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이미 줄리엣, 음악만 들어도 눈물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5. 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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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이유림 인터뷰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서희·강미선과 주역으로
10~12일 예술의전당 공연
안무가 케네스 맥밀란 재단
"그녀에겐 뭔가 있다" 낙점
유니버설아트센터 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한 발레리나 이유림. 한주형 기자

구김살 없이 밝고 씩씩하게 말을 잇다가도, 프로코피예프 음악 얘기만으로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 유니버설발레단 40주년 기념 '로미오와 줄리엣' 주인공에 발탁된 이유림(27)은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강미선·서희 등 현역 최고 기량의 발레리나와 같이 줄리엣 배역을 맡은 이 신예는 "발레리나로서 목표를 벌써 이뤘다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운을 뗐다.

이유림은 2016년부터 7년간 헝가리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 지난해 10월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로 입단한 차세대 주역이다. 지난해 호두까기 인형의 클라라 역으로 한국 관객과 만났고, 이번엔 내부 오디션을 거쳐 줄리엣 역에 올랐다. 공연을 불과 보름 앞두고서야 공개된 캐스팅이다. 안무가 측 케네스 맥밀란 재단과 직접 내한한 연출가 줄리 링컨이 "그녀에게 뭔가 있다"며 이유림을 낙점했다고 한다. 이유림은 "미리 페어를 정해 1부의 침실 파드되(2인무)와 줄리엣 솔로 부분 영상을 찍어 보냈다"며 "이후 내한 리허설에도 모두가 참여한 뒤 곧바로 캐스팅이 발표됐다. (재단 측에서) 어떤 줄리엣을 만들지까지 본 것 같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이유림은 "한국인 줄리엣이 아닌, 그 시절 베로나 공국의 16세 여자아이의 마음에 몰입했다"고 했다. 죽음으로써 불멸의 사랑을 완성하는 셰익스피어 고전에 대해선 솔직히 "지금의 저라면 죽음을 택하진 않을 것 같다"면서도 "유럽에서 만났던 이탈리아 친구들의 정열적인 성향을 떠올리면 로미오와 줄리엣도 불같이 타오른 사랑을 하고 죽음을 택했을 수 있겠다 싶다"고 말했다.

그의 강점은 연기력이다. 오디션 과정에서도 "연기가 자연스럽다"는 호평을 듣곤 했다. 특히 이번 작품은 춤과 기교에 집중하는 고전 발레와 달리 이야기의 흐름과 심리 변화를 중시하는 드라마 발레다. 이유림은 헝가리에서 다른 안무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이 작품은 처음이다. 그는 "감정을 표출하면서도 등은 곧게 펴는 등 기본기는 지켜야 한다"며 "정말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밝고 순진하던 줄리엣이 사랑과 갈등 속에 점차 지쳐가는 감정의 변화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잘 표현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유림은 어릴 때부터 꾸준한 유망주였다. 2016년 시칠리아 국제콩쿠르 우승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헝가리 국립발레단장이 그녀를 영입해갔다. 이번에 같은 줄리엣 역을 맡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수석무용수 서희에게서 두 차례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단다. 한 번은 선화예고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또 한 번은 2019년 성남아트센터 갈라쇼 무대에 선 직후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통해서다. "그 공연을 보셨다면서 '공연 잘 봤다, 힘들어도 열심히 하라'고 해주셨어요. 너무 좋아서 밤을 지새우며 답장을 길게 써서 보냈죠. 그때 일을 기억하실지, 이번에 리허설로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벌써 떨려요."

유니버설발레단 수석이자 지난해 무용계 오스카상 '브누아 드 라 당스'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거머쥔 강미선도 이유림에겐 아직 '언니'보다 '선생님'이 입에 붙는 대선배다. "후배를 위해 나서서 이끌어주시는 건 물론이고, 역할에 대한 노하우도 공유해주신다"며 "그러면서도 같은 역할을 하는 무용수에게 선을 넘지 않고 예의를 지켜주려 하시는 점에서 프로페셔널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유림이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본 건 선화예중에 재학 중이던 2012년, 국내 초연 때다. 이번에 자신의 상대 역인 발레리노 콘스탄틴 노보셀로프가 그때도 로미오 역을 했으니, 이유림의 발탁은 여러모로 신예 발굴과 점진적인 세대교체의 의미도 띤다.

공연은 10~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총 5회 열리며, 이유림과 노보셀로프는 11일 오후 7시 무대에 선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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