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저널] 어버이날에 떠오르는 역사 인물

2024. 5. 6.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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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은 어버이날이다.

우리 역사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어버이는 누구일까?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다.

대개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의 관점에서 주로 기억하지만, 사임당 생존 때나 사후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16세기 지식인들에게 그녀는 어머니나 부인이 아닌 화가 '신씨(申氏)'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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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결혼 후에도 홀어머니 봉양 힘써
‘유복자’ 김만중은 어려서부터 효심 남달라
5월8일은 어버이날이다. 우리 역사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어버이는 누구일까?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율곡 이이(李珥·1536~1584)의 어머니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이다. 1536년 신사임당은 이원수와의 사이에서 다섯째인 아들 이이를 낳았다.

출생지는 강릉 오죽헌. 오죽헌은 ‘검은 대나무로 둘러싸인 집’이라는 뜻이다. 이이가 태어날 때 용꿈을 꾸었다고 하여, 어릴 때의 이름은 현룡(見龍)이었으며, 그가 태어난 방은 몽룡실(夢龍室)로 불렸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아버지 신명화(申命和)로부터 물려받은 친정집이었다. 조선전기까지는 여성이 남성과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재산 상속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물려받았으며, 혼인에서는 처가살이가 관행적으로 행해졌다. 이이의 아버지 이원수도 처가살이하면서 이이를 낳은 것이다.

강릉 외가에서 자라던 이이는 여섯 살 때 가족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왔는데, 한양에 온 신사임당은 항상 홀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고, 수시로 강릉에 와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이이에게 존재 그 자체이기도 했던 어머니의 죽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충격 속에 이이는 성리학이 지배 이념인 그 시기에 집을 나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에 빠졌다. ‘선조수정실록’에도,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비탄에 잠긴 나머지 잘못 선학(禪學):불교)에 빠져서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佛道)를 닦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개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의 관점에서 주로 기억하지만, 사임당 생존 때나 사후 가까운 시대를 살았던 16세기 지식인들에게 그녀는 어머니나 부인이 아닌 화가 ‘신씨(申氏)’였다.

특히 산수도와 포도, 풀벌레를 잘 그린 화가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신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보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후원을 해준 사임당의 아버지 신명화와 어머니 용인 이씨의 역할도 매우 컸던 것이다. 신사임당과 이이의 행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죽헌에는 보물로 지정된 오죽헌 건물, 이이를 모신 사당 문성사, 율곡기념관,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 등의 유적이 있다.

서인의 정치가이자 소설가 김만중(金萬重·1637~692)이 어머니를 위해 쓴 ‘구운몽’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한글소설로 인정을 받고 있다. 김만중의 아버지 김익겸(金益兼)은 병자호란 때인 1637년 1월 강화도에서 순절했기에, 김만중은 어머니 해평 윤씨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윤씨는 한문 실력을 갖추고 있어 ‘소학’, ‘사략’, ‘당시’ 등의 책을 아들 김만기와 김만중에게 직접 가르쳤다고 한다.

김만기는 훗날 딸 인경왕후를 숙종의 왕비로 보내면서, 국구(國舅:왕의 장인)가 되었다. 어린 김만중이 집안 살림을 걱정해 보고 싶은 책을 사지 않자, 회초리를 치면서 자신이 하루종일 짠 옷감 절반을 뚝 잘라 주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김만중은 소설을 좋아하는 늙은 어머니를 위해 선천에 유배되어 있던 시절 소설 ‘구운몽’을 지었다. 일찍 홀로 되셨으면서도 자신을 평생 양육해 주신 어머니가 소설을 읽으면서 즐거우시기를 바란 것이다.

김만중은 남해의 유배지에서 처음 맞는 어머니 생일에 ‘사친시(思親詩)’를 썼다. ‘오늘 아침 어머니 그립다는 말 쓰려고 하니/글자도 쓰기 전에 눈물이 젖어 넘친다. …’ 이이와 김만중 같은 대학자에게도 어머니는 언제나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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