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부울경 산단, 성공의 우울

남종석 공공과학기술연구노조 정책위원 2024. 5.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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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석 공공과학기술연구노조 정책위원

지난 4월 말, 창원시에서 국가산단 지정 50주년을 기념해 여러 행사가 진행됐다. 필자도 국가산단의 현대화와 관련된 콘퍼런스의 토론자로 참여했다. 창원국가산단은 2024년 현재 2661개 업체가 가동 중에 있으며 고용인원만 11만8000명에 이를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산단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국가산단의 현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전망하는 콘퍼런스의 분위기는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이는 비단 창원국가산단만이 아니라 울산에 조성된 대규모 산단, 부산 사상구의 일반산단도 동일하게 마주한 현실이다.

동남권에 위치한 산단들은 한국의 ‘중공업 신화’를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성장해 왔다. 창원국가산단이나 울산, 부산의 산단 모두 엄청난 성공의 신화를 이룩했고, 지금도 그렇다. 조선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철강 등 동남권을 중심으로 성장한 산업들은 여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며 한국 수출을 주도하고 있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공업 중심지인 동남권 주요 산단은 ‘쇠락한 산업도시’의 상징이 되고 있다.

동남권의 산단들의 ‘불안한 미래’는 유례없는 성공의 결과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중공업은 남성 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한 대량생산 체제로 성장해 왔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남성 노동력이 주력이고 일부 사무직이나 미화 등에서만 여성을 고용했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장기 침체와 함께 동남권 제조업은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일자리 창출 능력이 크게 낮아졌고 임금성장률도 정체했다. 대기업은 자동화나 사내 하청 혹은 전문 생산공장을 통해 외주하고 신규고용을 줄였다. 중소기업 제조업에는 청년들을 유인할 수 있는 매력이 줄어 들었다. 중화학 공업단지에는 청년들이 원하는 매력적인 직업군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성 고학력 노동자들을 유인할 수 있는 직업은 더 희박하다. 창원과 울산의 경우 지식기반 제조업 비중은 크지만 기업 내 연구개발팀은 대부분 수도권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동남권은 생산기지일 뿐이다.

2010년대 이후 제조업 투자는 바이오 전자 통신장비 로보틱스 정밀소재 등 미래 성장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동남권은 중화학공업에 특화돼 있었기 때문에 미래산업은 수도권, 충청권에 주로 투자됐고 영호남 남부권에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광주와 대구에 소재하는 산단이 대상이 됐다. 광주첨단산업단지나 빛그린 산단은 지식제조업비중과 지식서비스업 비중이 높다. 대구의 1차 국가산업단지는 지식제조업 비중이 매우 높다.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서비스산업 일자리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교육의료서비스, 문화콘텐츠산업, 출판미디어산업, 정보통신산업 등 대졸 여성들 고용이 상대적으로 많은 업종들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오늘날 청년들은 직장보다 직무 중심의 일자리를 선호한다고 한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취직하고자 하는데, 이런 일자리를 다수 제공하는 산업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이나 제조업이다. 최근 전통적인 제조업 공장이라 해도 자동화, 디지털화가 크게 진전돼 있어 연구개발, 설계 및 제어, 측정·검사, 컴퓨팅, 마케팅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지식서비스 산업은 그와 같은 성향이 더 강하다. 여성들이라고 해서 과업 수행에 어려움을 더 겪는 것은 없다. 이런 산업을 유치해야만 청년들을 유인할 수 있다.


경제에서 투자 주체는 기업이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지식기반 산업들은 우수한 인력을 쉽게 유치할 수 있는 곳으로 투자된다. 서울은 지식서비스산업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고 경기도는 첨단산업 투자의 중심지다. 우수한 인적 자원이 수도권에 있으니 지식기반산업 투자는 수도권으로 향하고 이는 지방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유인이 된다. 되먹임 관계가 작동한다. 동남권 제조업 중심 산업단지는 그런 점에서 매력도가 떨어진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건조환경의 구성, 여성 친화적인 일자리 창출, 초광역 협력을 통한 인적자원의 생산, 생산자 서비스 산업의 유치를 통해서만 오래된 산단들은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가질 수 있다. 어느 것 하나 성취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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