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호연 “이상 좇는 ‘돈키호테’처럼… 꿈꾸지 않으면 행복도 없죠”

김용출 2024. 5. 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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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나의 돈키호테’ 출간한 작가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히트 2년 만에 신작
어린시절 영향 준 ‘돈키호테’ 모티브
스페인 체류하며 소설 구상 구체화
돈키호테·산초 닮은꼴 캐릭터 통해
15년 세월 오가며 청년들 모험 그려
“삶 응원해주는 존재 있어 고난 견뎌”

…우리는 모두 돈키호테가 살아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돈키호테를 어떤 도전하는 캐릭터로, 실제 살아있는 인물로 생각하면서 4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의 힘이고, 캐릭터의 힘이다. 돈키호테 같은 멋진 캐릭터를 만들길 바란다.

소설가 이순원은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돈키호테 이야기를 거론하며 격려사를 했다.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김호연 작가는 2013년 봄 시상식장에 앉아 있다가 이 같은 격려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밀리언 셀러 ‘불편한 편의점’의 작가이자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김호연이 돈키호테를 모티브로한 장편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그는 “특별한 취미도 없고 마치 공무원처럼 꾸준히 글을 써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허정호 선임기자
맞아, 내가 돈키호테 같은 인물과 이야기를 좋아했었지. 그는 어린 시절 문고판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문득 완역판으로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는 생각도 했다. 완역을 한 번 제대로 읽어보자. 가능하다면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장편도….

시간은 흘러서 2019년 9월, ‘돈키호테’ 완역판을 모두 읽은 그는 한국 토지문화재단과 스페인 문화활동국립협회(AC/E) 간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된 입주 작가로 선정돼 3개월간 스페인에서 레지던시를 했다. 세르반테스 축제에도 참여했고, ‘돈키호테’ 낭독극도 봤으며, 세르반테스의 생가와 그가 생전 갇혔던 감옥도 둘러봤다. 이렇게 두 달여 취재를 한 뒤 현지에서 소설을 구상했다.

곧바로 집필하고 싶었지만, 여건도 되지 않았고 개인적 준비 역시 덜 돼 있었다. 팬데믹이 닥쳐와서 영화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생계에 도움을 주던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먼저 콤팩트한 작품 한 편을 쓴 뒤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소설을 쓰기로 생각을 바꿨다. 2021년, 그는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발표했다. 작품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불편한 편의점 2’까지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이런저런 상황과 계기로 미뤄져 온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정이 샘솟았다. 그는 2022년 겨울부터 스페인에서 쓰기 시작한 작품 구상안을 마무리한 뒤 곧바로 집필에 착수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김호연이 최근 돈키호테를 모티브로 15년의 시간을 오가는 젊은이들의 꿈과 모험을 담은 신작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로, ‘불편한 편의점2’ 이후 2년 만이다.
2018년 늦가을, 외주 프로덕션 6년 차 피디 진솔은 자신이 기획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리고 고향 대전으로 내려온다. 피디 경력을 살려서 유튜브를 하기로 생각한 솔은 대전을 소재로 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이제는 카페로 바뀐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한빈을 만나게 된다. 솔은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에게서 아저씨가 거처했던 지하 공간은 그대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하실을 함께 찾았다가 자신을 산초로 부르며 응원해주던 아저씨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솔은 한빈의 요청에 따라 돈 아저씨의 지하 공간을 배경으로 그 시절에 봤던 책과 영화를 소개하고 아저씨를 찾는 유튜브 ‘돈키호테 비디오’를 시작한다. 한빈과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돈 아저씨의 삶과 행방을 차례로 추적해 나간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 동창, 강남 학원강사 시절의 동료, 마포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편집자, 시나리오 계약을 한 영화사 대표, 영화사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시나리오 개발한 피디….

돈 아저씨는 왜 3년 전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일까. 돈 아저씨를 추적하고 찾아가는 시리즈는 구독자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며 채널의 대표 콘텐츠로 인기를 얻는다. ‘찐산초’ 솔은 마침내 돈 아저씨를 찾을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내지만, 그것은 모험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으니.

“‘바로 이 감옥에서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무언가를 떠올리지. 그게,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아주 길고 매우 판타스틱한 그 이야기잖아. 그치?’ ‘맞아요.’ ‘…여기 꼭 와보고 싶었단다. ‘돈키호테’가 잉태된 이곳, 세르반테스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보낸 이곳이 내게 용기를 줄 수 있겠더라고.’ ‘어떤 용기요?’ ‘네가 말한 그 돈키호테의 열정. 어쩌면 광기. 그러니까 싸울 수 있다는 용기. 정의와 자유를 위해 거악에 맞서는 선한 힘이라는 용기.’”

이야기는 15년의 시차를 오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숨바꼭질과 우정, 돈키호테와 산초와 세르반테스가 뒤엉키고 넘실거리는 모험과 성장 서사로 내달린다.

밀리언 독자들이 사랑한 ‘불편한 편의점’의 작가 김호연이 형상화한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와 산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진지하고 야심만만한 그의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김 작가를 지난 2일 서울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돈 아저씨와 솔의 관계는 15년 사이에 묘하게 역전하는데.

“돈 아저씨는 처음에는 공부와 세상에 힘들어하는 솔에게 꿈과 희망을 주면서 응원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당시 그 역시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이혼도 하고 힘들었지만 솔과 함께 보내면서 자신의 고난을 견뎌낼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아저씨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영감을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정이다. 실제 소설 ‘돈키호테’에서도 돈키호테와 산초와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요 인물들이 소설 ‘돈키호테’의 인물과 매치가 돼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돈키호테’라는 원전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온다. 조연들이 너무 부각되지 않고 돈키호테와 산초 중심으로 전개되도록 했다. 원전을 읽은 분들은 어디를 패러디했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고, 읽지 못했더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열리는 2000년대 초반이 시대적 배경을 이룬다.

“돈 아저씨나 솔의 캐릭터를 잡기 위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시대가 들어왔다. 82학번인 돈 아저씨는 시대정신으로서 학생 운동에 가담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학원 강사와 출판사 일을 전전하다가, 200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아 영화계에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8년에 30세가 되는 솔 역시 중학생 2학년으로 돌아가면 2003년이 된다. 한국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 또는 헌사다.”

―돈 아저씨로 상징되는 돈키호테 정신은 아직도 유효한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국내에선 제2의 IMF가 올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기가 침체돼 있어서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꿈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꿈이나 희망, 이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 힘들 수 있지만, 꿈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불행하더라. 꿈을 꾸지 않으면 인생은 행복할 수 없다.”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호연은 2013년 장편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로 세계문학상을 통해 소설가로 데뷔했다. 7년간의 무명작가 생활이 끝나는 순간으로, 그의 나이만 서른아홉이었다. 이후 ‘연적’, ‘고스트라이터즈’, ‘파우스터’, ‘불편한 편의점’, ‘불편한 편의점2’ 등을 발표했다.

단단한 몽돌 같은 모습의 김호연은 인터뷰에서 “마치 공무원처럼” 꾸준히 글을 써나갈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오전 6, 7시쯤 일어나 산책이나 운동을 하고 간단히 요기한 뒤 오전 9시나 10시쯤이면 무조건 글을 쓰기 시작한다고. 서너 줄도 좋고, 한 페이지도 좋다고.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고, 쳇바퀴가 돌듯 쓰고 또 쓴다고.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했고 열정이 가득했다. 마치 광기의 돈키호테처럼, 돈키호테를 쫓는 돈 아저씨처럼….

“말을 마친 아저씨가 잔을 들고는 외쳤다. ‘바모스!’ 다들 아저씨를 쳐다봤다. ‘스페인어로 가자라는 뜻이지. 우리말로 파이팅! 하는 거랑도 비슷하고. 자, 다 같이 바모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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