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갈등’ 뒤얽힌 실타래…중계보도 넘어 공론장 구실 충분했나

이종규 기자 2024. 5. 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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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총편과 제언
경제 기사 맥락 보도 아쉬워…취재원 투명성도 부족
스포츠, 종목·성별 쏠림 문제…‘논쟁 하니’ 토론면 눈길
제11기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12차 회의가 지난 4월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리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제11기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이 됐다. 열린편집위는 그동안 매달 주제를 정해 한겨레 콘텐츠를 집중 점검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해왔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 가운데 일부는 콘텐츠 제작에 반영되기도 했지만, 현실적 제약 탓에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위원들이 내놓은 고견은 두고두고 한겨레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열린 11기 열린편집위원회 마지막 회의에서 위원들은 한겨레 콘텐츠와 뉴스 서비스 전반에 대해 격려와 비판, 제언을 쏟아냈다. 이날 회의에는 제정임 시민편집인 겸 열린편집위원장(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김우경 에스케이(SK) 수펙스추구협의회 피아르(PR) 담당 임원,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 방준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예진 경상국립대 학생(전 경대신문 편집장), 이준형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홍연지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가 참석했다. 심창식 ‘한겨레:온’ 편집장은 다른 일정이 있어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했다. 한겨레에서는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뉴스룸국 이주현 뉴스총괄, 전정윤 인사교육부국장이 참석했다.

제정임 어느덧 마지막 회의다. 그동안 다양한 관점에서 좋은 의견 많이 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한겨레에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오늘은 자유롭게 한겨레에 하고 싶은 말을 나눠보자.

김종진 이번달에는 경제와 스포츠면을 좀 유심히 살펴봤다. 경제 기사를 내가 평소에 늘 관심있게 읽는 노동 기사와 비교해보면 맥락적 보도가 좀 부족한 것 같다. 경제 기사에도 해석이나 복합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원의 투명성도 좀 부족한 것 같다. 경제도 노동 분야 못지않게 이해관계가 첨예할 텐데, 다양한 취재원을 인터뷰해서 가급적 실명으로 실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경제면에 기업 홍보성으로 느껴지는 기사들이 더러 눈에 띄더라. 그런 기사라도 정보 차원에서 독자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차라리 별도의 코너를 만들어서 소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스포츠면의 경우, 종목 쏠림 현상이 여전하다. 남자 축구, 야구 경기는 기사와 사진의 비중이 가치에 비해 너무 과하다. 고민이 좀 필요해 보인다.

이준형 한달간 오피니언 지면을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우선 ‘왜냐면’은 최대한 많은 사회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노력을 20년 넘게 이어왔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고 느껴졌다. 이번에 세어 보니 지면에 실리는 칼럼 종류가 73개나 되더라.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좋은 칼럼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지역의 목소리를 담는 ‘서울 말고’, 노회찬재단과 함께하는 ‘6411의 목소리’는 기성 언론이 놓치기 쉬운 주제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칼럼이 필자별, 연재 꼭지별로 분류가 돼 있는데, 정치·과학기술 등 주제별로도 아카이빙을 해놓으면 어떨까 싶다. 정치 칼럼의 경우, 여의도 정치나 대통령실 관련 칼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처럼 기존 정치를 넘어서는 안목을 보여주는 전문 정치 칼럼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더와 저널리즘 문제에 전문성이 있는 필진도 더 보강했으면 한다.

김우경 최근 ‘논쟁 하니’라는 면이 생겼던데, 의견이 갈리는 사안에 대해 양쪽의 주장을 균형 있게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6411의 목소리’는 현장감이 있어서 더 울림이 큰 것 같다. 내가 한겨레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대중문화 기사였다. 외부에서 보면 한겨레는 뭔가 좀 심각하고 무겁다는 느낌이 있다. 대중문화나 ‘ESC’ 섹션 등을 통해 그런 이미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ESC 콘텐츠의 경우, 유튜브를 함께 활용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요즘 엠지(MZ) 세대는 케이팝, 케이컬쳐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영자지들은 한류 콘텐츠를 대폭 강화해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들었다. 한겨레도 대중문화 기사를 영어로 번역해서 서비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제정임 한겨레는 ‘좋기는 한데 뭔가 부담스럽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독자 니즈를 반영한 대중문화 콘텐츠가 풍성해지면 ‘친근하고 재미도 있네’ 하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홍연지 최근 한달치 스포츠면을 분석해봤다. 한달간 지면에 실린 기사(사진 기사 포함)가 104건이었는데, 야구가 33건, 축구가 24건이었다. 종목 쏠림이 심하다는 걸 수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 선수와 여성 종목을 다룬 기사는 24건에 불과했다. 사진 배치에도 종목 쏠림, 성별 쏠림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남자 축구 소식이 실리면 사진도 남자 축구 선수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경우가 많았다. 야구는 여러 장의 사진이 실리는 날도 있었다. 지난달에 어느 스포츠 구단 쪽에서 홍보 영상을 남자 기자용, 여자 기자용으로 따로 만들어 보낸 일을 꼬집는 기사가 실렸는데, 스포츠 분야에 그런 식의 성차별적 관행과 문화가 많이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런 부분을 관심 갖고 취재해주기 바란다.

심창식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내 주변의 많은 한겨레 독자들이 이른바 ‘비명횡사’ 등 민주당 공천 갈등 관련 한겨레 보도에 반발해 절독을 심각하게 고민하더라. ‘한겨레는 마치 진보 진영의 시민·독자들과 결별하려고 작정한 신문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창간주주이자 독자로서 뼈아프게 들렸다. 독자들이 계속 이탈한다면 한겨레의 미래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한겨레가 기후위기, 대기업 감시, 약자를 보듬는 기획 등 나름 중요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데도 왜 독자들은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정치 기사만 보고 비난하는지, 그 이유를 한겨레는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다. 진보 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은 정치다. 갈수록 정치 지형이 양극화되고 있기 때문에 진보 시민들은 앞으로 더욱 정치 보도에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겨레는 영향력과 독자를 잃어가며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고 답을 해야 한다. 독자들이 이탈하더라도 한겨레는 한겨레만의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여기며 자위한다면 그것은 루쉰의 ‘정신승리법’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한겨레가 정파성 배제라는 규범을 전가의 보도처럼 여기며 시민과 독자들의 정서에 무뎌진 건 아닌지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한다.

이예진 최근 디지털 서비스 개편 이후 쉽고 유용한 콘텐츠가 눈에 띈다. ‘쩐화위복’과 ‘글로벌 파파고’ 연재가 대표적인 예다. 쩐화위복은 이제 막 재테크에 관심 갖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고, 글로벌 파파고의 경우 복잡한 국제관계를 간명하게 정리해 주니까 매우 유익했다. 젊은 독자 유입을 위한 아이디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최근 시작된 ‘논쟁 하니’처럼 사회 쟁점에 대한 찬반 의견을 보여주는 콘텐츠는 이슈를 이해하고 생각을 다듬는 데 유용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짧은 시간에 이슈를 쉽게 이해하고픈 욕구가 큰데, 그런 콘텐츠를 쇼츠(짧은 영상)로 재구성해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 신문 지면을 스크랩해서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6dp’ 계정이 2030세대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한겨레도 그런 시도를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종이신문이 가진 물성,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을 좋아하는 젊은층을 한겨레 독자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방준성 열린편집위 활동하면서 공부가 참 많이 됐다. 한겨레에는 인공지능(AI)이 기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후변화가 왜 물가를 끌어올리는지 등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기사들이 있어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월호 참사 등 예전 사건들을 잘 정리해주는 기사도 좋았다. 다만, 기사가 반복되는 경우가 좀 많아서, 콘텐츠가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한겨레는 영어를 한글로 표기하곤 하는데, 그게 좀 읽기가 불편할 때가 있다.

제정임 다른 언론은 잘 다루지 않는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취약계층의 고충을 한겨레가 잘 전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집, 제주 4·3 특집처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사건들을 잘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리마인드해주는 역할도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기후위기 보도도 양과 질 측면에서 더 수준이 높아진 것 같다. 최근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계기로 쓴 ‘헌재 재판관도 궁금해한 기후소송 쟁점’ 기사도 좋았다. 최근 의사 증원 갈등을 계기로 왜냐면에 ‘진짜 의료개혁을 위한 연속 기고’를 연재했는데, 의사 증원 논란과 관련해 짚어봐야 할 쟁점들을 잘 보여줘서 이 이슈에 대해 좀 깊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한겨레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우리 사회의 중대 현안에 관한 공론장 역할을 좀 더 집중력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번 의사 증원 논란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언론은 갈등 사안을 다룰 때 그냥 중계방송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어떤 현상을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만으로는 언론의 사명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생각을 최대한 들어보고 지면을 통해 토론하는 과정에서 뭔가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해줬으면 한다.

이주현 한겨레 콘텐츠에 대해 마지막까지 많은 조언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위원장님이 말씀하신 공론장 역할 강화는 저희도 바라는 일인데 현실적 제약 탓에 잘 안 된 것 같다. 좀 더 노력하겠다.

전정윤 위원님들의 지적 중에는 저희 구성원들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온 것들이 많다. 기회가 될 때마다 개선책을 논의해보겠다. 그리고 두 위원께서 스포츠면에 대해 의견을 주셨는데, 인력 부족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구성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보기엔 부족하다고 느낄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겠다.

정리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 jklee@hani.co.kr

열린편집위원회가 뽑은 ‘이달의 좋은 기사’

열린편집위원들은 4월 한겨레가 생산한 콘텐츠 가운데 21건의 ‘좋은 기사’를 추천했다. 이 가운데 위원들이 가장 좋은 평가를 한 콘텐츠는 ‘제주 4·3’ 특집 기사였다.

1. 제주 4·3 그후 76년, 디아스포라의 길 전국부 허호준 기자

한줄평: “기억하고 추모하고 기록해야 할 4·3“ “새로운 접근을 통해 역사적인 비극을 되새기게 해준 좋은 기사”

2. 세월호 10주기, 잊지 않았습니다 사회부 정환봉 김채운 김가윤 기자, 사진부 김봉규 김혜윤 김영원 기자, 전국부 이준희 기자

한줄평: “잊지 말아야 할 비극, 되새겨야 할 교훈”

3. 쩐화위복-자나 깨나 연체 조심, 다시 보자 할부 유혹 경제부 이주빈 기자

한줄평: “슬기로운 카드생활”

4. 일상이 된 이상기후, 감자도 위태롭다 스페셜콘텐츠부 옥기원 기자

한줄평: “우리 일상에 파고드는 기후위기”

5.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경찰 젠더연구 선구자 이은애 총경 인터뷰 스페셜콘텐츠부 최윤아 기자

한줄평: “더 많은 연구와 주목이 필요한 분야를 조명해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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