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36> 부산] 골목의 도시…부산 초량동에서 영도까지

최갑수 2024. 5. 7.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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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구길의 전시물. 사진 최갑수

부산은 골목의 도시다.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몰려들면서 도시는 갑자기 거대해졌고, 길을 낼 수 있는 곳은 모조리 길을 냈다. 언덕과 산을 따라 이어지는 부산의 길은 좁고 가파르고 때로는 막무가내라서 여행자들을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당황스러움이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부산역에서 시작해 초량동과 중앙동, 남포동, 자갈치시장을 지나 영도까지 이어지는 골목의 연속은 부산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코스다.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부산 서민들의 삶이 서린 곳

부산역을 나와 길을 건너면 차이나타운이다. 신발원, 마가, 홍성방 등 유명한 중국집들이 몰려 있다. 어느 집은 만두가 맛있고, 어느집은 짜장면이 맛있다. 또 다른 어느 집은 탕수육으로 이름이 높다. 차이나타운을 지나면 텍사스거리. 텍사스거리에서 초량2동 주민센터를 지나면 초량초등학교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초량 ‘이바구길’이 시작된다. 옛 백제병원을 거쳐 김민부 전망대를 지나 까꼬막까지 이어진다.

이바구길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언덕에 빼곡히 들어앉은 집들이 보인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집들이 꼭 어깨를 맞대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내려와 거처로 삼았던 집들이다. 가까운 자갈치시장의 일꾼들과 공장 근로자, 부두 노동자들도 몰려들었다. 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무겁다.

영도 풍경. 사진 최갑수

골목의 연속… 부산의 진면목

부산역에서 자갈치시장, 영도까지

역사 발자취 느끼고 맛집 탐방도

국제시장. 사진 최갑수

길은 사람 두 명이 어깨를 스치고 겨우 지날 만큼 좁다. 바닥에는 거친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길을 오르다 보면 ‘168계단’ 앞에 발걸음이 딱 멈춘다. 허공에 걸친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하다. 산동네 사람들은 이 계단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렸다. 어른들은 우물물을 퍼서 지고 날랐고, 아이들은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콩나물과 두부 심부름을 했다. 저녁이면 힘든 노동을 끝낸 가장들이 술 한잔을 걸치고 휘청휘청 이 계단을 올랐다.

168계단 옆에는 ‘김민부 전망대’가 있다. 김민부는 부산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31세 아까운 나이에 요절했다. 시는 빼어났지만,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탓에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전망대 한쪽 벽에는 고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가곡이자 김민부가 가사를 쓴 ‘기다리는 마음’이 새겨져 있다. 산 주변에는 ‘이바구 놀이터’ ‘6·25 막걸리’, 장난감 가게 등 이색 가게가 몰려 있다. 이곳에서 부산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국제시장 비빔당면. 사진 최갑수

재미 가득한 시장 구경

이바구길을 내려오면 중앙동을 지나 남포동과 국제시장으로 이어진다. 국제시장은 본래 2층 건물과 총 6개 공구로 된 단지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인근의 신창시장, 창선시장, 부평시장을 통틀어서 국제시장이라 부른다. 굳이 비교하자면 서울의 남대문시장과 닮았다. 신발, 가방, 안경, 귀금속 등을 파는 상점들이 좁은 길을 따라 미로처럼 얽혀 있다.

국제시장의 다양한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구석구석에 숨은 맛집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골목마다 저렴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반긴다. 어묵, 비빔당면을 비롯해 충무김밥, 잔치국수, 파전, 순대, 식혜, 유부초밥, 수수부꾸미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양곱창 구이. 사진 최갑수

남포동에서 길을 건너면 자갈치시장이다. 국내 최대 수산물 시장이다. 우리나라 수산물과 건어물의 30~50%가 이곳에서 공급된다고 한다. 시장에 들어서면 노점상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좌판에는 고래고기를 비롯한 각종 생선이 올라와 있다. 특유의 바다 내음이 물씬한 거리에는 구경하러 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배가 출출해 생선구이 집으로 들어간다. 고등어 정식을 주문한다. 반찬 예닐곱 가지와 고등어 두 토막, 고봉밥이 ‘오봉(쟁반)’에 담겨 나온다. 자갈치로 들어온 뱃사람들을 위한 식당이다. 오전 3시부터 문을 연다. 고등어가 싱싱해 더 맛있다.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올드 부산을 만나다

자갈치시장을 건너면 영도다. ‘올드’ 부산이라 불린다. 영도에 가면 해운대와 광안리, 남포동, 서면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서울로 치자면 종로 느낌이 난다. 조금은 낡은 느낌이 드는데, 요즘 말로 하자면 빈티지스럽고 레트로하다.

영도 하면 영도다리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 다리가 올려졌다 내려졌다 하는 유일한 다리다. 지금도 도개를 한다. 영도다리 앞마을은 깡깡이예술마을로 불린다. 옛 도선장 주변으로 만들어진 동네인데 일제강점기인 1912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조선 산업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깡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망치 소리 때문이다. 배를 수리하려면 배 아래 쪽에 붙은 조개와 이물질을 제거하고 녹을 벗겨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이 작업을 하는 망치 소리가 동네에 가득했다고 한다. 지금도 조선 업체 12개가 운영 중이다.

2000년대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마을이 쇠락했지만, 선박 체험관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면서 다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갤러리, 박물관, 공방 등 여기저기 들어가 볼 만한 곳이 많다.

깡깡이예술마을 곳곳에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33개 예술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마을 초입에 자리한 안내 센터에서 배포하는 리플릿에 예술 작품 위치가 자세히 나와 있는데 이들 작품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깡깡이예술마을 역사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된다. 구름 모양 가로등과 총천연색 벽화 등은 ‘인생 샷’ 배경으로 손색이 없다.

장림포구 부산 여행에서 SNS에 가장 자주 올라오는 곳. 알록달록한 컨테이너 하우스가 늘어서 있어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연상시킨다. 커플들 사이에서는 ‘부네치아’로 불리는 곳이다. 화려한 무지개 색깔을 입힌 건물과 배가 떠 있는 포구가 어울려 낭만 그득한 분위기를 낸다.

맛있는 부산 음식들 부산에서 가장 먼저 맛봐야 할 음식이 밀면과 돼지국밥이다. 돼지국밥은 돼지고기를 삶은 뽀얀 국물에 야들야들한 돼지고기를 듬뿍 넣고 양념에 무친 부추를 넣어 먹는다. 해운대 양산국밥 추천. 밀면은 부산식 냉면이다. 한국전쟁 직후 이북 출신 피난민들이 메밀과 녹말이 없어 밀가루로 만들어 먹던 면 요리가 밀면의 시작이다. 쫄깃하면서도 질기지 않은 면발과 감칠맛 나는 육수가 특징이다. 부산역 앞 황산밀면이 맛있다. 자갈치시장 앞에 고등어 백반을 내는 식당이 몇 집 몰려 있다. 양곱창 거리도 가 보자. 푸짐한 양곱창과 대창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대양양곱창이 유명하다. 깡깡이예술마을에 자리한 복성만두는 50년 노포. 직접 만든 군만두와 만두 백반이 유명하다. 만두 백반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음식. 만둣국에 밥을 말아 먹는다. 초량 옹골찬은 ‘낙곱새’가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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