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대학 예술·인문학 줄폐지…"인종차별·유럽중심주의" 경고[통신One]

조아현 통신원 2024. 5. 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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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문학·아프리카인 디아스포라·인류학 과정 줄줄이 없어져
해외 유학생 정착 줄이려는 정부 이민 정책, 대학 재정 부담↑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영국 작가 버나딘 에바리스토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02.13/ ⓒ AFP=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의 많은 대학이 재정 적자를 겪으면서 예술과 인문학 교육 과정을 폐지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학계에서 인종 다양성과 식민지 역사에 대한 이해가 편협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5일(현지시간)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켄트 대학교에서는 인류학을 회생시키기 위한 청원이 시작됐고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에서는 올해 초 음악 프로그램 과정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흑인 여성 최초로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받은 소설가 버나딘 에바리스토도 지난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교가 영국의 흑인 문학 석사 과정을 없애버린 것을 비판하고 학교가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

에바리스토 작가는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를 통해 "흑인 영국 문학 석사 과정은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학계와 대학, 사회에서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필수 과정으로 여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서섹스에 있는 치체스터 대학교도 지난해 아프리카 역사와 아프리카인의 디아스포라 역사에 대한 연구 석사(MRes) 과정을 폐지했다.

해당 석사 과정의 책임자였던 하킴 아디 교수는 결국 직업을 잃었다. 아디 교수는 지난해 영국의 최고 역사 도서 저자에게 수여하는 울프슨역사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학자였다.

그는 이날 오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폐지는 한 단어지만 인종차별과 유럽중심주의라는 두 단어가 더 있다!(Cuts is one word for it, racism and eurocentrism two more!)'라고 올렸다.

인문학을 도외시하는 학풍이 인종차별과 유럽중심주의를 강화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동해 공동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근현대 역사적 측면에서는 노예 제도와 식민지화에 대한 역사를 설명하고 해석할 때 핵심적인 개념으로 여겨진다.

또한 유럽 자본과 확장과 산업혁명,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의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맥락으로도 이어진다.

잉글랜드 남동부의 켄트 대학교도 인류학 강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하고 교직원과 학생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들과 협의를 거친 결과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길리언 키건 영국 교육부 장관이 대학 교육 과정의 취업 연계성을 더욱 강조하고 국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진로를 중요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학자들의 비판을 사기도 했다.

영국 대학 안에서 잇따르는 예술과 인문학 과정 폐지는 대학의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갈수록 높아지는 해외 유학생 등록금 의존도, 영국 정부의 이민 정책 영향이 배경에 깔려있다.

장기간 자국 내 대학생의 등록금이 동결되고 코로나 이후 급증한 인플레이션과 교직원 임금 상승이 겹치자 영국 대학들은 늘어난 적자 폭을 해외 유학생 등록금으로 채웠다.

지난달 26일 영국 의회 교육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연간 예산 초과 지출이 발생하는 대학 연구기관 비율은 2015년 5%에서 2020년 32%로 크게 늘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영국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포함한 해외 유학생 인원은 67만 9970명으로 전체 영국 대학생 인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듬해부터는 수요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대학 입학 서비스 데이터를 분석한 수치를 살펴보면 2023년 기준 영국 대학에 입학 신청서를 제출한 전체 비유럽 지원자는 약 3.6% 증가한 51만 8865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6년 만에 가장 느린 증가 폭이다. 직전 연도인 지난 2022년 해외 유학생 증가율인 11.6%와 비교해도 급격히 감소한 수치다.

게다가 영국 정부는 이민자 대응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1월부터 석사 과정을 밟는 해외 유학생은 부양가족을 영국으로 데려올 수 없도록 기존 규정을 바꿨고 학업을 마치기 전에 취업 비자로 전환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유학생 등록금 수입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막고 외국인 학생들이 영국에 정착하는 비율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다.

교육계에서는 해외 유학생에 대한 정부의 적대적인 정책이 유학생 수를 감소시키고 교육 재정 건전성도 휘청이게 만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변경된 정부 방침으로 해외 유학생들이 입학을 꺼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영국 교육부 산하 학생지원센터(OfS)가 지난해 발표한 재정 지속 가능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에서 2026년도 비유럽 국가 출신의 해외 유학생 등록금 수입 비중은 2023년 기준 19.3%에서 24%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영국 의회 교육위원회는 국제 교육 전략의 효과성과 유학생 유치 증감 추세, 해외 유학생의 높은 비율이 영국 국적 학생의 입학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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