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윤석열 GPS 외교’…국익 대신 미·일만 보고 표류

박민희 기자 2024. 5. 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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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2년] 외교·안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8월18일(현지시각) 미국 대통령 별장인 메릴랜드주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를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바이든 미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열흘 뒤인 2022년 5월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두 대통령은 나란히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공군 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방문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는 미국이 낸 과제를 풀어나가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에 한국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제3자 변제’로 한일 과거사를 봉합하고,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로 나아갔다.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와 싸우는 자유의 투사’로서 한 방향으로만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 미국, 일본과 필요한 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그로 인해 악화되는 중국, 러시아, 남북관계를 관리할 종합적 전략도, 노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지난 2년간 ‘글로벌 중추국가(GPS·Global Pivotal State) 외교’를 표방했지만, 한국 외교의 GPS(위성항법장치)가 고장났다는 말이 나온다.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전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 사무차장)는 “국제질서가 급변하는 위태로운 시대에 한국의 원칙에 입각한 외교 좌표가 없는 것, 군사와 경제안보 등이 얽힌 복잡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 나침반도 GPS(위성항법장치)도 제대로 보지 않고 방향을 한곳에 고정시켜 놓고 항해하는 배처럼 유연성이 없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로 한국이 얻은 것은 많지 않고, 비용 측면이 엄청나게 커졌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선언하고 한국은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남북관계는 ‘강 대 강’ 대치 구조에 갇혀 있다. 당장 심각한 문제는 남북관계의 완전한 단절 속에 북-러 밀착이 강화되면서 한국의 안보 위협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스스로 선택한 전략 변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맞물린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가치 외교가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에 실패하면서 상황을 계속 악화시켜왔다.

한-중간에 북핵, 경제, 공급망 등 주요한 현안들을 제대로 논의해보지도 않은 채, 감정 싸움만 벌이다가 상황을 악화시킨 것도 뼈아프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초기부터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면 중국도 우리를 존중하게 된다’며, 중국과 실질적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대만 문제 ‘실언’ 등을 거치며 상황은 악화일로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고교 동기 동창인 정재호 주중대사는 ‘중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외교의 상징이다. 여기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둘러싼 양국의 감정 싸움이 더해져 한중간 대사급 외교는 오랫동안 실종 상태다.

최근 중국 지방 정부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조태열 외교장관의 중국 방문 추진과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움직임 등으로 양국이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만드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 신호다. 김흥규 교수는 “중국은 한중 관계 관리의 필요성은 느끼고 있고, 한국 총선 이후 변화의 가능성에 기대도 걸고 있다”면서도,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국의 불신은 여전히 강하고 정부도 외교 정책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와 방향 전환의 움직임은 없기 때문에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한미, 한일 협력의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도 점점 더 많은 질문이 나온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지속하고, 과거사를 왜곡하는 ‘우익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다. 최근 일본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야후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계기로 일본 총무성이 행정지도에 나서면서,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의 지분을 가진 네이버를 압박해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에 경영권을 넘기도록 만들려 한다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미관계는 한미동맹 강화와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미국 투자 등으로 겉으로는 탄탄해 보이지만,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거듭 압박하는 등 불안 요소가 크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대규모 투자의 이해 득실도 꼼꼼히 따지며 냉철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이 1970~1980년대에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플라자 합의’(1985년 미국이 무역적자 해소하려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인위적 평가 절상을 유도)로 일본을 압박해 가면서 힘을 키운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바이든 시기에도 주요 표적은 중국이지만, 미국의 첨단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다른 동맹국들을 압박해 미국내 투자를 늘리게 하는 ‘약탈적 패권’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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