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윤일병 사건 수사의뢰해야”…9년 전 인권위 보고서는 왜 사라졌나

고경태 기자 2024. 5. 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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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이 처음 찾아내…“축소·은폐 의혹 단서도 있어”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가운데 파란 옷)이 윤 일병 사망 사건 직후인 2014년 8월12일 윤 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한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포병부대를 방문한 병영문화혁신위원들과 함께 사고가 일어난 내무반을 살펴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선임병들의 구타·가혹 행위로 2014년 사망한 고 윤승주 일병 사건의 축소·은폐 의혹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축소·은폐 의혹 관련자를 수사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하기로 잠정 결론을 냈다가, 최종 권고안에서 이런 내용을 제외한 사실이 9년 만에 확인됐다.

6일 한겨레가 윤 일병 유족을 통해 확보한 ‘군대 내 구타·가혹 행위 및 보호 관심병사 관리체계 관련 직권조사 결과 보고’(결과 보고서)와 해당 보고서가 논의된 2015년 9월과 11월의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1소위) 회의록, 보고자료 등을 보면, 인권위 침해1소위는 2014년 8월부터 1년여 동안 직권조사를 벌인 뒤, 국방부 장관에게 ‘(윤 일병 사망 사건 수사 관련자들의 축소·은폐 의혹) 수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권고하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윤 일병 유족들은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당시 침해1소위 결과 보고서는 윤 일병의 직접적 사망 원인을 구타가 아닌 ‘(음식물에 의한) 기도 폐쇄’로 본 군 검찰의 결론이 나오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고 봤다. ‘기도 폐쇄에 의한 사망’은 가해자들을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기소하게 된 주요 근거다. 결과보고서는 “사망 원인에 대해 국방부 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견해가 많은 차이를 보였고, 국군양주병원 OOO이 작성한 ‘피해자의 기도에 음식물이 차있었다’는 의무기록 내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나… (중략) 의무기록 작성 경위, 최초 사망원인의 추정 경위, 관련자의 책임 소재 등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음. 따라서 본 사안에 대하여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 의뢰함이 적절하다고 판단됨”이라고 적고 있다.

침해1소위는 이런 잠정결론을 내린 뒤 국방부의 의견을 들었다. 국방부는 “유족이 사건 관련 헌병대장 등을 고소해 불기소처분한 바 있고, 고소인이 재정신청을 해 현재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에서 심리 중에 있다”며 ‘수사의뢰 권고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침해1소위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국군양주병원 군의관이 (유족의) 고소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기존 판단을 유지했다.

2014년 4월7일 윤 일병이 숨지자 인권위는 그해 8월 직권조사를 결정했다. 같은 해 9월 4~5일 부대 현장조사,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윤 일병이 사망 전 머물렀던 연천의료원, 국군양주병원, 의정부성모병원 의료진과 진료 의사 등을 직접 조사했다. 침해1소위의 판단은 이런 조사의 결과를 담은 보고서에 담겨있다.

하지만 직권조사 결과보고서에 담긴 ‘축소·은폐 의혹 수사 의뢰 권고’는 2015년 11월11일 발표된 침해1소위 결정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정문에는 인권법 제정, 소원수리시스템 개선 등 일반적인 군대 내 구타·가혹 행위 재발방지 대책만 포함됐다.

당시 조사총괄과장이었던 최아무개씨는 5일 한겨레와 나눈 문자메시지에서 “소위원회 심의에서 축소·은폐 의혹 부분이 받아들이지 않은 경위는 오래돼 기억나지 않는데, (여당 쪽 위원이 다수였던)소위 위원 구성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 인권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이성호씨였고, 침해1소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김영혜씨였다. 침해1소위 나머지 2명의 비상임위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윤남근씨,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한 최이우씨였다.

2015년 11월3일 침해구제제1위원회 회의록에 첨부된 ‘군대 구타·가혹 행위 및 보호관심병사 관리체계 직권조사’ 결과보고서. 사건 축소·은폐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윤 일병 유족 제공

윤일병 사건에 대한 군 검찰의 은폐·축소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 겸 상임위원은 지난해 4월 유족이 다시 제기한 윤 일병 사건 축소·은폐 관련 진정에 대해 지난해 10월10일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경우’라는 이유로 직권으로 각하시켰다. 윤 일병 유족들이 김용원 위원의 ‘채 상병 사건 관련 입장변화’를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한 직후였다. 김 위원은 지난해 5월만 해도 이 사건에 관해 강한 조사 의지를 표명하며 윤 일병 매형 김진모씨에게 두 번이나 직접 전화를 걸어 국가배상소송 판결문을 요청하고 궁금한 사항들을 질문했었다고 한다. 군인권보호국 조사관이 김진모씨를 불러 진정인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김진모씨는 “인권위가 이미 조사를 다 해놓은 것을 이번에 문서를 통해 처음 알았다. 김용원 군인권보호관도 기록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진정을 각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10년 지난 사건이지만 여전히 윤 일병 사건 축소·은폐 의혹은 하나도 안 풀렸고 한 명도 처벌되지 않았다. 이 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가 앞으로 있을 군 사망사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고 윤 일병의 매형 김씨를 비롯해 어머니 안미자(69), 큰누나 윤선영(46)씨 등 유가족 3명은 지난해 10월18일 인권위 15층을 항의 방문한 것과 관련해 김용원 군인권보호관이 경찰에 수사 의뢰해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현재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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