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김밥 한 줄에 5000원 될 수도”… 金값 된 김값에 울상짓는 분식집

민영빈 기자 2024. 5.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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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프랜차이즈들도 가격 인상 러시

“기본 김밥 한 줄 5000원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어요. 간단한 한 끼를 위한 서민 음식이었는데, 가격을 안 올리기엔 너무 힘이 듭니다.”

지난 7일 오후 12시 서울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한 분식집. 이 자리에서 15년째 장사 중인 백 모(53)씨는 급등한 김 가격 소식에 쓴웃음을 지었다. 백씨는 김밥 한 줄에 들어가는 오이, 당근 등 식재료 가격이 올랐을 때도 값을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주변 회사 사회초년생과 단골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는 주재료인 김 가격까지 오르자 “김밥용 김 100장당 8000원짜리가 거의 1만원이 됐다”며 “상승분 전부를 김밥값에 반영할 수는 없어도 어느 정도 가격을 올려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했다.

백씨의 분식집에서 오이, 당근, 맛살, 단무지 등 기본 속재료만 들어간 김밥은 1줄에 4500원이었다. 참치와 마요네즈를 섞은 재료가 추가된 참치김밥은 5500원, 계란과 스팸이 추가된 에그스팸김밥은 6000원으로 가장 비쌌다. 여기에 라면을 하나라도 곁들이면 1만원이 된다.

7일 오후 12시 서울 중구 남창동과 용산구에 위치한 김밥·분식집 메뉴판. /민영빈 기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4월 김밥용 김(중품) 평균 도매가격은 100장당 1만89원으로 작년 같은 달(5603원)보다 80.1% 급등했다. 케이(K)-푸드 열풍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늘면서 마른김 월평균 도매가격이 사상 최초로 1만원을 넘은 것이다. 국내 물량은 재고가 평년의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난달 김 수출 금액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7% 늘어난 1억117만달러(한화 약 1500억원)를 기록했다.

원재료 가격이 오르자 김밥 프랜차이즈업계도 가격 인상에 나섰다. 바르다김선생은 지난달 100~500원 가격을 인상했다. 대표 메뉴인 바른김밥 가격은 기존 43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랐다. 마녀김밥도 3월 가격을 300~400원 인상했다.

아직 김밥 가격을 올리지 않은 프랜차이즈업체도 가격 인상을 고민한다. 김밥천국 관계자는 “김밥 속재료로 가장 많이 쓰는 채소 가격이 올랐고 주재료인 김 가격까지 폭등하자, 가맹점주들로부터 김밥 가격을 올리자는 의견을 받고 있다”며 “언제쯤 가격을 인상하겠다는 걸 확정하진 않았지만 통상적으로 올리게 되면 500원 정도 인상한다”고 했다.

7일 오후 서울의 한 김밥 가게 앞. /연합뉴스

분식집 사장들도 치솟는 식재료 가격에 김밥값 인상 여부를 고심 중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2대째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모(47)씨는 “3년 전에 500원씩 올리고 1년 전에 어묵 가격이 올라서 오뎅김밥만 따로 500원 올렸다”면서도 “이번에 또 올리면 동네 단골인 어르신들 발길이 뚝 끊길 수밖에 없다. 주머니 사정을 다 알지 않나”라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12년째 김밥 장사를 한다는 강모(65)씨도 “더 이상은 못 버틴다. 해외 냉동김밥 인기로 식품업체에서 수출용 냉동김밥을 만드느라 김을 구하는 건 하늘에 별따기다”라며 “단골들에겐 미안하지만 흙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닌 이상 이제는 김밥값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 김밥집에서 만난 직장인 채모(26)씨는 “직장 동료들이랑 자주 김밥을 먹곤 하는데, 이제는 김밥이 아니라 금(金)밥이라는 농담도 던진다”며 “기본 김밥 대신 참치나 불고기, 돈까스 등을 넣은 김밥을 5명이서 먹으면 금방 3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때 1000원짜리 김밥 한 줄이 기본이었는데 물가가 오른 걸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김 수출 호조는 한국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만 서민 밥상 물가 안정을 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김은 지난해 수출액 1조원대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번 김 가격 폭등은 수출 물량이 많아 국내 공급량이 줄어든 탓”이라며 “냉동김밥의 인기로 관련 기업들은 해외 수출 마진을 남기고 있지만, 내수 물량 부족으로 국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김밥값 인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국내 상황을 고려한 공급 조절도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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