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30 성소수자들에게 넷플릭스 퀴어 콘텐츠 의미는?

노지민 기자 2024. 5. 6.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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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성소수자 37명 인터뷰 기반한 연구 논문…넷플릭스로 "선택권", 가족 "매개" 생겨
"한국적 맥락에서 퀴어 서사 풀어낸다면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이미지

22세 바이섹슈얼 여성 A1은 '좋아하는 퀴어 콘텐츠'로 “내 인생”을 적었다. 차별과 역경을 겪으며 이를 “고급 유머”로 승화하는 성소수자의 현실이자, 미디어에서 “강인함과 영민함”을 가진 퀴어 캐릭터를 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성애 규범을 넘어서면 제재 받는 한국에서 넷플릭스는 성소수자들의 숨구멍을 열었다. 동시에 불균형한 재현, 해외 콘텐츠로 “대리만족”하는 한계 등 과제가 쌓여 있다.

고려대 미디어학과 고채은(석사수료)·박지훈(미디어학부 교수) 연구진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미디어, 젠더&문화' 39권1호에 게재된 <한국 성소수자들의 넷플릭스 퀴어 콘텐츠 수용에 관한 탐색적 연구> 논문을 통해 넷플릭스를 1년 이상 이용한 한국의 20~30대 성소수자 37명을 인터뷰한 연구 결과를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해 4~5월 한 달간 그룹별 2~3시간가량을 소요해 진행됐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넷플릭스를 알고 난 뒤에야 “선택권이 생긴 느낌”(B1, 시스젠더 여성·바이섹슈얼)이 들었다고 했다. 대표적으로 넷플릭스 초창기 오리지널 콘텐츠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 넷플릭스 입문작 내지 “개국공신”으로 꼽혔다. 이후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스마일리', '넌 왜 그래' 등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을 보면서 “우리네 삶”이라는 공감을 느꼈다는 반응이 나왔다.

▲넷플릭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이미지

참여자들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퀴어 캐릭터 등장이 “돈이 되니까” 수행하는 전략이라 보면서도 “고맙다”고 했다. C4(젠더퀴어)는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고맙고. 내가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것 자체가 사실 되게 고마운. 이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사실 놀랍기도” 하다면서 “주류 콘텐츠에서 이런 식으로 된다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거듭 '고마움'을 밝혔다.

넷플릭스의 퀴어 재현은 많은 양이 상대적 다양성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D3(시스젠더 남성·퀘스쳐너리)은 왓챠·웨이브 등 국내 OTT 대비 “절대적인 양에 있어서만큼은 넷플릭스가 너무 압도적”이라고 했다. A1은 “5개를 만들면 그중에 한 3명은 전형적이고 2명은 좀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났다. 그게 10개가 되고 20개가 되면 아무래도 좀 더 다양한 콘텐츠가 나올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퀴어가 등장하는 콘텐츠는 성소수자들의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H1(시스젠더 여성·레즈비언)은 “저희 어머니도 엄청난 호모포비아셨다”라며 “넷플릭스 보시고 하시니까 조금은 (퀴어 존재를) 인지는 하시더라”고 했다. H3은 본가에서 식사할 때 퀴어 인물이나 서사가 있는 콘텐츠를 틀어놓는다며 “가끔씩, 약간 좋아해 봐, 이런 느낌으로” 시도한다고 했다.

다양한 연령·세대의 성소수자들이 등장한 콘텐츠는 위안과 희망을 전했다. 중년 게이들 삶을 그린 '스마일리', 노년 퀴어를 보여준 '그레이스 앤 프랭키', 스탠드업 코미디 '스탠드 아웃: LGBTQ+ 셀러브레이션' 등이다. LGBTQ 코미디언 특집 콘텐츠를 떠올린 C3(시스젠더 여성·팬섹슈얼)은 “제일 인상 깊었던 게 70대 정도 흑인 할머니”라며 “처음으로 제가 노인이 됐을 때를 상상할 수 있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스탠드 아웃: LGBTQ+ 셀러브레이션' 이미지

그럼에도 퀴어 캐릭터가 젊은 연령대, 특정 인종, 동성애자 중심 재현 등에 치우친 한계가 여전하다. 2021년 넷플릭스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오리지널 영화·시리즈에 등장한 LGBTQ+ 주요 인물 50.9%가 성인, 29.8%가 청소년인 데 반해 중년은 15.8%, 노년은 3.5%에 그쳤고 아이가 있는 인물은 10.6% 수준이다. 19편 시리즈의 성소수자 주연 25명 중 백인이 60%에 이른다.

특히 넷플릭스 퀴어 콘텐츠의 질이 초창기보다 낮아졌다는 평가는 주목할 지점이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같은 '올드 넷플릭스' 시기의 퀴어 콘텐츠가 높은 작품성을 평가 받은 반면 최근 들어 “이목을 쉽게 끄는”(C1, 논바이너리·남성애자), “많이 만들고 배포하는”(B2, 시스젠더 여성·레즈비언) 양산형이 많다는 지적이다. 퀴어 콘텐츠가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넘어 광범위한 대중에게 도달하려면 “잘 만든” 퀴어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무엇보다 퀴어 재현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 현실은 해외 콘텐츠로 대리만족을 하다 “내가 있는 현실은 다르잖아”(E1, 시스젠더 남성·게이)라는 허무함을 느낀다는 지적이 있다. 인터뷰에서 언급된 한국 넷플릭스 콘텐츠의 성소수자 인물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의뢰인의 딸, '길복순' 속 길복순의 딸 정도였다. I1(시스젠더 여성·바이섹슈얼)은 “한국에서는 (생활)동반자법도 채택이 안 된 상태”라며 “I2(시스젠더 여성·레즈비언)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미래를 그릴 때마다 그런(결혼 등) 장면 생각하면 조금씩 현타가 오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OTT 웨이브에서 방영한 '남의 연애' '메리 퀴어' 포스터

이런 가운데 지난 2022년 국내 OTT 웨이브가 제작한 '메리퀴어' '남의 연애' 등 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운 예능 콘텐츠는 한국 사회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와 함께 한국 미디어의 왜곡되거나 과장된 성소수자 묘사를 경험한 이들의 우려도 남아 있다.

인터뷰 참여자들은 향후 보고 싶은 콘텐츠로 한국을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일상적 이야기를 꼽았다. F1(트랜스젠더 남성·팬섹슈얼)은 “비퀴어가 소수자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다고 했고, F3(시스젠더 여성·팬섹슈얼)은 퀴어버전 '전원일기' '논스톱' 같은 것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C1은 “한국의 게이 컬처를 직접적으로 다뤄보고 싶고 거기에서 살아가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한 명의 얘기를 다루면 재밌을 것 같다. 부분적으로 제 얘기”라고 했다.

연구진은 “넷플릭스 사례는 퀴어 콘텐츠 제작이 다양성 가치의 재현이라는 당위적 측면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의 시청자 확보라는 전략적 측면에서도 유의미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넷플릭스의 재현 사례를 참고하면서 한국적 맥락에서 퀴어 서사를 풀어낸다면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콘텐츠를 원하는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영상 산업보다 앞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그려내고 있는 한국의 현대 소설을 영상화하는 시도도 장려할 만하다”고 했다.

동시에 “혐오 세력의 반발에 대한 우려를 차치하더라도 현재의 한국 제작자들에게 있어 그동안의 미디어가 답습해 온 이성애 규범성을 넘어서 선입견 없이 퀴어를 재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일 수 있다”며 “핵심적인 해법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삶과 경험을 수집하며 콘텐츠 제작 단계 전반에 이를 지속적으로 반영하려는 노력에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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