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3월 尹 정부 '재정 조기집행' 확 늘어난 까닭 [추적+]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김정덕 기자 2024. 5. 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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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비과학적 재정 조기집행률 증가
3월에 유독 재정 조기집행 집중
총선 앞둔 정치적 결정 우려도
경기활성화 도구가 악재될 수도  

재정 조기집행. 중앙정부 재정사업의 집행(지출)액 상당분을 그해 상반기에 사용하는 제도다. 그해 경기 전망이 '상저하고'일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상반기에 재정을 풀어 경기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재정 조기집행이 '정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 4ㆍ10 총선 직전인 3월에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률'이 높아진 건 그래서 따져봐야 한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 11일 정부(기획재정부)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기재부가 국가재정법에 명시된 국가결산보고서 제출 마감일(4월 10일)을 하루 넘긴 것도 모자라, 이날 국무회의에서 심의ㆍ의결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보고서'를 보니 나라살림도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국가 순자산이 전년(2022년)보다 늘었고,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감소했다"고 강조했지만, 그렇게만 보기엔 나쁜 지표가 너무 많았다.

예컨대, 지난해 국가채무는 전년보다 늘어 역대 최대인 1126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4%였다. 1982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전년보다 줄었다지만, 적자액은 87조원으로 지난해 예산안 발표 때 예상치보다 28조8000억원 많았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정부가 내세운 건전재정 관리 기준치인 3.0%를 웃돌았다. 살림살이를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에서는 "정부가 총선(4월 10일)을 앞두고, 여권 지지표 이탈을 막으려 국가결산보고서를 일부러 늦게 제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기재부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진짜 이유다.

[※참고: 기재부는 "4월 10일이 공휴일이어서 행정기본법과 민법 등에 따라 익일인 4월 11일까지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행정기본법엔 "행정에 관한 기간의 계산은 행정기본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법을 준용한다"는 조항이 있긴 하다. 하지만 '행정기본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란 단서가 달려 있다. 일부에서 '국가재정법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만큼' 민법을 준용하는 게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중요한 건 이 이슈로 인해 4월 11일 기재부가 내놓은 '4월 재정동향'에 들어있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꼬집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장 이상한 건 재정집행률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총수입은 97조2000억원, 지출은 129조9000억원이었다. 지출이 33.2%나 많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재정 조기집행 목표를 달성했지만 사상 최대치의 불용을 기록했다.[사진=뉴시스]

이런 상황이 나타난 건 '재정 조기집행 제도' 때문이다. 재정 조기집행이란 그해 중앙정부 재정사업의 집행(지출)액 상당분을 상반기에 사용하는 거다. 재정을 연말에 몰아서 쓰거나 불용하는 것을 막고, 경기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만든 제도다. 2002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참고: 정부는 매년 중앙재정 사업의 연간 조기집행(신속집행) 계획을 발표한다. 그 계획된 집행을 상반기 내에 얼마나 달성하느냐가 바로 아래에서 말하는 '재정 조기집행률'이다. 올해 연간 신속집행 계획 목표액은 252조9000억원, 상반기까지 목표는 164조4000억원(65.0%)이다. 1분기에 106조원(41.9%)을 조기집행했다.]

문제는 이 제도가 당초 목적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데 있다. 크게 네가지를 지적할 수 있는데, 첫째는 재정 조기집행 제도의 변질이다. 2002년 53.5%로 시작한 재정 조기집행률 목표치는 매년 높아져 올해 65.0%에 이르렀다.

지난 24년간 3개 연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정 조기집행률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이를 성과라고 적극 홍보했다. 2023년 역시 목표치는 65.0%, 재정 조기집행률은 65.7%였다.

그럼에도 지난해 불용액은 45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당초 재정 조기집행의 목적(불용 방지)은 사라지고, 목표치를 설정해 초과 달성하는 데에만 몰두했다는 방증이다.

둘째는 재정 조기집행에 총선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언급한 것처럼 올해 재정 조기집행률 목표치는 65.0%다. 지난해와 목표치가 같다. 그런데 올해 1분기 재정 조기집행률은 41.9%로, 지난해 1분기(34.1%)보다 7.8%포인트 더 높았다. 올해 1분기에 재정 조기집행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거다.

특히 올해 2월말 기준 재정 조기집행률이 24.9%(월평균 12.4%)였다. 3월(17.0%)에 재정 조기집행이 더 집중됐다는 의미다. 제도의 목적을 잃은 채 재정 조기집행에만 집착하는 것도 문제지만, 3월에 재정 조기집행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이다.

셋째, 재정 조기집행은 경기활성화를 위한 도구지만, 자칫하면 경기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사실 재정 조기집행은 경기가 '상저하고上底下高(상반기는 나쁘고 하반기는 좋은)' 국면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경기가 나쁠 때 돈을 풀어야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가 있어서다.

하지만 현재의 재정 조기집행은 이런 원칙과 무관하게 남발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4월 22일 발표한 '재정 조기집행 제도의 경기안정화 효과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2년부터 2023년까지 22년간 정부는 6개 연도는 '상고하저'로, 나머지 16개 연도는 '상저하고'로 경기를 전망했다. 하반기에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는 경향성이 있었다는 거다.

실제 상저하고 흐름이 나타났다면 재정 조기집행은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저하고로 전망한 16개 연도 중 실제 상저하고 연도는 9개 연도뿐이었고, 7번은 상고하저였다. 7번은 재정 조기집행의 기대효과보다는 역효과가 컸다는 뜻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재정 조기집행 관행을 지양하고, 경기 진단부터 정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려스러운 건 올해 경기는 상고하저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을 상반기 2.2%, 하반기 2.0%로 예상했다. 그럼에도 올해 무리하게 사상 초유의 재정 조기집행을 했다는 건 정부 스스로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거나 다름없다.

넷째, 무리한 재정 조기집행은 재정건전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세수가 덜 걷힌 상황에서 재정을 조기집행하려면 어딘가에서 돈을 끌어와야 해서다. 이를테면 마이너스통장을 써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올해 정부가 1분기에 한국은행에서 차입한 자금만 32조5000억원에 달한다. 2011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지난해보다는 1조5000억원 많고,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급전이 필요했던 20 20년(14조9000억원)보다 2.2배 많다. 누적 대출이자만 638억원에 달한다.

물론 정치를 의식한 재정지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재정상황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 향후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근거해 재정정책을 펴선 안 된다. 감세는 감세대로 하고, 지출은 늘리는 모순적인 행위는 심각한 재정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가 조심해야 할 '이슈'들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
jcs619@hanmail.net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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