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 MZ 세대의‘짠테크’] 도시락 찾는 MZ 세대, 편의점 ‘마감런’도… 놀이 문화 된 ‘극단 절약’

최정석 조선비즈 기자 2024. 5. 7. 10: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직장인 김민완(32)씨는 두 달 전부터 회사 점심시간에 도시락집에 간다. 물가가 치솟는 상황에서 그나마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식비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월급에 식비가 같이 나오긴 하지만, 물가가 너무 올라서평소처럼 점심 때 식당에 가면 생필품이나 여가생활에 쓸 돈이 모자란다”며 “그나마 줄이기 쉬운 게 식비라는 생각이 들어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사내에 김씨를 따라 식비를 아끼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는 ‘도시락 팟(일행을 뜻하는 party의 줄임말)’도 생겼다.

취준생 이태준(28)씨도 얼마 전부터 도시락을 애용 중이다. 이씨는 “원래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직접 반찬을 해 먹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도시락 사 먹는 것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며 “지금은 밥만 집에서 짓고 반찬은 도시락집에서 사 먹고 있다”고 했다.

서울시내 한 도시락 가게에 포장된 도시락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뉴스1

고물가 장기화에 도시락 판매 '날개'

고물가 국면에 소비 심리가 굳어가는 와중에도 도시락 업계는 선전 중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솥도시락을 운영하는 한솥의 2023년 매출은 1371억원으로 2022년보다 8%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44억원으로 12.4% 증가했다. 한솥은 2022년 창사 이래 첫 1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했는데, 2023년에도 영업이익이 100억원을 넘어서며 증가세를 지속했다.

한솥도시락 측에서도 이를 체감하고 있었다. 4월 1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 강남구 대치동 등에 있는 한솥도시락 매장 7곳을방문해 문의한 결과, 7곳 모두 최근 매출이 증가세라고 답했다. 4년 전 잠실 한 주택가에 한솥 매장을 열어 운영 중인 김모(51)씨는 “올해 들어 점점 주문량이 늘어나는 걸 확실히 체감 중이다”라며 “인근 주택가에 사는 젊은 1인 가구나 초·중·고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대화하던 중에도 매장 안은 배달 주문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다.

'극한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위해 편의점 도시락 찾기도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움직임도 많다. 특히 청년층은 가격이 저렴한 편의점 도시락을 더 싸게 먹기 위해 ‘마감런’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편의점들은 매장에 진열한 식품 중 소비기한이 다 돼 가는 것을 정가보다 싸게 내놓고 있는데, 이를 노리는 게 마감런이다. 소비기한이 지나면 제품을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든 판매하려는 편의점 측 의도와 식비를 극단적으로 아끼려는 청년층 수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무지출 챌린지 관련 게시물들. 사진 인스타그램

일례로 국내 편의점 브랜드인 GS25는 2023년 11월 소비기한이 임박한 신선식품(도시락·샌드위치 등)을 45% 싸게 내놓는 ‘마감할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GS25 측에 따르면, 마감할인으로 판매된 상품 수량은 2023년 12월 대비 올해 3월에 6.7배 늘었다. 이용 고객 연령대는 20대 38%, 30대가 34%였다. 마감런을 활용하는 소비자 10명 중 7명이 2030이라는 뜻이다. 마감할인으로 판매된제품으로는 도시락이 가장 많고 샌드위치, 김밥이 그 뒤를 이었다. 청년들은 편의점 도시락에 손을 뻗는 이유로 ‘가성비’를 꼽았다. 이날 오후 강남의 한 편의점에서 만난 직장인 유모(31)씨는 “배달 음식 가격에 배달비까지 더한 돈이면 편의점 도시락을 많게는 네 개까지 먹을 수 있다”며 “일반 식당도 기본적으로 비싸고, 특별히 싼 곳을 가면 길게 줄을 서야 하다 보니 최후의 보루가 도시락이다” 라고 말했다. 유씨는 소비기한을 3시간 앞둔 도시락 두 개를 5000원 남짓한 가격에 구매하며 “요새 이 가격에 밥 두 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어딨느냐”고도 했다.

핵심은 '지출 줄이기'

도시락을 찾는 움직임이 늘어나는 추세의 핵심 원인은 결국 ‘지출 줄이기’에 있다. 공용 사무실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정모(33)씨는 최근 집에 남은 반찬으로 도시락을 만들어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정씨는 “물가는 오르는데, 벌이는 그대로라 지출을 줄이기로 결심했다”며 “외식을 줄이고 커피도 탕비실 커피로 대체하면서 지출을 30~40% 아꼈다”고 말했다.

정씨 같은 생활 패턴은 최근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 사이에서 ‘짠테크(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통한다. 단순히 식비를 아끼는 걸 넘어 하루 종일 한 푼도 쓰지 않는 ‘무(無)지출 챌린지’부터 하루에 1만원 이하를 소비하는 ‘만원의 행복’ 등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행태가 바로 짠테크다. 이들은 ‘외식 줄이기’ ‘근거리 도보 이용’ ‘회사 구내식당 이용’ ‘앱테크’ ‘중고 거래 시장 활용’ 등을 통해 지출을 줄이고 있다.

4월 15일 오후 8시 망원한강공원은 헬스장 러닝머신 대신 ‘한강 달리기’를 택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만난 직장인 김장우(36)씨는 ‘무지출 챌린지’에 동참하면서 “냉면 한 그릇만 먹어도 1만원 이상이 나오는 시대가 됐다”며 “다니던 헬스장을 그만두고 저녁 약속을 줄이면서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은 통계로도 나타났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소매판매액 지수는 101.4로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소비가 급격히 얼어붙던 때인 2020년 11월(101.2)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에 고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까지 겹치자, 소비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MZ에게 극단적 절약은 일종의 놀이 문화"

돈 버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포인트를 모아 현금화하는 ‘앱테크’를 하는 청년도 있다. 걸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앱을 사용하는 취준생 장수민(25)씨는 이날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러닝크루와 함께 6㎞를 뛰고 포인트를 적립했다. 주말 아르바이트 외엔 소득이 없는 장씨는 “매일 최대 140원까지 모을 수 있어 한 달에 커피 한 잔 값은 버는 셈” 이라고 했다. 유사 서비스를 운영 중인 토스 관계자는 “최근 들어 물가가 크게 오르면서 앱을 사용하는 이용객이 늘었다”고 했다.

냉장고에 있는 음식 재료를 소진할 때까지 장을 보지 않는 ‘냉장고 파먹기’도 인기다. 12년 차 주부 이모(42)씨는 “가스, 전기 요금이 오른 만큼 식비라도 줄여야겠다 싶어서 남은 반찬으로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를 연구했다”며 “마트에 가면 기본 몇십만원은 깨지다 보니 장보기를 피한다”고 말했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는 지출 절제를 돕는 ‘거지방’이 등장해 서로의 소비를 평가하고 있다. 낭비라고 생각되는 소비에는 비판이 이어지고, 돈을 안 쓴 사람에게는 칭찬이오가면서 무지출 챌린지를 독려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경기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비롯된 우울감과 심리적 상실감을 놀이 문화로 바꿔 동질감을 느끼고 위안을 얻기 위한 동향으로 볼 수 있다”며 “지출을 억제하는 것이 힘든 일인 만큼 서로 응원하는 문화는 더 확산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