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 매각설을 듣고 [1인칭 책읽기]

이민우 기자 2024. 5. 6.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던
하나로 묶였던 그 문학상
독자의 동의를 받지 못한 수상식은 결국 외면받는다.[사진=펙셀]

유튜브를 보다가 연예대상을 받았다는 사람이 해외에서 여행하는 것을 기록한 어느 프로그램을 접했다. 저 사람이 언제 상을 받았더라 고민하다가 불현듯 '연예대상'이란 상 자체가 생경하게 느껴졌다. 연예대상? 언제부터 이렇게 낯선 이름이 됐을까.

연말이면 가족들과 옹기종기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던 시기가 있었다. 제야의 종이 울리는 걸 보기 위해서 텔레비전 앞에 모이곤 했다. 그 종이 울리기 전 보는 것이 연예대상 시상식이었다.

나에게 연말이란 것은 그런 거였다. 서로가 바쁘게 달리다가도 하루쯤은 한곳에 모여 공통의 관심사들을 이야기하는 것. 모두가 함께본 콘텐츠를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자리. 세대, 성별, 직업을 넘어 이야기해 보는 시간.

사실 하나의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은 가족 사이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이런 경험은 가족을 넘어 학교로 회사로 뻗어 나가며 모두에게 공통의 화제라는 것을 만들어내곤 했다.

문학계에도 그런 상이 있다. 크게 둘로 나누면 신인 작가를 뽑는 신인상과 기존 작가들의 작품을 높게 보고 평하는 문학상이 있다.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젊은작가상…. 이름 있는 대부분의 상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에는 수백개의 문학상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를 한자리에 묶어두는 연예대상처럼 문학상의 대표 주자는 이상문학상이었다.

최근 이상문학상을 주관하는 문학사상사가 이상문학상을 매각하기 위해 여러 출판사에 연락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학사상사가 운영하던 문예지 '문학사상'도 휴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는 자금난이었다. 이상문학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이다. 1977년 작가 이상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상문학상 수상 자체가 작가들에게 영광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 있었다. 모두가 매년 의무처럼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사서 읽었기에 적자가 나기는 어려운 문학상이었다.

[사진 | 펙셀]

문제가 생긴 건 2019년 이상문학상이 대상 수상 작품의 저작권을 가져갔던 때부터였다. 물론 수상 3년이 흐른 후부턴 수상작가의 작품집에 한해 대상작을 수록할 수 있도록 했지만 출판할 권리가 아닌 저작권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대상뿐만이 아니라 우수상까지도 3년간 저작권을 양도해갔다. 작가와 독자들은 절필, 보이코트, 해시태그 운동으로 반발했다.

결국 이상문학상은 출판권 1년 계약으로 방침을 바꿨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상문학상을 읽지 않는 이들이 많아졌다. 우리가 주목할 건 '상'이라는 정체성이다. 상과 상금은 '업적을 격려하고 그를 위해 주는 돈'이지 출판계약이나 마케팅을 위한 홍보비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을 두고도 가족들이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 KBS든 MBC든 SBS든 서로 자기 방송국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에게만 상을 주기 시작한 게 기점이었는데, 이유는 결국 대상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였다.

비단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가족끼리 쏟아냈던 그 의문은 다음날 많은 이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문제가 돼 있었다. 독자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수상식'은 상보다는 광고에 가까울지 모른다. 관심이 식어가는 것도 아마 그런 시점과 일치하지 않았을까.

이상문학상도 마찬가지다.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는 자신들이 내놓은 출판물에 연재한 소설을 위주로 상을 주기 시작했다. 2019년 대상작 한편, 우수상 수상작 한편은 월간 문학사상에 수록한 소설이었고 2018년에도 그랬다.

2017년에는 대상작 한편, 우수상 수상작 두편이 모두 월간 문학사상에 실렸던 작품이었다. 수년간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은 월간 문학사상에 발표한 작품이다.

함께 질문할 수 있는 수상식이 있어야 관객은 돌아올 수 있다.[사진=펙셀]

그렇다고 이상문학상과 문학사상사만 별난 일을 벌인 건 아니다. 주최 측과 연결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관례는 이제 문학계에서 낯선 일이 아니다. 어쩌면 문학계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익숙한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행태의 결과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우리가 연예대상이나 연기대상, 그리고 문학상 수상에 관심을 가졌던 건 '수상식'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에겐 무엇인가를 평하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필요했다. 상은 큐레이션하는 동시에 질문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올해의 상을 기대한다.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