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민희진 기자회견의 또다른 이야기

2024. 5. 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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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역사적인 수준의 충격파를 일으켰다. 그 직전까지 불리했던 여론을 단번에 뒤집었는데 그 방식이 놀랍다. 해당 사안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거나 논리적으로 해명한 것이 아니라 격정적인 감정 표현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전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기자회견이고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기자회견이라고 하는 것이다.

격하게 울분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이 '오죽 억울했으면 저럴까?', '저런 모습을 보니 앞에선 들이받아도 뒤에서 음모를 꾸밀 사람 같지는 않다', '저렇게 격정적으로 하는 말이 설마 거짓말이겠느냐?' 식의 인식을 갖게 됐다. 이제 앞으로 달변인 사람들은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격정적 기자회견을 기획할 지도 모르겠다.

민 대표는 이번에 프레임 구축의 진수도 보여줬다. 거대 관료조직의 갑질에 당하는 힘없는 '을' 직장인의 구도가 짜인 것이다.그러자 수많은 '을'들이 민희진 대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에 돌직구를 날리는 민 대표를 보며 대리만족의 통쾌감을 느끼고, 회사가 자신의 단물을 빼먹고 버리려고 한다는 말에 직장인의 설움을 공감했다. 본사 경영진을 '개저씨'라고 표현하는 등 '남성 위주 관료조직 대 여성'의 구도도 만들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민 대표가 '가부장적인 직장과 싸우는 젊은 여성'이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민 대표가 정말 억울해서 그걸 토로하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치밀하게 전략을 짠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민 대표가 원래 아이돌 이미지 구축의 전문가이니 본인의 이미지 구축에도 당연히 탁월할 거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대중은 원래 약자를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꼭 약자가 피해자란 법은 없다. 과거 티아라 왕따 의혹 사건 때도 대중은 한 멤버가 왕따 당했다며 티아라 멤버들을 공격했지만 나중에 오해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스피드스케이팅 노선영 선수가 김보름 선수 등 빙상계로부터 왕따 당했다는 의혹에 대중이 공분했지만 이것도 오해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중은 정의를 실현한다며 약자 또는 소수의 편을 들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부당한 가해행위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분쟁에서 무조건 강자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번 민희진 하이브 분쟁도 강자-약자 프레임이 아닌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번 분쟁의 핵심은 어도어의 경영권 탈취 모의 의혹이다. 하이브가 증거를 제시했는데 민희진 대표는 그게 '사담'이었다는 식으로 납득이 어려운 해명을 내놨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증거를 짜깁기해 자신을 모함한다는 식으로 억울해했는데, 그렇다면 왜 하이브를 고소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공방이 오가는 과정에서, 양측의 관계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주주간 계약 문제라는 점이 드러났다.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경영할 회사(어도어)를 차려주고 지분 18%도 양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걸 하이브에게 되팔 풋옵션도 부여했는데 그게 내년 초 기준으로 1000억 원 정도의 가치인 것으로 알려졌다.

갓 입사한 직장인이 아무리 일을 잘 해도 회사가 1000억 원을 보상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정도면 하이브가 민 대표에게 놀라운 예우를 한 것 같은데 민 대표는 푸대접 받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계약 협상 과정에서 민 대표는 더 많은 풋옵션 보상을 요구했는데 그게 매체들의 계산에 따르면 2000~30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보면 민 대표를 단지 힘없는 '을 직장인'이라고 하기가 어렵다.

민 대표는 노예계약 하소연도 했다. 민 대표 지분의 일부가, 하이브의 동의를 받아야만 팔 수 있도록 묶였다는 것이다. 하이브 측은 이 부분도 수정해주겠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8년 간 의무 재직, 퇴직 후 1년간 경업금지의무, 재직 기간에 맞춘 풋옵션 단계별 행사를 제안했다고 한다.

민 대표의 말이 맞는다고 해도 기업이 직원에게 8년간 일하라고 하면서 거액을 준다는 것이 그렇게 박한 처우로 느껴지지 않는다. 풋옵션을 단계적으로 행사하면 총액이 1000억 원보다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경업금지 1년을 포함해도 이게 그렇게 푸대접 받았다고 분개할 일일까?

이렇게 보면 민희진 기자회견을 '열심히 일만 하다 버려지는 을의 항변'이라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약자라고 일단 응원하는 것보다, 현 분쟁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차분히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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