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회의록 미작성, 처벌 가능할까... 법조계 “처벌 아닌 압박 목적”

홍인석 기자 2024. 5. 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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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 2000명’ 회의록 작성 여부 공방
복지부 “작성 의무 있는 회의는 회의록 있다”
의료계 “숨기고 싶은 내용 있었던 것” 고발
직무유기·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주장
법조계 “회의록 조작·허위 작성 아니면 처벌 無”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찬종 이병철 변호사와 사직 전공의들이 7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의대 증원 2000명' 관련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한 혐의 등으로 복지부·교육부 장차관 등 5명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의료계가 의과대학(의대) 증원을 결정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았다며 7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회의록 미작성’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어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의료계가 정부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고발이라는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와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오후 2시에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 박민수 복지부 2차관, 이주호 교육부 장관, 오석환 교육부 차관 등 5명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했다. 고발인 측은 지난 2월 6일 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정책심의회(보정심)가 2025학년도 의대 입학정원 증원을 2000명으로 심의하는 과정에서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아 직무유기와 공공기록물 은닉·멸실 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는 정원배정심사위원회 회의 요약본만 있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이날 “얼마나 숨기고 싶은 내용이 있었던 것인지, 얼마나 비합리적인 결정들이 있었던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2000명이 결정된 최초 회의록 공개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이 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항고심 심문에서 증원 규모로 내세운 2000명의 근거와 회의록 등을 제출하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이 각각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7건에 대해 “이해 당사자가 아니다”며 각하했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사안을 자세히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후 한 언론사가 “정보공개청구 등으로 확인한 결과 복지부·대한의사협회가 참여한 ‘의료현안협의체’와 보정심 회의록이 없었다”고 보도하면서 ‘회의록 미작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논란이 커지자 복지부는 “작성 의무가 있는 각종 회의체 회의록은 모두 작성 의무를 준수했다. 보정심은 회의록이 있고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며 “의료현안협의체는 회의록 작성 의무가 있는 회의체가 아니어서 보도자료와 사후 브리핑으로 회의 결과를 공개했다”고 해명했다.

‘공공기록물관리법’은 주요 회의에서 회의록 등을 의무적으로 생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18조(회의록의 작성·관리)에 따르면 ‘개별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위원회 또는 심의회 등이 운영하는 회의’는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기반해 운영되는 위원회라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있다.

다만 ‘공공기록물관리법’에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것에 대한 처벌 조항이 없다. 제19조의2는 회의록 등 소위 ‘기록물’을 무단으로 손상·은닉·멸실(滅失) 또는 유출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비공개 기록물을 열람하는 행위, 비밀 기록물에 대한 내용을 누설하는 행위도 벌금이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국가지정기록물 지정을 위한 조사를 거부하거나 방해할 경우 1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록물을 작성하지 않았다고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정 대표와 이병철 변호사는 회의록 폐기나 미작성에 따른 직무유기를 주장하고 있다. 정 대표는 “요약본만 작성했다는 주장은 회의록 은닉이나 폐기, 멸실했을 개연성이 높다”며 공공기록물관리법 제19조의2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 역시 “법에 따라 회의록을 작성할 의무가 있는 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작성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형법 제122조에 따르면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3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회의록 미작성’으로 관련자들이 처벌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대법원은 공무원이 태만 또는 착각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거나 직무를 소홀하게 수행한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증원 2000명이라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회의록을 조작하거나 허위로 작성한 게 아니라면 기소되지 않을 것”이라며 “의료계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직무유기죄’로 고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합당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라며 “회의록 미작성이 공무원 징계로 이어질 수 있지만 형사소송이 벌어질 사안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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