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전기차 재조립, 이게 ‘군산형 일자리’인가”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2024. 5. 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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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원대 경제 효과라더니 “일자리 실적, 당초 목표의 1%에 그쳐”
정부·지자체 3800억 투입…보조금 경제의 예견된 몰락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문재인 정부 때 현대조선소 가동 중단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를 계기로 추진한 '군산 상생형 일자리' 사업이 지난 3월 끝났다. 지정된 지 3년 만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광주형 일자리를 모델로 한 전국에서 여섯 번째 지역상생형 일자리 사업이다. 2019년 10월 선포한 '군산형 일자리'는 사지에 내몰린 군산국가산업단지 회생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군산형 일자리' 성과에 대한 지역 시민단체·정치권과 지자체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2019년 10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서 "군산형 일자리는 세계 전기차 시대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10조원대 경제 효과가 기대된다는 당초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지금의 성적표가 초라해 '속빈 강정'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막대한 보조금 지원에 비해 저조한 생산 실적과 더불어 중국 전기차의 한국 진출 교두보 역할로 오히려 국내 전기차 산업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논란만 야기했다는 것이다.

군산형 일자리 사업의 실패에는 코로나19로 불안했던 국제 정세와 반도체 시장 불황 등 외부 요인이 꼽힌다. 이 때문에 물량 확보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애초부터 장밋빛만 가득한 채 3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는 구조였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자의든 타의든 준비되지 않은 '너도나도 광주형 일자리 따라 하기'의 예견된 몰락 수순이라는 얘기다.

굳게 닫힌 군산국가산업단지 내 (주)명신 정문 ⓒ시사저널 정성환

막대한 특혜…"보조금 퍼주기 사업으로 전락" 비판

'군산형 일자리'는 군산 지역경제 몰락 위기가 발단이 됐다. 한때 전북 지역경제의 버팀목이었던 군산 소룡동 국가산업단지는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과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등을 잇따라 겪으며 벼랑 끝으로 몰렸다. 당시 지역경제에서 기관차와도 같았던 두 대기업을 한꺼번에 잃은 군산은 휘청거렸다. 2016년 기준 군산 GRDP(지역내총생산) 23.4%를 차지하던 두 핵심 기업이 문을 닫자 약 1만7000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협력업체와 연관 서비스업까지 휴·폐업하면서 군산 인구(27만 명) 4분의 1의 생계가 위기에 놓였다. 실업률은 전국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일자리를 찾아 2년 새 4900여 명이 군산을 등졌다. 군산시는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군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8%로, 두 기업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군산 인구의 3%인 7000명가량이 줄어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치 세계 최대 크기의 코쿰스 크레인이 2002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렸을 때 스웨덴 말뫼 시민들이 흘렸던 '말뫼의 눈물'이 15년 시차를 두고 군산에서 재현된 모양새였다.

지역경제 회생의 구원투수인 군산형 일자리는 현대자동차·LG화학 등 대기업이 참여한 광주·구미와 달리 중소·중견기업과 벤처기업이 주축인 게 특징이다. 완성차 업체인 명신·KGM커머셜(옛 에디슨모터스)·대창모터스·MPS코리아와 전장 부품업체 코스텍 등 5곳이 옛 한국GM 군산공장과 군산국가산업단지에 2024년까지 5412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32만5000대를 생산하고 1714명을 채용하는 게 핵심이었다. 정부는 미국·중국 등 해외 메이커 위탁생산으로 GM 군산공장의 빈자리가 대체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면서 11조4671억원 생산 효과, 2조8149억원 부가가치, 3만9899명 취업유발계수를 예상했다. 정부·전북도·군산시는 3년간 인건비와 연구개발 지원금, 인력 양성 등 16개 관련 사업에 3800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지역 시민단체는 "전북 군산형 일자리 사업은 이유를 막론하고 실적을 따져봤을 때 분명한 실패"라고 규정했다. 지역 정치권도 가세했다. 전북도의회 오현숙 의원은 지난해 6월8일 도정질의에서 "전북특별자치도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군산형 일자리 사업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업'으로 전락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2019년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을 통해 미래형 자동차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당시 전북자치도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사업이 4년이 채 안 돼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 사업으로 드러났다는 게 오 의원의 주장이다.

이 사업에 참여한 4개 기업의 지난 3년간 성과는 처참했다. 참여 기업 총투자액은 지난 1월 기준 3045억원으로 목표치의 절반을 간신히 넘겼다. 전기차 위탁생산량도 4300대로 목표 물량의 1.3%에 그쳤다. 일자리 창출(530개) 역시 목표치의 30% 수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이들 업체에 주어진 특혜는 막대했다. 고작 284억원 투자에 전북자치도와 군산시는 '상생기금' 등 100억원 이상을 지원했고, 1인당 월 160만원씩 연간 12억원의 고용지원금도 줬다. 공장 부지는 새만금개발청이 공시지가의 1%만 받고 빌려줘 군산형 일자리라는 이름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이 가능했다. 전북자치도가 에디슨모터스에 100억원의 무담보 대출 보증을 섰다가 50여억원의 손실을 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퍼주기 사업 논란이 커지는 이유다.

무엇보다 막대한 지원금을 줘가며 '국내 전기차 산업 생태계 조성이 아닌 중국 제품 판매의 기회를 열어준 것이 군산형 일자리냐'는 지적은 뼈아픈 대목이다. 지역 시민단체 한 관계자의 말이다. "해외에서 반조립 상태로 제품을 들여와 국내에 있는 내장재·전장·배터리를 조립해 생산하는 방식이었다. 가령 중국 장쑤성의 JJAC라는 회사 제품을 들여와 시트와 전기장치 등을 조립한 후 국내에 납품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마크를 달고 한 대에 3억~4억원의 고가에 판매돼 이른바 원산지 세탁으로 대당 1억~2억원의 지자체 보조금만 축냈다는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북도 "지역경제 추락 막는 데 기여" 반박

지역 정치권에선 전기차 클러스터 조성은 현대판 바벨탑을 쌓는 격이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부품을 중국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군산뿐 아니라 국내에 협력업체가 육성될 리 만무했다. 이러한 자동차 가치사슬 생성 과정에서 새로운 전기차 생태계 조성이라는 군산형 일자리 사업의 또 다른 핵심 목표는 종적을 감췄다. 사업 출발점에서 애초 컨소시엄에 들어가 있지도 않은 에디슨모터스를 정치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사업 부실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에디슨모터스 대표는 쌍용자동차 인수 불발과 관련한 주가조작 혐의로 2022년 10월 구속 기소돼 한창 탄력을 받아야 할 사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반면 지자체의 입장은 다르다. 전북도는 외형적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지만, 지역경제 추락을 막고 재도약 기반을 다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항변했다. 문성철 전북도 일자리민생정책과장은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2017년 당시 군산 고용률은 52.6%였으나, 군산형 일자리 추진 이후 2021년 56.1%, 지난해 58.8%로 계속 올랐다"며 "내연기관차 위주 자동차 산업을 친환경·미래차 중심 산업으로 전환하는 계기도 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도 실적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나오지 못한 점은 인정했다. 그렇다고 현시점에 단순 실적만을 따져 군산형 일자리 사업을 실패로만 몰아가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자동차 산업의 특성상 애초부터 3년 안에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사업 추진 3년 만에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군산시는 "2021년 상생형 일자리 사업 지정 때부터 이어진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끝났지만, 후속 사업을 연계해 군산형 일자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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