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종의 세계의 창 <3>] 독일 경제, 다시 살아나려면…에너지 전환·인프라 투자 중요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2024. 5. 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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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경제는 글로벌 경제 위기와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충격으로 인한 부진 외에 독일만의 세 번의 침체기가 있었다. 통일 직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그리고 최근이다.

‘유럽의 병자(the sick man of Europe)’ 독일 경제의 부진을 일컫는 용어가 20여 년 만에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2023년 독일은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0.3% 역성장했다. 2022년 4분기부터 본격화한 독일 경제의 침체는 현재 진행형이다.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2022년 4분기부터 전 분기 대비 각각 –0.4%, 0.1%, 0.0%, 0.0% 그리고 2023년 4분기 -0.3%를 기록했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0.2% 내외로 예상된다. 기록적인 부진이다.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후유증에 허덕이는 영국도 +0.1%의 성장률을 보였는데 경제 강국이라는 독일이 왜 마이너스 성장을 했을까. 그 원인은 무엇이며, 경제적 부진을 언제쯤 탈출할 수 있을까. 독일은 유럽 경제의 기관차 또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해 왔고, 2023년 현재 일본을 제치고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경제 대국이기에 독일 경제의 부진은 우리 모두의 관심사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 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과거 독일 경제 침체 요인은 통일, 경제의 동맥경화 그리고 수출부진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세계경제의 큰 경기변동 주기와는 다른 세 번의 경기 침체가 있었다. 첫 번째는 통일이 막 이뤄진 1990년대 초반이다. 1993년 독일은 –1%의 역성장을 보였다. 잘못된 화폐 통합의 후유증으로 구동독 지역의 산업이 완전히 몰락하고, 새 영토에 대한 엄청난 재정 지원을 충당하기 위한 세수 증대가 내수 위축을 가져왔으며, 토지 등 자산 소유권 정리가 늦어지는 데서 오는 부작용도 상당했다.

급격한 경제통합의 충격은 1990년대를 관통했지만, 1990년대 말에 와서 독일 경제 문제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기존의 통일 후유증에 더해 경직적 노동시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의 동맥경화증 그리고 해외 수요의 부진에 따른 수출 감소가 주요인으로 떠올랐다. 독일은 2002년과 2003년 각각 -0.2%와 -0.7% 역성장하며 같은 기간 G7 국가의 평균 성장률 1.1%와 1.9%와 비교해 눈에 띄는 부진을 겪었다. 유럽의 병자로 조롱받던 시기였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집권한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 사민당 정부가 밀어붙였던 노동시장 개혁은 이해 집단의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 패배의 한 원인이 됐고, 그 과실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기민당 정부에 돌아갔다. 메르켈이 집권한 2006년부터 독일 경제가 극적으로 회복됐기 때문이다. 이후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큰 타격을 받기 전까지 독일은 세계경제의 모범 국가로 착실히 성장해 왔다. 무엇이 독일 경제의 부흥을 이끌었을까. 노동시장 개혁은 초창기 몇 년 동안 효과를 미쳤을 뿐, 단위 노동 비용은 2000년대 후반에 다시 급격히 올라갔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수출 수요가 급증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게다가 2004년 유럽연합(EU) 확대에 따라 산업 경쟁력이 크게 향상됐다. 중부 유럽 국가들이 독일 산업의 거대한 분업 구조의 한 축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안정적 조달과 기술 기업의 경쟁력도 중요한 배경이 됐다.

사진 셔터스톡

중국 경기, 에너지만이 독일 경제 부진 요인 아냐

흔히 거론되는 최근 독일 경제의 부진 요인으로는 중국 경제의 상대적 침체에 따른 수출 수요의 감소와 러시아 에너지 공급의 단절에 따른 위기를 든다. 그런데 이 요인들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 경기 침체를 얘기하지만 2023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무려 5.2%에 달했고, 올해도 4% 중후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의 경우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2022년의 심각한 상황을 지나서 2023년에는 가격과 대체 공급선이 안정화됐다. 그런데 독일 경제의 하강은 2023년에 본격화됐다.

필자는 최근의 독일 경제 부진은 동조화된 상품 수요의 일시적 급락에 대응하지 못한 제조업 강국 독일 특유의 산업구조에 기인한다고 본다. 재화는 상품과 서비스로 구분된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초기 전 세계 서비스업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서비스업은 비대면을 기본으로 하는 ‘국경 간 거래(cross-border supply)’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면 접촉을 통한 공급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품 생산을 위주로 하는 제조업은 초기에 공장 폐쇄로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생산 회복을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됐다.

그래서 2020년과 2021년 상품 교역은 금방 회복됐으나 서비스 교역은 지지부진했다. 2022년이 되면서 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상품 거래는 급격히 위축되고 서비스 교역이 많이 증가했다. 포스트 팬데믹 과정에서 서비스 생산과 교역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상품 거래가 감소하는 것은 이자율 정상화에 따른 수요 위축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서비스 수요도 감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과 2021년 각국이 거의 동시에 시행한 대규모 긴급 지원 정책은 민간의 소비재 구매, 특히 내구소비재의 수요 사이클을 일시에 동조화(syncronize)시켰고, 이것은 2022년과 2023년에는 오히려 상품 수요의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제조업 생산과 수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은 크게 타격받았다. 중국 요인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 세계 상품 수요 감소가 독일의 수출을 막아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과 함께 제조업 생산과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과 한국도 같은 이유로 수출 부진을 겪었을 것을 암시한다.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요인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급격한 인구구조의 고령화, 사회간접자본 투자 부족 그리고 과도한 국내 규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는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완전히 은퇴하는 2030년까지 각국 경제는 급격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직면한다.

2015년 10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의 급격한 유입은 독일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오히려 인구구조를 젊게 하는 데 기여했다. 사회간접자본 문제는 전통적인 사회 인프라 투자도 있지만 급격한 대전환에 따른 기반 시설의 투자와 인적 자본 투자가 중요하다. 과도한 국내 규제는 모든 국가에서 철폐의 대상이다. 이렇게 본다면 독일 경제 부진의 중장기적 요인은 모두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독일 경제는 부활한다. 단, 구조 개혁이 수반된다면 더 빨리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난 상품 수요의 깊은 골짜기가 제조업 강국 독일을 강타한 경제 부진의 요인이라면, 경제 부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된다. 그러므로 독일 경제는 부활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 부진에서 속도감 있게 탈출하려면 현명한 경제정책을 꾸준히 집행하고 구조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예컨대 재생에너지 특유의 공급 불안정성을 해결하면서 에너지 전환을 해야 하고, 대전환을 위해 인적 자본과 사회 인프라 투자는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규제는 과감하게 철폐하고,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는 예측 가능하게 진행돼야 한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병자’라고 러시아 황제로부터 조롱당한 오스만제국은 끝내 반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독일 정치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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