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장면들 [편집국장의 편지]

변진경 편집국장 2024. 5. 7.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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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저는 죽집에서 죽을 사먹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결정적 장면'들이 저희의 취재 현장이고 기록 대상입니다.

소고기야채죽을 꼭꼭 씹어먹은 덕분에 인턴 기자 경험을 하게 된 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원 〈시사저널〉 기자들이 갓 창간한 〈시사IN〉에 수습기자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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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시사IN〉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편집국장이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우리 시대를 정직하게 기록하려는 편집국장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008년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하는 변진경 당시 수습기자(맨 왼쪽). ⓒ시사IN 포토

그날 아침 저는 죽집에서 죽을 사먹고 있었습니다. 입은 꼭 다문 채 작은 야채와 고기 알갱이들을 천천히 씹고, 코로는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된 마음을 눌렀던 기억이 납니다. ‘이 죽을 다 먹으면 배가 든든하고 속이 편안해져서 쿵쾅대는 심장을 조금 가라앉힐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스물두 살, 원 〈시사저널〉 대학생 인턴 기자 면접을 앞둔 2005년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시사저널〉은 저의 선배들이 예전에 근무하던 직장입니다. 경영진의 삼성 기사 무단 삭제로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는 2007년 9월 〈시사IN〉 창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시사IN〉 기자들은 ‘시사저널 사태’ 이전의 〈시사저널〉을 ‘원(原) 〈시사저널〉’이라고 구분해 부릅니다.)

살면서 그런 장면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나고 나니 삶의 결정적 기로였던,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도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던 그런 찰나들. 중학생 시절 담임의 폭력에 맞서 난생처음 ‘고발’이라는 걸 하기 위해 교장실 문을 두드리기 전 눈을 질끈 감던 그 순간, 대학 동아리방에서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난 그날 서쪽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주황빛의 석양…. 훗날 평생 업으로 이어질 조직과 처음 인연을 맺기 직전 먹은 그 소고기야채죽도 제 인생의 선명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결국 다 사람 이야기다.’ 기자 일을 습득해나가면서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듣고 또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한 말입니다. 채 상병 사건, 의대 교수 집단 사직, 하이브와 어도어의 갈등…. 저의 편지글 뒤에 실린 여러 기사들도 뜯어보면 모두 ‘사람 이야기’입니다. 자신 혹은 타인의, 하나의 혹은 복합적인 어떤 선택으로 인해 삶의 변곡점을 맞은 사람들 이야기가 시사주간지에 실리는 뉴스의 줄거리가 됩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결정적 장면’들이 저희의 취재 현장이고 기록 대상입니다.

소고기야채죽을 꼭꼭 씹어먹은 덕분에 인턴 기자 경험을 하게 된 저는, 대학을 졸업한 뒤 원 〈시사저널〉 기자들이 갓 창간한 〈시사IN〉에 수습기자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1월2일 첫 출근을 하니 선배들은 〈시사IN〉 제16호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16년이 지난 오늘 저는 〈시사IN〉 편집국장으로서 만드는 첫 호인 제869호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그 16년 동안 제 삶의 중요한 장면마다 〈시사IN〉이 있었습니다.

마감을 하면서 독자님의 인생과 결정적 장면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을 합니다. 어떤 삶의 경로 속에서 〈시사IN〉을 읽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저를 비롯한 편집국 사람들 삶의 중요한 챕터마다 〈시사IN〉이 자리 잡고 있듯 독자님 삶의 어느 틈새에도 저희의 기사, 문장, 사진, 영상이 끼어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감히 바라봅니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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