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때도 손엔 휴대폰”…40대에 5조 굴리는 ‘이 남자’의 성공비결 [신기자 톡톡]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4. 5. 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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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 톡톡-9]
심민현 어펄마캐피탈 PE 대표
심민현 어펄마캐피탈 PE 대표가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수현 기자>
“잠잘 때도 손에 휴대폰을 쥐고 가슴에 놓은 채 잠들었어요. 상사한테 걸려오는 전화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됐거든요. 사모펀드(PE) 운용사 ‘어펄마캐피탈(Affirma Capital)’의 전신인 ‘스탠다드차타드 프라이빗에쿼티(SC PE)’에 입사한 2009년 12월부터 5~6년 동안 휴가를 써본 적이 없어요. 거의 매일 야근했고, 툭하면 밤새우면서 일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사모펀드 투자역이 화려해보일지 모르지만, 끊임없이 산업을 공부하고, 투자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데 사력을 다해야 하며, 사람들한테 미움도 많이 받는 감정 노동자들입니다.” <심민현 어펄마캐피탈 PE 대표>

기업 인수·합병(M&A)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사모펀드. 영어로 ‘프라이빗 에쿼티 펀드(Private Equity Fund·PEF)’ 혹은 ‘프라이빗 에쿼티(Private Equity·PE)’라고 불리는 사모펀드는 주로 기업의 경영권 혹은 일부 지분을 인수하고 해당 기업의 가치를 높인 후 경영권 혹은 일부 지분을 되팔아 투자수익을 얻는다.

사모펀드 운용사가 굴리는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사모펀드는 M&A 거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큰손이 된지 꽤 됐다. 특히 기업 매각가가 1조원이 넘는 큰 규모의 M&A 거래에 어떤 방식으로든 사모펀드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최근 5년 새 M&A 업계에 위상이 커진 사모펀드 대표 운용사가 ‘어펄마캐피탈’이다.

어펄마캐피탈은 2019년 스탠다드차타드(SC) 그룹의 PE 투자 부문이 독립해 설립된 사모펀드 운용사로, 올해 3월 기준 누적 운용자산(AUM) 규모는 약 5조원에 달한다. 어펄마캐피탈은 광진화학, EMC홀딩스, 세아FS, 한마음에너지, 삼양패키징, 성경식품, 선우프레시, 티맵모빌리티, 캐롯손해보험 등 여러 기업에 투자하며 M&A 업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어펄마캐피탈이 SC은행의 PE 부문이었던 2002년부터 최근까지 투자한 기업은 117개, 투자 규모는 약 9조원에 달한다. 사모펀드가 조성하는 펀드에 자금을 출자해주는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어펄마캐피탈은 올해 3월 6호 블라인드 펀드(5000억원) 조성에 성공해 사모펀드 업계에 화제가 됐다.

어펄마캐피탈은 올해 말까지 추가 자금을 유치해 총 7000억원 규모로 6호 블라인드 펀드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블라인드 펀드는 투자 대상을 100% 확정하지 않고 펀드를 만든 후 투자 대상을 정하는 펀드로,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이 펀드로 기업에 투자한다.

사모펀드 투자역으로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지면서 사모펀드 투자역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다른 투자회사들과 달리 사모펀드 운영사의 투자역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심민현 어펄마캐피탈 PE 대표를 만나 그가 어떻게 M&A·사모펀드 업계에서 성공할 수 있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서 공부했거나 유명 해외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유학파, 해외 국적 소지자들이 점령한 사모펀드 업계에서 국내파인 그가 어떻게 40대 초반에 PE 대표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들어봤다.

심 대표의 독특한 이력과 고속 승진은 M&A·사모펀드 업계에서도 주목한다. 2022년 심 대표는 어펄마캐피탈의 PE 대표가 됐다. 그의 나이 43살 때였다.

군대서도 회계 공부...밤 11시 퇴근 후 바로 독서실로
“친구들이랑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대학생 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자주 술을 마셨고, 열심히 게임도 했어요. 그 대가로 대학교 1, 2학년 때 학사경고장이 날아왔죠. 군대 가서 정신 차렸습니다. 군복무 때 틈틈이 회계학을 공부했고, 제대 후부터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고 있네요. 돌이켜보면 인생이 체계적인 계획대로 흘러간 게 아니라 우연과 우연, 그리고 또 우연이 모여 지금의 인생을 만든 것 같아요. 우연의 연속이랄까요.”

심 대표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생 때 방송국 프로듀서(PD)를 동경해 방송국 입사 시험도 준비했지만 본인의 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접었다. 군복무 후 부전공으로 경영학을 선택해서 경영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흥미로웠다. 경영학과 학생들보다 더 높은 학점을 받곤 했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던 친구가 경영학 수업을 같이 듣자고 권유해서 우연히 경영학 수업을 들었다가 재미있어서 부전공까지 했다.

“대학교 4학년 올라갈 무렵 고려대학교 학생 게시판에 올라온 ‘에스케이텔레콤(SK텔레콤)’ 인턴 모집 공고를 우연히 봤어요. 해당 글에 ‘민현이 형한테 딱 맞는 인턴 채용 공고네’라는 댓글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인턴 채용에 지원해서 2004년 1~2월 SK텔레콤에서 인턴 생활을 했어요. 그때 우연히 했던 인턴 업무가 적성에 맞았고, 1년 후 SK텔레콤의 신입 사원 공개 채용에 도전해서 입사했죠. 그렇게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심 대표는 사회생활에 성실하게 임하면서 SK텔레콤에서 인정받았다. 정시에 퇴근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매일 야근하면서 최선을 다했다. 직원들의 인사·조직·노무·교육 등을 담당하는 에이치알(HR) 부서에서 약 4년 동안 일했다.

사회생활 1년 차였던 2005년 말 SK텔레콤의 의뢰를 받고 일하던 컨설턴트들을 우연히 봤는데,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 소속의 컨설턴트가 되려면 해외에서 경영전문대학원(MBA)을 졸업하는 게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MBA 입학에 필요한 시험(GMAT)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2005년 말부터 7, 8개월 동안 열심히 지맷(GMAT)을 준비했습니다. 거의 날마다 야근했는데, 밤 11시에 퇴근하면 바로 독서실로 가서 새벽 2~3시까지 GMAT을 공부했어요. 목표 점수를 달성했는데 MBA를 안 가기로 마음이 바뀌었어요. 당시 하던 업무가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러다 2007년 11월에 갑자기 업무가 바뀌었어요. 2008년 가을 사표를 내고, 2009년 프랑스 소재의 인시아드 MBA(파이낸셜 타임즈가 선정하는 세계 MBA 순위 3위)에 입학하며 진로를 변경했죠.”

이후 아르바이트 성격의 컨설팅 업무를 잠깐 맡게 되면서 사모펀드와 사모펀드 세계를 알게 됐다. MBA 졸업을 앞두고 SC은행 채용에 합격해 2009년 12월 말부터 PE 부문에서 일하게 됐다. 7일 동안 영어로 8번이나 면접이 진행됐다. 대출을 받아 어렵게 온 MBA였기 때문에 매순간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덕분에 합격했다.

“출근 첫날부터 밤샘 근무를 했어요. 남들이 일할 때도 일하고, 놀 때도 일하고, 가족 행사도 제대로 못 챙길 만큼 일에 몰두했네요. 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 재무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무·회계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특정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외울 정도로 들여다보면서 공부한 적도 있네요. 회사 업무량이 정말 많았지만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 또 공부했어요. 언제 어디에서든 갑자기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쩌다 시간이 나서 마트에 갈 때도 노트북을 들고 갔어요.”

심 대표는 이 같은 성실함을 토대로 M&A 업계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가 손대는 기업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며 진화했다. 대표 투자 성공 사례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폐기물 처리 기업 ‘EMC홀딩스’이다.

2009년 어펄마캐피탈은 EMC홀딩스의 전신인 코오롱워터에너지에 450억원을 투자해 지분 45%를 취득했다. 이후 코오롱워터에너지 경영권을 인수한 후 여러 폐기물 업체를 추가 인수해 규모를 키운 후 2020년 회사(EMC홀딩스)를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에 1조원 규모로 매각했다.

어펄마캐피탈은 2018년 에이피알(APR)에 약 100억원 투자해 약 8배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APR은 화장품 판매업으로 출발해 사업 영역을 뷰티·미용기기, 패션, 엔터테인먼트로 확장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사모펀드 순기능도 많아...긍정적인 측면 알아줬으면”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후 해당 기업의 비용 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거나 기업이 망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는 곧 기업 사냥꾼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 대표는 사모펀드가 기업에 투자 혹은 기업을 인수한 후 기업이 성장하는 사례가 훨씬 많다며 사모펀드의 순기능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사모펀드가 회사를 인수하면 기업 성장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인력 확대에 나설 때가 많습니다. 구조조정이 아니라 오히려 신규 채용이 일어나죠. 비영업자산 등을 정리하고, 그 자금으로 적절한 성장 동력에 투자해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도 일어납니다. 개인 대주주나 대기업이 진행하지 못했던 수출 판로를 개척하고, M&A 등을 통한 사업 확장에도 나섭니다.”

실제로 심 대표가 투자했던 조미김 제조업체 ‘성경식품’은 투자 이후 수출량이 크게 늘었다. 성경식품은 ‘이룰 성(成)’에 ‘서울 경(京)’을 결합해 ‘김의 수도(首都)’가 되겠다는 기치 아래 1994년 설립됐으며, 2015년 법인으로 전환됐다. 핵심 브랜드는 ‘지도표 성경김’이며, 겉포장에 대한민국 지도가 그려져 있는 김으로 유명하다. 성경식품은 주로 조미가 안 된 마른 김을 구입한 후 재가공해 판매한다.

성경식품은 2017년 어펄마캐피탈에 인수된 후 신제품, 신규 브랜드 등을 꾸준히 선보이면서 변신해왔다. 어펄마캐피탈에 성경식품이 인수되기 전에는 성경식품의 수출 규모가 매출액의 1%도 안 됐지만, 인수 후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며 지금은 전체 매출액의 40%가량이 해외에서 창출된다.

심 대표는 사모펀드 업계에서 성공하려면 대인관계가 좋아야 하고, 타인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주인이 가장 큰 금액을 제시하는 사모펀드한테 반드시 기업을 매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주인이 진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기업 매각 후 어떤 기업이 되는 것을 원하는지 등 숨겨진 욕구를 파악하는 게 매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매도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려면 서로 간의 신뢰가 형성돼야 합니다.”

심 대표는 어떤 리더의 모습을 꿈꿀까.

“언젠가는 제가 이 자리에서 물러날 텐데 제가 떠난 후 후배들이 ‘심 대표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어떤 전략을 썼을까’라며 떠올릴 수 있는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역량 부족 등의 이유로 해외에 진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들 기업이 해외로 뻗어나가고 더욱 성장하도록 앞장서겠습니다.

신수현 기자

* 신기자 톡톡은 화제의 인물, 특정 분야에 성공한 사람, 독특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살아온 분, 특수 직종 종사자 등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는 연재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의 ‘+구독’을 누르시면 놓치지 않고 기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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