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100> 부산요 입학다완(釜山窯 立鶴茶碗)

성현주 부산박물관 유물관리팀장 2024. 5. 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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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묘한 바탕색에 어딘가 어설픈 자세의 새 무늬가 있는 원통형 잔, 일반적인 한국 도자기와는 뭔가 느낌이 다른 이것은 일본의 요청으로 부산요(釜山窯)에서 만든 주문다완(사진)이다.

다만 일본에서 학이 길상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져 다양한 축하행사를 위한 문양으로 사용되어 온 것과 학을 주문양으로 한 입학다완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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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日의 주문으로 부산요서 빚은 도자기

오묘한 바탕색에 어딘가 어설픈 자세의 새 무늬가 있는 원통형 잔, 일반적인 한국 도자기와는 뭔가 느낌이 다른 이것은 일본의 요청으로 부산요(釜山窯)에서 만든 주문다완(사진)이다. ‘고혼타치즈루(ごほんたちづる)’, 즉 ‘어본입학(御本立鶴)’이라 불리며, 원통형 몸체, 살짝 벌어진 구연부, 앞뒷면에 상감된 학 무늬, 둥글게 깎아낸 할고대(割高臺) 굽, 홍색 반점 등이 큰 특징이다.

부산요는 에도막부로부터 조선과의 외교·무역 권한 일체를 위임받았던 대마번주 종가(宗家) 주도로 인조 17년(1639)부터 숙종 44년(1718)까지 약 80년간 부산 두모포왜관 및 초량왜관에 설치·운영된 도자기 가마이다. 가마 운영 당시 대마도에서는 ‘화관다완요(和館茶碗窯)’라 했고, 최근 한국에서는 ‘왜관요(倭館窯)’로 부르고 있으나, 일제강점기 조선 도자기 연구자 아사카와 노리타카가 처음 명명한 ‘부산요’라는 명칭으로 더욱 널리 알려져 있다.

부산박물관 소장 어본입학다완은 초량왜관 시기인 17세기 말~18세기 초 제작된 것으로, 기벽이 얇고 크기는 입지름 10.2㎝, 높이 8.1㎝로 다소 작은 편이나 전체적 형태에 균형이 잡혀 있어 당당한 느낌을 준다. 날개를 접고 서 있는 학 모습을 앞뒷면에 간략히 흑백 상감했는데, 이 학 문양은 에도막부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1604~1651)의 그림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전해져 흥미롭다. 또 에도시대 유명 다인(茶人) 다이묘였던 코보리 엔슈(1579~1647)와 호소카와 타다오키(1563-1646)를 위해 디자인된 다완이라는 일화도 널리 알려졌지만, 당시 사료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또 교토 노무라미술관 소장 입학다완의 상자 첩지(貼紙)에 ‘코보리 엔슈가 정월 3일간 다이후쿠차(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우메보시와 다시마를 넣어 마시는 일본의 새해 축하 차)를 마셨다’는 내용이 있어 다이후쿠차 다완으로 보기도 하나, 이것도 기록 연대가 불분명해 신뢰하기는 어렵다. 다만 일본에서 학이 길상과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져 다양한 축하행사를 위한 문양으로 사용되어 온 것과 학을 주문양으로 한 입학다완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있다.

흙에 섞인 철분이 소성 중 산소와 만나 붉게 발색된 것은 부산요 주문다완에서 흔히 나타나는 특징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다인들은 이러한 붉은 반점을 가리켜 단풍을 뜻하는 ‘모미지(紅葉)’라는 서정적인 명칭으로 불렀다.

‘어본입학다완’이 부산요 이전 시기부터 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객관적인 근거가 불충분하여 두모포왜관 시기 부산요에서 처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초량왜관 시기에도 제작되었으며, 부산요가 폐요(閉窯)된 뒤로는 대마도를 비롯한 일본 본토 각지의 가마에서 모방품이 꾸준히 만들어질 만큼 큰 인기를 구가하던, 부산요 주문다완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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