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남는 장사’ 된 사기범죄, 한국이 호구된 이유

경기일보 2024.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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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는 과연 한국과 미국 중 어디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지 초유의 관심사다. 권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는 가상화폐 ‘테라’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99.99%라는 기록적인 폭락 끝에 개당 10만원이 넘던 코인이 1원 이하로 떨어지며 사실상 깡통코인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만 400억달러(약 54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씨는 11개월간의 도피행각 끝에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됐지만 이후 권씨의 송환을 둘러싼 잡음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한국과 미국 모두 자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권씨를 자국 법정에 세우고자 권씨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몬테네그로 법원은 둘 중 어느 나라가 먼저 송환을 요청했는지를 두고 고심한 끝에 당초 미국으로 결정된 송환지를 한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내 반응은 차가웠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권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40년 정도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한 까닭에 100년 이상의 중형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다행히(?) 기존 하급심 결정이 무효라는 몬테네그로 대법원의 판단으로, 권씨의 미국행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권씨가 현지 로펌을 동원해 한국행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소식은 여전히 불편하다.

권씨가 한국행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낮은 형량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된 징역 40년이다. 투자자들에게 가짜 정보를 제공해 292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과 서민 191명의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인천 건축왕’ 남모씨에게 각 3년6개월과 15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사기가 가성비 좋은 ‘남는 장사’로 둔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 같다”는 검찰총장의 푸념은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경제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범죄수익 역시 철저히 박탈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이 사기꾼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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