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 정의 위해 20대에 1인당 4표 차등투표제를”

조해영 기자 2024. 5. 7. 22: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책 조세연 창립멤버 홍범교 위원 제안
4·10 총선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1동주민센터에서 한 어린이가 엄마가 투표하고 있는 기표소 커튼을 들춰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창립 멤버 홍범교 명예선임연구위원이 근무를 마치며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대별 차등투표제’ 등을 제안했다. 국제조세와 금융조세 등을 연구하며 소득과 부의 재분배에 천착해온 그가, 소득과 부의 재분배의 특효약으로 알려진 ‘누진세제’의 한계를 절감하며 내놓은 대안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이 조세연 퇴직 전 낸 보고서의 제목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고찰: 양극화 완화를 위한 조세정책에서 정치철학까지’다. 경제의 상부 구조에 속하는 정치를 논하는 보고서라는 게 제목에 반영돼 있는 셈이다. 홍 위원은 현대 정치철학의 첨단을 달리는 존 롤스 전 하버드대 교수와 부의 양극화 연구에 울림을 준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를 빌려 “20대에게는 1인당 4표를, 50대에게는 1인당 3표를 부여하는 것이 오히려 형평성 있는 제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세대별 평등투표제’를 제안한 셈인데 ‘1인1표’가 민주적 헌정 질서의 기본 가이드라인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파격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논리는 이렇다. “미래는 젊은 층이 책임지게 돼 있음에도 인구 피라미드가 역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 한, ‘1인 1표’의 보통선거에 의존하는 한 미래 세대의 목소리가 반영될 확률은 대단히 낮다.” 1인1표에 얽매이다 보면 저출생-고령화 시대에선 불가피한 고령층의 과잉대표와 그에 따른 형평성 훼손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상식적 주장이다.

그는 좀 더 나아간다. 차등투표제 주장은 단순히 세대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홍 위원은 보고서에서 “주제에 따른 차등투표제를 고려할 여지는 있을 것”이라며 “소득과 관련한 현안에 대한 투표에서는 소득분위별 인구 수를 감안해 조정된 차등투표권을 부여함으로써 똑같은 비중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형평성을 복원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당혹감을 느낄 정도의 주장을 편 노(老)학자도 그런 대중의 정서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부유한 엘리트층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는 점(정치 구도)을 고려한 예시적 아이디어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의 아이디어는 현재 조세체계에서 부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다시 말해서 소득과 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핵심 수단인 조세 분야를 평생 연구한 학자의 무력감이 이번 보고서에 투영돼 있다는 뜻이다. 그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정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수단은 누진세제”라면서도 “대부분 국가들이 누진세제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 그것만으로는 부족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세대나 소득에 따른 차등투표 제안이 나온 셈이다. 그는 “선거 운동에 필요한 선거 자금이 거대 금융권이나 기업 등에서 조달되고 정치·경제계의 리더들이 주로 사회의 엘리트 계층에서 배출되기 때문에 정치는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며 “(차등투표제가) 보통선거의 포기라는 점에서 큰 반향을 불러올 수도 있으나 목소리를 형평성 있게 반영하는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세연에서 32년을 근무한 홍 위원은 “양극화의 완화는 단숨에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누진과세제도와 같은 몇 개의 특정한 제도를 통해서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정치철학에서 출발해 정치적 타협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양한 구체적인 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정치체제의 변환도 필요하다면 하나의 선택지로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재진 조세연 원장은 보고서 서문에서 극단적인 양극화가 정치 체제의 불안으로 이어졌던 역사적 사례들을 상기하며 “이것이 경제학계를 비롯한 다양한 학문 분야와 현실 정치에서 양극화 현상에 관심을 갖는 이유”라고 썼다. 이어 “본 보고서는 홍 위원이 조세연을 퇴직하며 마지막으로 집필한 보고서”라며 “저자는 조세연의 창립 멤버로 32년간 근무하며 우리나라 조세정책 수립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및 자문 활동을 했다”고 소개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