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작동 신비 풀면… AI 전력소모 확 줄어 5차산업혁명 온다” [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24. 5.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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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지원금 심사위원으로 워싱턴에 갔을 때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연구자 20여 명이 모여 모든 연구 제안서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논의했다. 내 연구 제안서도 이런 과정을 거쳐 채택되어 기회를 부여받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고 감사했다. 뭉클한 감동에 눈물도 핑 돌았다.
내가 뇌 질환과의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용기’와 ‘아이디어’밖에 없던 나에게 이처럼 기회를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데, 다시금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뇌 질환 연구가 이 같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질환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뇌전증에 연간 162조 원, 치매에 1766조 원의 사회적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경우 파킨슨병에 연간 71조 원, 수면 장애에 129조 원이 든다.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자폐 질환에 들어간 전 세계 누적 비용은 9509조 원에 이른다. 가히 천문학적이다. 사실 이마저도 사회적 비용을 다 계산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의료비뿐 아니라, 장애로 사회 참여가 어려워진 데 따른 비용,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이 사회 활동을 하기 어려워짐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은 웬만한 가정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노령 인구가 많아지면서 뇌 질환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생산성 감소는 국가 전체적인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듯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 학교, 기업과 정부 차원에서도 뇌 질환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대표적으로 미 국립보건원 내 국립 신경질환 뇌졸중연구소는 연간 3조8000억 원, 국립노화연구소 6조1000억 원, 국립정신질환연구소 3조4000억 원, 국립약물중독연구소 2조3000억 원 등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연간 15조3000억 원 연구비에도 뇌 관련 연구가 상당 부분 들어가 있다. 2013년부터 범부처 사업으로 출범한 ‘BRAIN INITIATIVE’는 연간 5500억 원을 뇌를 이해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그 밖에 유럽에서 쥐의 뇌를 디지털 복제하고자 한 ‘블루 브레인 프로젝트(Blue Brain Project)’와 인간의 뇌를 디지털 복제하고자 한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도 있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단일 프로젝트에 8874억 원이 들었다. 이런 관심과 투자는 최근 많은 연구 성과들을 만들어 냈다.

그럼에도 아직은 뇌 질환 해결에 명확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으며,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문제이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뇌 질환 정복은 조만간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가오는 10년은 그간의 연구 성과가 직접적인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 문이 열리지 않아 실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뇌 질환 정복’의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우선, 질환의 천문학적 사회 비용을 줄여 생산성을 증대시킬 것이다. 노인 인구뿐만 아니라, 발달 장애나 사고로 인해 뇌 질환을 갖게 된 젊은이들이 건강을 회복하면서 생산인구가 늘어날 것이다. 뇌 질환 정복 과정에서 알게 될 지식은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많은 기대와 심각한 불안을 동반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 한편으로 인공지능이 오히려 내 직장을 빼앗고 나를 지배하는 기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그 기저에는 현재의 인공지능이 상당히 단순한 작업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있다. 이는 에너지 사용 측면에서 인공지능과 인간을 경쟁 구도에 놓는다. 기계가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다.

뇌 질환 정복과 뇌에 대한 이해는 인간을 다시 세상의 중심에 돌려놓는 5차 산업혁명의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뇌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더 나아가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미래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인간 지능에 대한 이해를 적용하면 인공지능도 더 작은 에너지를 이용해 인간을 돕는 기술로 발전할 수 있다.

‘탑건: 매버릭’이라는 영화에서 “인간 조종사는 무인 시스템에 밀려서 멸종할 것이다”라는 해군 대장의 말에 주인공 톰 크루즈는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 뇌 질환 정복에 따른 인간의 능력 향상, 그리고 인간 지능에 대한 이해는 오늘뿐 아니라 내일도 인류가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하는 5차 산업혁명을 불러올 것이다. 그만큼 인류를 번영으로 이끌 것이라 기대한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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