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임금 감소율 11%까지…윤 정부 ‘부자감세·이념경제’ 헛발

최하얀 기자 2024. 5. 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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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2년] 경제
미국·한국에서 모두 인플레이션(물가상승) 불씨가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드는 만큼 시장금리는 다시 올라 대출자를 계속 한계 상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고금리의 고통이 올해 연말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사진은 6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에 부착된 대출 관련 정보. 연합뉴스

국정 기조가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사례는 이명박 정부 3년차인 2010년을 꼽을 수 있다. 보수적 이념과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명분 삼아 정권 출범(2008년) 때부터 내세운 ‘기업 프렌들리’ 기조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흐름에 따른 양극화 확대 앞에 변곡점을 맞았다. 당시 정부는 ‘공정사회’ ‘동반성장’을 내밀며 재벌 대기업과 수출 기업 편향 기조에서 물러섰다. 현 정부 집권 2년은 당시와 유사한 경기 흐름을 보이고 있으나 ‘기조 전환’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있다.

물가 잡지 못하고 실질임금은 감소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경제성장률(1.3%·전기비)에는 ‘깜짝 성장’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시장 예상을 두배 웃돈 성적표에 시장은 물론 정부도 놀랐다. 분기 기준 0% 저성장을 이어오던 한국 경제가 경기 회복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정부는 ‘경기 회복의 청신호’라고 무게를 실었다. 이런 해석은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희미해졌다. 3월 전 산업 생산이 2.1% 감소(계절조정 기준)하며 4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이 끝난 사실이 드러나서다.

한국 경제는 수출 대기업 중심의 불안한 성장 회복 흐름 속에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고물가·고금리에 허덕이는 서민 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순자산이 적은 서민·중산층은 고물가 탓에 실질임금 감소 충격에, 내어놓은 빚에서 불어나는 이자 상환 부담에 놓여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사업체노동력 조사)를 보면 전 산업, 임금 총액 기준 실질임금은 현 정부 출범(2022년 5월)부터 통계가 집계된 지난 1월까지 모두 21개월 중 17개월은 감소(전년 동월비)했다. 특히 지난 1월 실질임금 감소율은 11.1%에 이른다.

기업 이익 감소로 성과급이 줄고 임금 상승률이 하락한 탓이 크지만 임금 증가가 물가 상승을 뒤따르지 못해 살림이 나빠진 걸로 볼 수 있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6월(6.3%·전년 동월비) 정점을 기록한 뒤 점차 둔화되고는 있으나 그 속도는 매우 더디다. 지난 4월 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 목표치(2%)를 여전히 크게 웃돈 2.9%다. 특히 신선식품을 포함한 장바구니 물가(생활물가) 상승률은 3% 중반대에 형성돼 있다.

이념에 사로잡힌 건전재정

고물가·고금리란 거시 환경을 마주한 현 정부의 정책 기조는 ‘건전 재정’이란 협소한 영역에 머물고 있다. 불어난 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를 염두에 둔 정책 방향이나 ‘작은 정부’라는 외부 환경 변화와 유리된 채 보수적 이념에만 사로잡힌 정책 기조의 일면이다. ‘민생 경제 회복’을 강조하나 건전 재정 기조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부의 시장 개입 폭은 애초에 크기 어려웠다. 실제 한해 전에 견준 지난해 재정지출 감소율(집행액 기준)은 10.5%에 이른다. 재정의 핵심 구실인 ‘소득 재분배 기능’이 사실상 무너져 내린 셈이다.

김유찬 홍익대 교수(경영학)는 “정부는 때마다 민생을 외쳤지만, 결과적으로는 감세를 통해 대기업과 고소득자, 고액자산가 지원에 정부 정책이 쏠렸다”며 “이명박 정부의 낙수효과 신화를 그대로 따라간 것이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현 정부가 ‘보수 경제학’을 충실히 이행한 것도 아니다. 외려 준비되지 않은, 돈이 들지 않는 시장 개입은 공격적으로 반복됐다. 은행들을 압박해 이자 상환액 일부(약 2조1천억원)를 경감해주거나 시장에 형성된 가격에 영향을 주는 공매도 금지 조처를 내린 게 대표적이다. 정부가 고금리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풀 일을 민간 기업에 떠맡기거나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는 조처를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뜻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지난 2년은 건전재정과 자유시장경제라는 공허한 이념에 매몰된 나머지 공허함만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총선 참패 뒤에도 정부·여당의 정책 기조 전환 알림음은 켜지지 않았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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