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 밸류업 이끈 글로벌 행동주의펀드 "다음 타깃은 한국"

김정석 기자(jsk@mk.co.kr) 2024. 5. 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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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가치 제고 日 가보니
돌턴·오아시스 등 글로벌펀드
기업사냥꾼 아닌 조력자 변신
일본 정부와 닛케이 상승 유도
최근엔 밸류업 나선 韓에 눈독

"이제 다음은 한국입니다. 일본에서 강력한 행동주의의 성과가 빠르게 나왔는데 이를 한국에 적용할 생각입니다."

매일경제가 지난달 일본 도쿄에서 만난 미국 행동주의 펀드 돌턴인베스트먼트의 크리스토퍼 하 최고준법책임자(CCO)는 미팅을 위해 바삐 이동하는 택시에서도 한국 시장을 향한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돌턴인베스트먼트는 2019년 현대홈쇼핑, 2020년 삼영무역에 대해 주주행동주의를 펼쳤지만 이후 한국 기업에 두드러진 투자를 하지 않았던 운용사다. 그렇지만 일본 증시에서 학습한 효과와 한국의 '기업 밸류업 정책'에 힘입어 최근 메가스터디교육 이사회에 주주환원 정책 강화를 환영한다는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다시 한국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

돌턴인베스트먼트뿐만 아니라 홍콩, 영국의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도 다음 시장으로 한국을 가리키고 있다. 강제성이 없는 '일본 밸류업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기 위해 행동주의 펀드가 나서서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주요한 촉매 역할을 했다. 일본처럼 기업 자율을 강조해온 한국 밸류업 프로그램에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행보가 더해지면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관심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홍콩계 행동주의 펀드 오아시스는 지난달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첫 외국계 펀드 회원사로 가입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차파트너스자산운용 등 국내 행동주의 펀드 대부분이 회원사다. 여기에 엘리베이터 제조사 후지텍에서 의장 등 이사회 구성원을 물갈이한 오아시스가 포럼에 가입하며 국내외 행동주의 간 연합 가능성도 커졌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관계자는 "회원 가입에 대한 글로벌 펀드들의 문의가 쇄도하며 매주 수십 곳의 해외 펀드 관계자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삼성물산 주주환원 강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국민연금에 보내기도 했던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은 실제로 한국 투자를 확대했다. 제임스 스미스 팰리서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1월부터 주주총회가 있는 3월까지 한국 증시 투자 규모를 늘렸으며 다양한 기업을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외국계 펀드들은 일본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기업 사냥꾼'이 아닌 닛케이지수 부상의 핵심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간 행동주의 펀드들은 경영권을 위협하며 그린메일링(주식을 고가에 재매입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을 하거나, 기업을 인수한 뒤 주요 자산을 팔고 떠나는 약탈적 행위로 지적받아 왔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들이 일본 현지에 맞는 행동주의로 전략을 바꾸면서 '기업가치 제고'의 파트너로 거듭났고 회의적인 시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주주제안을 통해 도쿄증권거래소(TSE)의 개혁안에 동참하길 요구하거나 정책 설정에 자문하는 식으로 일본과의 '상생'을 꾀했다. 홍콩계 증권사인 CLSA의 니컬러스 스미스 일본 증시 전략가는 "행동주의 펀드들은 일본에서 기업들을 발전시키고 떠나는 모습을 보여줘 닛케이지수 반전극의 핵심으로서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며 "일본은 더 이상 행동주의 펀드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돌턴인베스트먼트는 올해 일본 대형 제과 기업인 에자키 글리코에 일본판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회신을 검토하라는 주주제안을 했다. 결국 해당 안건은 지난 3월 26일 정기주총에서 다뤄졌고 30%의 찬성표를 모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두고 '모두가 행동주의자가 되는 시대'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 CCO는 "행동주의 방식이 일본에서 거부감이 있어 이름을 숨기고 '기즈나(유대)'라는 펀드명으로 운용했고 일본계 호주인을 내세워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의결권 행사를 통해 기업의 거버넌스 개혁을 지원하고 있다. 미쓰비시UFJ애셋매니지먼트는 2027년부터 3년 연속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 8%,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밑도는 기업에 대해 대표이사 연임을 반대할 방침이다. 닛세이애셋매니지먼트도 내년 6월 주주총회부터 PBR이 1배 미만이고 '일본 밸류업 정책'에 맞춘 대응책이 없을 경우 대표이사 선임을 반대하겠다고 밝혔다.

오아시스는 일본 경제산업성(METI) 등 정부기관을 상대로 자문을 할 뿐만 아니라 일본 회사임원육성기구(BDTI) 등의 일원으로 거버넌스 개혁을 조력하고 있다. 오아시스는 BDTI를 통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여성 이사 92명의 교육을 전액 지원했다. CLSA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본 증시에서 일어난 행동주의 사건은 전년 동기 대비 156% 늘었다. 지난해 전체 행동주의 사건의 40%에 달하는 수치다. 행동주의 펀드의 참여가 증가하면서 이번 분기에만 닛케이지수는 19.86% 상승했다.

[도쿄 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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