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공매도, 추가 적발] 글로벌IB 놀이터된 韓…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 잡아야

김남석 2024. 5. 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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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매도 반복해도 소극대응
당국 "고의 아닌 실수" 대리해명
'국내엔 엄격·해외엔 관대' 관행
전문가 "차별없이 강력 처벌해야"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불법공매도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치면서 사실상 글로벌 IB들이 국내 규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은 국제 표준에 준하는 수준의 규제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지만, 국내 금융기관들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과 달리 글로벌 IB에 대한 처벌은 미흡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고 있다는 불만까지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은 작년 11월부터 글로벌 IB 14개사에 대한 불법공매도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7개사에서 불법공매도 혐의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6일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해 글로벌 IB 2개 회사에서 대규모 불법 공매도가 최초 적발된 뒤, 공매도특별조사단을 꾸린 바 있다. 지난 2021년 5월 공매도 재개 이후 위반 가능성이 높은 종목과 기간에 대한 집중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규제 강화에도 불법공매도 지속 증가=이번 조사 대상은 국내 공매도 거래 상위 글로벌 IB 14개사로, 해당 회사들은 외국인 전체 공매도 거래량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다.

조사 대상 14개 회사 중 BNP파리바와 HSBC 2개사에 대한 조치는 작년 12월 완료됐고, 이번 7개 사에서 혐의가 추가로 발견됐다. 나머지 5개사에 대한 조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9개 글로벌 IB의 불법 공매도 규모는 164개 종목, 총 2112억원 수준이다. 최초 적발한 2개사의 불법공매도(556억원)에 대해서는 과징금 265억원 부과 및 검찰고발 조치했다. 나머지 7개사 1556억원 규모의 불법 행위에 대한 조치는 향후 증선위에서 결정된다.

특히 지난 1월 5개 종목, 540억원 규모의 위반이 적발됐던 CS와 노무라는 29개 종목, 628억원의 추가 위반이 적발됐다. CS와 노무라의 전체 위반 금액은 1168억원으로 늘었다.

BNP파리바와 노무라 등 이번 적발된 9개사는 반환이 확정되지 않은 처분제한 주식을 이용하거나, 차입되지 않은 주식을 차입한 것으로 보고 매도했다. 또 부서간 소통 부족으로 이미 대여된 주식을 다른 부서에 매도하는 등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공매도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IB의 부실한 내부시스템 관리로 인한 불법공매도 행태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국의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면서, IB들이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24건의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됐다. 특히 2018년에는 골드만삭스 직원 개인이 국내외 기관이나 감독자의 승인 없이도 마음대로 주식 차입 여부를 결정, 이를 이용해 이틀간 주식 차입 없이 156종목, 401억원어치에 대한 매도 주문을 냈다. 당시 당국은 불법공매도 위반 사건 기준 최대인 약 75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골드만삭스 사태를 계기로 2021년 공매도 관련 처벌 규정이 강화됐지만, 강화 이후에도 △2021년 16건 △2022년 32건 △2023년(1~8월) 45건 등 적발 건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고의 아닌 실수" 변호나선 당국= 글로벌 IB의 내부 시스템 미비로 수년째 불법공매도가 자행되고 있지만, 당국은 오히려 한국 공매도 법규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한 단순 '실수'라며 불법행위를 감싸는 모양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소위 미공개 정보라든가 불공정 거래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불법공매도가 아닌 잔고 관리 시스템의 잘못된 설계, 실무적인 실수로 인한 무차입 공매도가 대부분"이라며 "우리 법령상 요구하고 있는 수준과 제도가 시스템에 반영돼 있지 않다면, 원치 않던 위반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런 시스템 미비가 발견된 IB에 대해 현재 문제가 발견된 부분에 대해 개선을 요구했다. 다만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공매도 주문 프로세스와 잔고관리 방식 개선 등을 권고하는데 그쳤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글로벌 IB가 당국의 규제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당국은 앞서 비슷한 이유로 적발된 불법공매도에 대해서도 고의보다 과실에 무게를 두고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이상복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2009년 자본시장법 제정 당시 기존에 있던 형사처벌 조항이 빠졌고, 2021년 개정에서 다시 강화됐지만 영국이나 미국 등과 비교하면 여전히 처벌 강도가 과도하게 낮다"며 "불법행위가 적발돼도 처벌이 크지 않으니 우리나라 규제만 무시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2021년과 2022년 불법공매도 적발 업체에 내려진 과징금은 41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며 "당국이 시장 위축 우려에 국내 IB에는 엄격하고, 외국계 IB에는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함 부원장은 "우리와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만큼 미국이나 홍콩 등 해외 당국에서도 전면적인 조사를 한다면 비슷한 규모의 불법공매도가 발견될 수 있다"며 "(글로벌 IB가) 한국만 우습게 여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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