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무색한 ‘쪼개기 상장’…HD현대마린, 불안한 출항

김경민 기자 2024. 5. 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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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IPO ‘최대어’…주주환원책 없어 가이드라인 실효성 논란

HD현대 계열사인 HD현대마린솔루션(마린솔루션)이 8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공모주 청약에 25조원이 몰려 흥행 여부도 관심이지만, 금융당국이 밸류업 프로그램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자마자 이뤄진 ‘쪼개기 상장’이어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와 함께 가이드라인의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마린솔루션은 2016년 11월 HD한국조선해양(당시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의 수리·사후관리(AS) 부분을 물적분할해 탄생한 회사다. 최대주주는 55.8% 지분을 보유한 HD현대다. 공모가는 8만3400원으로,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만 3조7017억원에 달한다.

오랜만에 온 대형 기업공개(IPO)에 투자자들 관심도 뜨겁다. 일반 투자자 대상 마린솔루션의 공모 청약 경쟁률은 255 대 1로 청약 증거금만 25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마린솔루션 상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HD현대가 자금 마련을 명목으로 쪼개기 상장에 나서며 사실상 밸류업 프로그램에 역행하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쪼개기 상장은 모회사가 자사의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자회사를 세우고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중복상장되면서 모회사의 가치는 자회사로 이전되고 모회사 주가는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쪼개기 상장은 모회사의 주주가치를 훼손시키고 장기투자를 저해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에너지솔루션을 분할해 상장시킨 LG화학, 카카오에서 분리돼 상장된 카카오뱅크·페이다. 2021년 100만원을 넘기기도 했던 LG화학 주가는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 상장 이후 60만원대까지 곤두박질친 이후 현재도 40만원대를 횡보하며 주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HD현대 주가도 4월 이후 마린솔루션 상장을 하루 앞둔 7일까지 11.4% 하락하며 부진한 상태다.

당국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22년 쪼개기 상장 비판 여론이 높자 금융위원회는 물적분할 5년 내 상장하는 자회사에 대한 상장심사를 강화하고,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에게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도록 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물적분할 이후 7년이 지난 마린솔루션에는 이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밸류업 가이드라인의 실효성 논란은 더 커지게 됐다. 금융당국이 지난 2일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계획’에 따르면 상장사는 모자회사 중복상장을 포함한 지배구조 지표를 공시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마린솔루션 사례처럼 지배주주인 총수가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할지는 미지수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지배주주는 지배로부터 오는 편익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재산가치가 떨어질지라도 일반 주주의 이익과는 상반되는 경영 결정을 할 수 있다”며 “분할과 상장이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HD현대가 모회사 주주들에 대한 보호대책을 발표하지 않은 한 주가 하락의 피해는 일반 주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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