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연금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나 [아침햇발]

황보연 기자 2024. 5. 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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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장(왼쪽)과 국민의힘 유경준(오른쪽),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여야 간사가 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종료 및 출장 취소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보연 | 논설위원

‘재정안정’이 우선인가, 아니면 ‘소득보장’이 먼저인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7일 결국 빈손으로 활동을 종료했다. 여야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평균 생애소득 대비 연금액) 인상안을 두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방침이지만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은 기약 없이 표류할 전망이다.

앞서 지난달 22일 시민대표단의 공론조사 결과가 나온 뒤로, 여야는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공론조사에선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13%로, 소득대체율을 40%→50%로 올리는 1안(소득보장론)에 대한 지지가 보험료율만 12% 올리는 2안(재정안정론)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수용하라는 야당과 이를 거부하는 여당이 팽팽하게 맞서온 것이다. 최종적으로 여야는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데 의견을 모았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한 이견(더불어민주당 45%, 국민의힘 43%)으로 합의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연금개혁이 불발된 배경에는 ‘재정안정이냐 소득보장이냐’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세대가 보험료를 내면 일부는 은퇴세대에게 연금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는 기금으로 운용하는 부분적립식이다. 하지만 기금은 1990년생이 연금을 타기 시작하는 2055년이 되면 고갈된다. 이후로는 매해 보험료 수입으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바뀐다. 국민연금은 약속된 연금을 주기 위해 보험료율을 우선 조정하도록 설계돼 있어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따라서 연금개혁의 주된 영향은 현재 청년세대가 막 낳았거나 낳을 예정인 자녀들이 받는다.

애초 1안과 2안이 대립하는 논점은 이랬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54살이 되는 2078년이 되면, 1안은 소득의 43.2%를 보험료로 내야 하지만 2안은 35.1%에 그친다. 누적 적자도 2093년까지 1안은 702조원을 늘리지만 2안은 1970조원 줄인다. 1, 2안의 기금 고갈 시점이 2061년과 2062년으로 비슷한데도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은, 가입기간 40년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가 한참 뒤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재정안정론자들은 1안으로 가면 미래세대가 보험료 부담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반면 소득보장론은 최소한의 노후생활비를 보장하려면 소득대체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쪽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1988년 출범 이래 두차례만 단행됐는데, 제도 연착륙을 위해 70%로 높게 잡았던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낮추는 과정이었다. 이 때문에 소득보장론자들은 현재 청년들이 연금에 가입한 대부분 기간에 소득대체율 40%가 적용돼 이전 세대보다 불리하다는데 주목한다. “2030세대가 2050년 이후 월 66만원의 연금을 타게 되는데 이를 95만원 정도까지 올려야 자녀세대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족한 재정은 국고로 지원하면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지난 2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국민연금 보장성강화 및 기금거버넌스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제공

논쟁 자체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런 논쟁이 반복되는 동안, 연금개혁의 시계가 2007년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 재정이 균형을 유지하도록 보험료율과 연금액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보험료율은 1998년 9%로 오른 뒤 26년째 한번도 못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공적연금 평균 보험료율은 18.4%(2022년 기준)로 한국의 두배 수준이다.

참여정부는 2007년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연금개혁을 주도했다. 보험료율을 12.9%로 올리는 방안도 함께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부결됐다.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법 개정이 입에 쓰기 때문에 ‘사탕’(기초노령연금)하고 같이 넣었는데 ‘약사발’(보험료율 인상)은 엎고 사탕만 먹었다”고 비판했다. 기금 고갈 시점이 계속 앞당겨지면서, 지금은 여야 모두 ‘약사발’을 들이켜겠다는데도 소득대체율에 발목이 잡혔다.

실제로 소득대체율 논쟁은 의도치 않게 역대 정부가 연금개혁을 미루는 빌미가 됐다. ①대선에서 ‘전임 정부와의 차별화’를 부각하며 연금개혁 의지를 불태운다. ②집권 뒤 연금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거쳐 개혁안을 마련한다. ③국회에서 소득대체율 등 쟁점 합의가 어렵다는 이유로 개혁 추진을 미룬다. 결과적으로 어려운 개혁과제를 추진한다는 명분만 챙기고 정치적 부담은 지지 않으려고 ‘폭탄 돌리기’를 해온 것이다.

연금개혁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를 안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공론조사를 벌여도 국민이 관심 둘 이유가 없다. 이른바 ‘더 내고 더 받는’ 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이 겨루는 사이, 청년들은 ‘안 내고 안 받으면 안 되느냐’고 묻고 있다.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은 함께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동안은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처럼 대립하는 구도가 이어져왔다. 정부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면 얼마든지 절충안을 마련할 수 있다.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재정안정과 소득보장이란 용어는 편의상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것이지, 학술적 용어가 아니다. 어느 쪽도 재정안정만 혹은 소득보장만 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공론조사 결과가 어느 한쪽에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선 곤란하다는 취지였다.

아직 21대 국회가 20여일 남았는데 정치권이 서둘러 논의를 종료한 것은 무책임하다. 심지어 연금특위 의원들은 느닷없이 영국과 스웨덴으로 해외 출장을 가서 타협안을 찾겠다고 했다가 출국을 하루 앞두고 전격적으로 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치다가 지난해 국회와 공론조사에 공을 떠넘긴 바 있다. ‘인기 없는 개혁’을 실행에 옮기려면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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