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사람도 온다

신재우 기자 2024. 5. 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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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규 독자 눈길·발길 잡는 ‘팝업스토어’ 마케팅
밀리의서재, 더현대 6층에 오픈
책 속 장소 현실에 나온 듯 꾸며
“예쁜 가게라 들렀다 책에 관심”
창비, 아울렛에 동화 팝업 설치
기존 독자 유지 ‘북클럽’도 운영
민음사, 신간·굿즈 제공 서비스
김혜정 작가의 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팝업스토어가 지난달 26일부터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팝업의 성지’로 불리는 더현대 6층에 ‘동잠 문방구’가 들어섰다. 2030 세대를 타깃으로 한 문구점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이곳은 김혜정 작가의 소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 속 장소를 구현한 곳이다. 밀리의서재 창작 플랫폼 ‘밀리로드’를 통해 연재했던 작품을 종이책으로 출간하고 지난달 26일부터 이를 소개하는 팝업스토어까지 열었다.

올해 초부터 출판계 팝업스토어 트렌드가 이어지는 가운데 밀리의서재의 첫 팝업스토어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야기 속 공간을 실제로 어떻게 구현했을지 호기심을 안고 2일 방문한 동잠 문방구는 소설 속 주인공 혜원이 살아가면서 잃어버린 물건들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걸맞은 콘셉트로 알차게 구성돼 있었다. 소설 속 혜원의 분실물인 필통, 가방 등은 물론 책 속 문장을 천에 새긴 키링을 한정판 굿즈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었고 고객들이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문장 책갈피부터 상품을 구매하면 증정하는 스크래치 복권 등 흥미로운 요소도 있었다. 그중 어린 시절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한쪽 벽면에는 200여 개의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눈에 띄는 점은 팝업스토어를 찾은 상당수 고객들이 소설에 대해 알지 못한 채 방문을 했다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열심히 책을 살피던 박모(28) 씨는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를 알지 못했지만 지나가던 중 예쁜 가게를 발견해 구경하게 됐다”며 “전혀 모르던 책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사들이 진행하는 팝업스토어는 기존 구매층이 아닌 신규 독자 유입을 목표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4월 출판사 창비가 500호 시선집 출간을 맞아 마련한 팝업스토어 ‘시크닉’은 물론 지난해 9월 문학동네가 연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출간 기념 팝업스토어가 각각 2030 젊은 세대들이 자주 찾는 서울 마포와 성수에 마련된 것도 이 때문이다. 김수인 문학동네 마케터는 이에 대해 “2030 세대에게 책을 판매한다고 생각했을 때 팝업스토어라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내부적인 의견이 모였다”며 “다른 팝업스토어가 즐비한 곳에 설치하면 여러 곳을 구경하던 중 방문할 수 있고 기존에 만나왔던 독자와는 정말 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3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종합독서율은 역대 최저인 43%를 기록했다. 일 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10명 중 6명에 가깝다. 이뿐만 아니라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3년 출판시장 통계보고서’를 살펴보면 국내 주요 71개 출판사의 지난해 총영업이익은 1136억 원으로 전년 대비 무려 42.4%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차료부터 굿즈 제작까지 기존의 온라인 마케팅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책과 접점이 없는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이를 감수하고 진행한 팝업스토어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한다. 이정원 창비 채널마케팅 팀장은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오히려 책에 대한 분석을 잘하고 타깃을 명확하게 설정하게 된다”며 “타깃층이 어디에 밀집해 있는지를 고려해 적합한 홍보를 집행하는 방식으로 마케팅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출판사 창비는 자사의 동화 베스트셀러인 ‘고양이 해결사 깜냥’의 판매를 위해 가족 방문객이 많은 롯데프리미엄아울렛에서 3차 팝업스토어를 지난 1일부터 진행하고 있다. 유아 저서의 주요 구매층인 가족 단위 고객을 노리기 위한 위치 선정이다. 앞서 성사시킨 1·2차 팝업 또한 가족 동반 고객이 많은 현대백화점과 디큐브시티를 택했다.

한편으론 기존 팬덤을 잡는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출판사의 책에 충실한 독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신간을 홍보하고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특히 민음사와 문학동네 등은 1년간 회원들에게 책과 굿즈를 제공하는 북클럽 서비스를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다. 평균 4만∼8만 원의 금액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출판사의 책을 받아볼 수 있고 가입 회원들을 위한 커뮤니티도 존재하는 만큼 진정한 팬덤 독자를 위한 마케팅이다. 2011년부터 북클럽을 탄탄하게 운영하고 있는 민음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입 첫날 신청자가 몰려 홈페이지 접속이 지연되는 흥행을 겪기도 했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장은 “한쪽에선 성인의 절반 이상이 책을 안 읽는다고 얘기하지만 다른 쪽에선 책이 새로운 ‘힙’으로 자리 잡아서 독서를 인증하기도 하고 공유하기도 한다”며 “책과 텍스트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있는 만큼 마케팅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면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이러한 행보는 문체부가 최근 발표한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2024∼2028)과도 맞닿아 있다. 문체부는 ‘비독자의 독자 전환과 책 친화 기반 조성’을 목표로 세우고 총 12개의 정책과제를 추진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해당 계획을 바탕으로 문체부는 책과 멀어진 비독자를 대상으로 교통 정기권 구매와 연계한 독서캠페인, 기업-도서관 연결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는 한편 기존 독자들을 위한 독서문화행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출판사 창비의 팝업스토어 ‘시크닉’. 창비 제공

“나 SNS서 그 책 봤어”… 출판사 마케팅 핵심은 ‘경험’

문학동네, 인스타 매거진 협업
민음사는 유튜브 채널로 노출

창비, 영화·뮤지컬 제작 돕고
원작에 회귀하는 선순환 노려

“2030 세대들은 경험을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김수인 문학동네 마케터)

“최근의 마케팅은 책 이상의 경험을 제공해서 독자에게 가닿으려는 노력이죠.” (이정원 창비 채널마케팅 팀장)

“어떻게 하면 책 읽는 경험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연속입니다.”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장)

국내 주요 출판사의 마케터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요즘 마케팅의 핵심은 ‘경험’이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이 아닌 고객들이 책과 관련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독자로 이끄는 것. 이를 목표로 등장한 것이 팝업스토어와 관련된 굿즈 개발이다. 물론 오프라인 공간에서 열리는 행사는 독자들에게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이에 대한 비용이 만만치 않은 만큼 대형 출판사도 1년에 2∼3회 이상 진행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출판사들은 책과 관련된 풍부한 경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최근 문학동네의 경우에는 맥락에 맞는 콘텐츠에 책이 녹아들어 가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이를 접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김 마케터는 “인기 플랫폼이나 SNS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출판사에서 직접 플랫폼이나 SNS 계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매체와 협업하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며 “서로가 가진 요소들을 상호 교환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최근 뜨고 있는 인스타그램 매거진(인스타그램에서 잡지 형식으로 게시글을 올리는 계정)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신간 소개를 진행할 계획이다.

창비는 출판사가 보유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오리지널 IP를 바탕으로 제작된 뮤지컬·애니메이션·영화 등을 접한 고객들이 원작에 관심을 갖는 선순환 구조를 노린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이 공개돼 원작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팀장은 “기존의 방식대로 책을 파는 것 외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콘텐츠 자체를 소개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을 제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독자 20만 명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를 보유한 민음사는 조금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노출시킬 플랫폼을 가진 만큼 책을 둘러싼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민음사는 책을 만드는 제작자와 편집자, 출판사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 등을 소개한다. 조 부장은 “책을 홍보한다기보다 재미있게 다루는 방식으로 소개해 책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여주려고 한다. 유튜브도 이런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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