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공연장 도착, 맨 나중에 떠나… 악보 직접 그리기도”[공연을 움직이는 사람들]

이정우 기자 2024. 5. 7.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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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을 움직이는 사람들 - (3) 장동인 KBS교향악단 악보 담당
보통은 지휘자가 쓰던 악보 공유
같은 곡도 지휘자별 보관하기도
안익태·홍난파 등 작품도 보유
전문과정 아직 없어 도제식 교육
악보 고칠수 있는 정도 지식필요
KBS교향악단 악보 담당 장동인 공연기획팀 공연지원파트 과장이 악보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일주일 휴가를 다녀오니 일주일치 일이 밀려 있었다”며 “아무도 내 일을 대신 해주진 못한다”고 웃었다. KBS교향악단 제공

오케스트라 공연이 있는 날. 공연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은 누굴까. 지휘자도 단원도 아니다. 정답은 오케스트라의 악보 담당이다.

지난달 24일 만난 KBS교향악단 악보 담당 장동인(36) 공연기획팀 공연지원파트 과장은 “악보를 구하고, 보관하며, 그밖에 관련된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그밖의 일’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KBS교향악단의 제801회 정기연주회가 있던 인터뷰 당일 오전부터 장 과장의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흔히 악보는 서점에서 책을 사듯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장 과장은 “모든 악보를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작권에 따라 빌리는 것만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빌리는 것이 사는 것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고 했다. 대표적 예가 작곡가 브루크너이다. 교향곡 판본마다 각기 다른 편집자들에게 권한이 있어서 저작권이 만료되지 않았다고 한다.

악보를 구하는 경로는 다양하다. 보통은 지휘자가 쓰던 악보를 공유한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지휘자별로 곡에 대한 해석과 편성이 달라지기 때문. 장 과장은 “국내에서 살 수 있는 악보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터넷 검색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말했다.

KBS 방송국 내 KBS교향악단 공연기획팀 사무실 한쪽엔 보물창고가 있다. 만화방 책장 같기도 한 곳에 악단의 역사가 담겨 있다. 안익태, 홍난파 등 오래된 국내 작곡가의 작품과 함께 작곡가 윤이상의 미출판 악보도 소장 중이다.

보관하는 악보의 양은 상상초월이다. 사무실 창고로 모자라 주변 복도까지 쌓여 있다. 그 수는 얼마나 될까. 장 과장은 “정확히 알 수 없다”며 “작품 수로 치면 2000곡은 족히 넘고, 페이지로는 수백만 장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전자악보를 보는 연주자들이 많아졌지만, 기본은 종이 악보이다. 장 과장은 “악보에 단원들의 메모가 쌓이는데, 이것도 악단의 자산이자 전통”이라고 밝혔다. 장 과장의 말처럼 악보는 공연의 기록이자 세월의 흔적이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경우엔 KBS교향악단을 거친 지휘자별로 악보가 있다. 장 과장은 “악단과 자주 호흡을 맞춘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악보도 따로 보관 중”이라고 말했다.

공연장에서 각 악기 파트별 악보를 나눠주는 것도, 수거하는 것도 악보 담당의 일이다. 그래서 악보 담당은 공연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 떠난다. 장 과장은 “단원들이 떠나면 비로소 마지막 업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악보 담당은 악보를 직접 그리기도 한다. 장 과장은 “곡이나 지휘자 특성에 따라 반음을 높이거나 낮춘 악보를 따로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그런 악보가 없으면 직접 그려서 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악보를 고칠 수 있을 정도로 악보 담당은 음악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장 과장은 연세대 음악대학 작곡과 출신이다. 유학을 준비 중이던 2017년 우연히 KBS교향악단의 일을 도와준 게 지금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악보 담당을 위한 전문 교육 과정은 전무하다. “음악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 전임자에게 배우는 경우가 많아요. 철저히 도제식이죠.”

지난해 12월 결혼한 장 과장은 신혼여행 때 처음으로 정기연주회에 빠졌다. 그는 “매년 여름 2∼3일 정도 쉰다”며 “다행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미소 지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 공통질문

―오케스트라 악보 담당이란.

“악단이 공연 프로그램을 정하면 그에 알맞은 악보를 내놓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악보 담당의 필수 덕목은.

“음악적인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특히 듣는 귀가 있으면 이 일을 하기 수월해요. 그리고 끈질긴 체력이 필요합니다. 상자째 오는 악보들을 직접 날라야 하니까요.”

―가장 뿌듯한 순간은.

“구해온 악보가 보기에 불편할 수가 있어요. 제가 자발적으로 마디 수를 따로 기입하거나 페이지를 연주하기 좋게 바꿔놓는 경우가 있죠. 단원들은 제가 했는지도 모르지만, 원활하게 리허설이 진행되면 저 혼자 뿌듯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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