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기가 없다면 동물원의 풍경은 어떨까

한겨레21 2024. 5. 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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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역사에서 이스트먼 코닥이 남긴 발자취는 독보적이다.

2012년 파산한 뒤 어느새 잊혀가는 이름이 되고 있지만, 한때 코닥은 직원 수만 16만 명에 이르는 사진산업의 공룡이요, 기술혁신의 대명사였다.

우리가 아는 사진용 필름과 영화용 필름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코닥이요,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곳도 바로 코닥이었다.

한때 코닥은 1년에 1억 대 넘는 일회용 사진기를 팔았는데, 그 가운데 동물원에서 팔린 양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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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풍경동물]

세상에 ‘아이 사람’이 없다면 동물원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곳의 볼거리는 동물만이 아니지. 사람들이 너를 보는 모습이야말로 정겹고도 우스운 볼거리가 아닐까. 까만 네 얼굴 사진 위에 이런 글귀가 써 있구나. ‘Irreplaceable! 대체할 수 없는!’ 대체 알 수 없는 이유로 거기에 있는 너에게 그 말은 칭찬일까, 모욕일까. 201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동물원.

사진의 역사에서 이스트먼 코닥이 남긴 발자취는 독보적이다.

2012년 파산한 뒤 어느새 잊혀가는 이름이 되고 있지만, 한때 코닥은 직원 수만 16만 명에 이르는 사진산업의 공룡이요, 기술혁신의 대명사였다. 우리가 아는 사진용 필름과 영화용 필름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코닥이요,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곳도 바로 코닥이었다. 1887년 최초의 휴대용 카메라 ‘브라우니’를 선보이며 쓴 문구는 광고 역사에서 전설로 꼽힌다.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사진기가 거대했던 시절, 사진기술이 어렵기만 했던 시절을 날려버렸다. 아무나,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를 연 것이다.

‘아무나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나와 가족, 집과 땅, 개와 고양이와 소유물의 이미지를(돌아오지 않을 그 추억의 장면을) 남의 손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담아낸다는 건 그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코닥이 만들어낸 사진기와 필름의 소비자는 어른이었지만, 거기에 가장 많이 담긴 건 아이들이었다. 집이나 물건처럼 한두 장 찍고 마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변화하는 존재이므로 계속 찍을 필요가 있었다. 추측건대 세상에 아이들이 없었다면 사진산업은 오늘날의 모습으로 성장하기 어려웠으리라. 끊임없이 태어나는 아기들에 발맞춰 엄마 사진사도 아빠 사진사도 끊임없이 태어났다. 사진산업에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아울러 동물 사진의 세계. 아무나들은 쉽게 동물 사진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동물은 아기와 동일시하기 쉬운 존재였고, 다만 찍기에 어려움이 따를 뿐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도 않으니까. 아기를 찍으며 갖추게 된 사진 장비와 기술로 동물을 찍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어떤 이들은 집 안 동물을 넘어 집 밖 동물의 심오한 사진 세계로 빠져들곤 했는데, 그때부터는 스케일이 달라졌다. 새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의 장비가 어지간한 프로의 장비보다 더 비싸고 고성능인 건 흔한 일이다.

사람들이 동물을 ‘아이’와 동일시하고, 사람 아이와 동물 아이가 어우러진 모습을 사진으로 기념하려는 욕망을 어떻게 분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동물원이라는 공간은 그런 심리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휙 사라졌지만, 예전에 동물원은 인형만큼이나 일회용 사진기가 불티나게 팔리는 곳이었다. 한때 코닥은 1년에 1억 대 넘는 일회용 사진기를 팔았는데, 그 가운데 동물원에서 팔린 양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산업을 키워준 ‘아이 사람’은 동물산업을 키워준 힘이기도 했다. 아이들 손을 잡지 않고도 얼마든 동물원을 갈 수는 있지만, 아이들이 없었다면 동물원의 풍경과 시설과 운영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아이와 동물과 사진이 뒤엉킨다. ‘사심’과 ‘동심’이 중의적으로 엇갈린다. 진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수많은 가짜가 동원된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만 넘을 수 없는 질서가 있고, 이따금 질서가 깨진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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