 당대표 선거 때 나경원·안철수가 (윤 대통령에게 사실상 출마 포기를 종용)당한 것을 기억한다면, 한 위원장 스타일상 출마할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의 긴장 관계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당 안팎에서도 한 위원장은 당분간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맞닥뜨린 위기가 단순히 원내대표나 당대표가 누가 되느냐를 넘어서는 ‘구조적 위기’라는 점이다. 자신이 ‘진보’ 성향이라는 응답이 40% 가까이 나오는 4050 세대(이른바 586 세대와 X세대)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고 그들이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이 1차적 요인으로 꼽힌다. 이른바 ‘386 세대’의 막내가 5년 뒤면 60대에 접어든다. 앞으로의 60대 이상 표심은 이전과 전혀 다를 가능성이 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인천 서구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박상수 변호사는 4월22일 열린 ‘2024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 세미나에서 “(국민의힘) 전통적 지지층은 1년에 30만명씩 돌아가시고 있다”라고 말했다.

2008년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이 153석, 민주당 전신인 통합민주당이 81석을 얻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 48석 중 40석, 인천 12석 중 9석, 경기 51석 중 32석을 얻었다(수도권 총 81석).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4월25일 국민의힘이 주최한 총선 평가 토론회에서, 2008년 당시가 보수정당 최전성기라는 데 이견이 없을 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 정두언 의원이 당시 선거를 지휘하며 ‘삼중(三中) 전략’을 이야기했다. 계층적 중산층, 이념적 중도, 지역적으로 영남이 아닌 (중부) 수도권 중심 선거 전략이 성공했다.”

4월10일 총선 개표 방송을 지켜보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 ⓒ공동취재

‘보수 연합’의 붕괴를 자초하다

박원호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국정교과서 파동을 계기로, 탄핵 이전인 2016년 총선에서부터 기존 ‘국가주의적 보수’와 구분되는 ‘자유주의 보수’ 지지자들이 안철수의 국민의당 등으로 이탈했다고 분석해왔다.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2030 남성, 안철수로 대표되는 중도층 일부를 지지 기반으로 만들어 0.7%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으나,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두 사람을 당권에서 사실상 밀어냈다. ‘보수 연합’의 붕괴를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자유주의’를 가장 많이 말하는데, (그 대척점에 있는 언어가 다름 아닌) 공산 진영이다. 자유주의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자유주의를 말하고 있지 않다. … 거대 양당이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남겨둔, 여성·환경·기후·노동·지역 같은 의제들을 자유주의적 가치와 어떤 방식으로 접합시킬지, 그 의제가 가진 고유성을 어떻게 보수의 의제로 만들 건지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을 가지고 준비해야 한다(박원호 교수, 4월25일 토론회 발언).”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나오는 영화 〈건국전쟁〉을 단체 관람하고 ‘86 운동권 청산론’을 내세웠다. 당은 ‘메가 서울’과 ‘경기북도’의 논리적 관계를 제공하지 못했다. 조귀동 ‘정치컨설팅 민’ 전략실장은 “지금 보수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가 뭘 해야 하는지 관점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결코 자연 상태에서 발생하고 유지되지 않는다. 연금이든 노동시장이든 보건의료 시스템이든 국가가 끊임없이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해야 하는데, ‘자유시장 원리’ ‘규제완화’만 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태우는 중산층 육성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했다. 박근혜는 월 20만원 기초연금으로 노인 빈곤 해소에 크게 기여했다. 심지어 (국가 역할 최소화를 외쳤던) MB(이명박)조차도 공공기관 고졸 채용을 주도했다. 진보와 정책 수단이 다를 뿐 국가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언제부턴가 보수는 정치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중하층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살아갈 수 있는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4월29일자 〈조선일보〉 기고에서, 형편이 어려운 시민에게 더 많은 금액을 지급하는 서울시 정책인 ‘안심 소득’을 전국화하자고 당에 제안했지만 호응이 없었다며 “이제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가 됐다”라고 썼다. ‘따뜻하다’는 형용사를 넘어 국가 재정을 누구에게 얼마나 쓸지, 대기업-중소기업과 수도권-비수도권 격차를 어떻게 완화할지 치열하게 논쟁하는 데 보수의 미래가 있을지도 모른다. ‘차기 보수의 얼굴이 친윤인가 비윤인가’보다 훨씬 중요하고 큰 질문이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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