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통신] 햄릿 읽느냐 암기하느냐, 그것이 문제

英 교육과정에 필수 작품인
셰익스피어의 유명 희곡들
10세 학생 이해하기 어려워
단순히 내용 외우기에 그쳐
쉬운 시 작품부터 가르쳐야

윌리엄 셰익스피어 게티이미지뱅크

'거친 바람이 사랑스러운 5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 우리에게 주어진 여름날은 너무나 짧네.' 셰익스피어는 그 유명한 소네트 18번을 초여름날에 써내려갔다.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이 시가 내가 13세 때 처음 접했던 셰익스피어 작품이다. 당시에는 영문학 교사들이 '가벼운 시작'을 위해 전략적으로 이 작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 후 3년 동안 교사들은 난해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우리의 두뇌에 마구 쑤셔 넣었다. 셰익스피어는 1989년 영국 정규교육과정이 만들어진 이래로 아직도 남아 있는 유일한 필수작가여서 영국의 모든 학생들은 그의 작품을 배워야 한다. 요즘은 10~11세가 되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배우기 시작한다.

'이 사람 셰익스피어에 무슨 불만이 있나? 영국인 작가라면 응당 그의 위대한 천재성을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다. 다만 그의 어려운 작품으로 학생들의 숨통을 조르는 교과과정을 반대할 뿐이다. 만약 한국어 번역본만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의 작품은 대사 한 줄마다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고 16세기에 사용되던 은어로 만든 언어유희가 녹아들어 있다. 이런 뉘앙스들을 그 어떤 외국어로 번역해 뜻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난이도 면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최상급이다. 그의 희곡 한 편을 오리지널 버전으로 읽는 것은 울트라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 이런 희곡들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별로 성과가 없는 일이다. 학생들은 그저 교사들이 셰익스피어에 대해 가르친 내용을 단순히 암기할 뿐이다. 그의 작품을 읽고 이해한 후 자신의 견해를 갖는 것은 매우 다른 도전이다. 셰익스피어의 유머는 너무나 모호하고 난해해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같은 대사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들을 보면 햄릿, 맥베스, 템페스트, 리어왕 등 비극이 대부분이고 학교에서는 이 작품들을 가르친다. 광기에 사로잡힌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의도적으로 매우 모호하게 쓰여서 아직 미성숙한 두뇌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힘들다. 물론 영국 정부와 학교에서 그의 작품을 필수교과과정에 포함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의 독특한 작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그가 인류역사상 가장 뛰어난 작가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다.

하지만 태권도 9단 수준에 버금가는 성숙한 정신상태에서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이 5월의 사랑스러운 싹에 대해서 배우게는 하되 그들에게 햄릿의 어둡고 깊은 고뇌를 강요하지는 말자.

[팀 알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