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영의 저랑 같이 신문 읽으실래요] [8] 세상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리려면

김필영 작가·글로성장연구소 부대표 2024. 5. 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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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

토요일 아침, 아이에게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나는 침대 위였다. 곧 7시가 되었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온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마지못해 일어나 소리 나는 쪽으로 갔다. 잠시, 믿을 수 없었다. 화장실 바닥 저 갈색 물이 다 똥이라고? 변기 물이 역류했다. 기저귀를 1년쯤 방치해놓으면 이런 냄새가 날까. 청소하지 않은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에서의 구린내 같기도 했다. 아이는 웃으며 집이 똥이 되었다고 했고, 어느새 남편은 끝없이 토하는 변기에 발맞춰 대야에 똥물을 퍼서 안방 화장실로 옮기고 있었다. 문지방에서 똥물이 거실로 넘어갈 듯 말 듯 생기 있게 찰랑였다. 나는 10분 뒤가 너무 쉽게 예상되었다.

“남편, 제가 위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한 집씩 다니면서 거실 옆 화장실 변기 사용을 오전에만 자제해달라고 부탁드려 볼게요.”

한 집씩 다니면서 양해를 구하고 다시 내려왔더니 다행히 똥물을 토하던 변기가 멈추었다. 멈춘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냄새를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 카페와 놀이터, 마트 등을 오갔다. 밤새 일을 하고 온 남편은 잠을 자지 못한 채 냄새에 취해 졸면서 수리 업체를 기다렸다.

점심부터 시작된 수리는 변기를 뜯고 사용하는 장비를 몇 번 바꾸고서야 끝났다. 업체 말에 따르면 변기가 역류한 원인은 무라고 했다. 반찬에 사용하는 무를 누군가 변기에 많은 양을 버렸을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새벽녘 변기에 엄청난 양의 무를 넣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무를 넣는 그 사람. 업체에서 지하 배관에 박힌 무를 빼고, 변기를 다시 달아주었다. 오후 6시, 늦었지만 커피숍으로 갔다. 신문을 펼쳤다.

오늘 따라 사설란에 눈이 멈췄다. 뭐라도 타인의 생각이 담긴 사설이 해주는 이야기가 위로 되는 날. 사설을 읽다가 똥이 가득한 변기가 또 떠올랐다. 화장실 변기에 무를 버리기 전에 한 번이라도 이 행동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더라면 그런 행동을 못 하지 않았을까. 신문을 덮고 나 역시 남을 배려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적은 없었는지 돌아보았다.

함께 사는 세상이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파란색 렌즈는 초록색 렌즈가 될 필요 없지만, 각자의 입장이 있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이슈, 혹은 글쓴이의 생각이 담긴 사설을 읽는 게 도움이 된다. 잠시 멈춰서서 세상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리는 일.

신문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더 많이 세상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자고. 적어도 내가 할 일이 누군가가 피해를 보는 일이라면 잠시 멈춰서 고민해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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