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위 안건 전수 분석…‘역대급’ 제22대 총선 선방위

이은기 기자 2024. 5. 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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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대 총선 선방위는 역대 선방위와 어떻게 달랐나. 〈시사IN〉은 2008년부터 2024년까지, 선방위가 다룬 안건 1126건과 역대 선방위원 235명 명단을 전수 분석했다.
4월25일 제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제16차 정기회의가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렸다. ⓒ시사IN 박미소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마무리됐다. MBC ‘대파 보도’ 심의 등으로 비판을 받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선거 30일 뒤인 5월10일까지 운영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방송 보도와 통신 내용을 심의하고 감독하는 상설 기관이다. 명목상 민간 독립기구이지만, 방심위원 임명과 해촉 권한이 있는 정권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선방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 관련 방송 보도가 집중되는 기간에 일시적으로 운영된다.

제22대 총선 선방위에는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4월24일 기준 22대 총선 선방위가 의결한 법정 제재는 모두 26건이다. 아직 22대 총선 선방위 종료까지 보름가량 남았지만,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그림 1〉 참조). 2008년 현 방심위가 신설된 이후, 2012년 제18대 대선 선방위가 지금껏 가장 많은 법정 제재 17건을 의결했다. 이어 2016년 제20대 총선 선방위가 14건이다. 나머지 선방위가 내린 법정 제재는 5건 내외에 그쳤다. 2012년 제19대 총선 선방위는 법정 제재를 1건도 의결하지 않았다.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제재 수위도 가장 높았다. 선방위가 내리는 결정 중에서 의견 제시나 권고 같은 ‘행정지도’는 계도적 성격의 조치다. 선방위에 따르면, 경미한 규정 위반일 때 행정지도를 내린다. 중징계로 인식되는 ‘법정 제재’는 다르다. 주의·경고·관계자 징계 순으로 수위가 높아지는 법정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때 감점 사유가 된다. 관계자 징계를 받으면, 벌점이 부과되는 데 더해 방송 담당자를 징계해야 한다. 사실상 ‘이중 제재’다.

선거기간은 짧다. 그사이 잘못된 보도로 특정 후보나 정당이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볼 수 있다. 선방위는 이런 불이익을 막기 위해 설치됐다. 선거 공정성에 영향을 끼치는 선거방송 보도에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목적이다.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이전 선방위와 어떻게 달랐기에 ‘역대급’ 선방위가 됐나. 〈시사IN〉은 2008년 제18대 총선 선방위부터 2024년 제22대 총선 선방위까지, 선방위가 다룬 안건 1126건(4월24일 기준)과 역대 선방위원 235명 명단(중복 포함)을 전수 분석했다. 그중에서 보도 기능이 있는 지상파·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을 대상으로 한 법정 제재를 추렸다.

2012년 제18대 대선 선방위는 법정 제재 17건을 의결했다. 직전 3개 선방위가 각각 2건, 1건, 0건의 법정 제재를 내린 걸 고려하면 이례적인 수치다. 2011년 12월은 채널A, JTBC, MBN,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종편)이 출범한 때다. 제18대 대선은 종편 개국 1년 뒤인 2012년 12월에 치러졌다. 선방위 법정 제재도 종편에 집중됐다. 총 17건(주의 9건·경고 8건) 중 채널A가 절반이 넘는 9건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 뒤로 MBC 3건, MBN 2건, 뉴스Y(연합뉴스TV)·JTBC·TV조선 1건 순이었다.

경고를 받은 보도 8건 중 2건이 비과학적 내용(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41조), 3건이 품위 유지(동 규정 제27조), 1건이 사실 보도(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12조), 나머지 2건이 공정성·객관성(동 특별규정 제5조·제8조) 조항을 근거로 징계를 받았다. 2012년 제18대 대선 선방위는 주요 대선 후보자의 사주를 통해 대선 결과를 예측(TV조선)하거나 역술가가 출연해 야권 후보 단일화 시점을 예측(채널A)하는 보도가 “방송은 미신 또는 비과학적 생활 태도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라는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정부·여당 비판 보도에 몰린 ‘법정 제재’

여론조사 보도(동 특별규정 제18조) 조항을 근거로 의결된 법정 제재도 3건이다. 조사 기간·조사 방법 등을 알리지 않은 보도(뉴스Y), 후보 간 오차범위 내 지지율 격차를 ‘앞선다’라고 표현한 보도(MBC), 지지율 수치를 잘못 전달한 보도(채널A)가 모두 ‘주의’ 제재를 받았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2016년 제20대 총선 선방위원을 지냈다. 심 교수는 “선거 방송심의에서 핵심은 여론조사 보도다. 여론조사 보도를 왜곡해 보도하면 큰 문제가 되는데, 이런 보도들은 구체 조항에 근거해 위반 여부를 기계적으로 따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 선방위는 법정 제재 14건(주의 12건·경고 1건·관계자 징계 1건)을 의결했다. 사실 보도, 여론조사 보도, 품위 유지, 사회통합(동 규정 제29조), 후보자 출연 방송 제한(동 특별규정 제21조) 그리고 공정성·객관성 등 조항이 징계의 근거가 됐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약 등을 소개하면서 새누리당 총선 주제곡 뮤직비디오를 약 25초간 내보낸 MBN 보도는 ‘관계자 징계’를 받았다. 역대 두 번째 관계자 징계였다. 최초의 관계자 징계는 “선거 홍보물을 방불케 하는 동영상”이라는 민원이 접수된 YTN 보도가 받았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 선방위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를 소개한 보도에 관계자 징계를 의결했다. 2014년(YTN)과 2016년(MBN) 두 ’관계자 징계’ 보도는 모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후보자와 공약을 소개한 보도였다.

반면 제22대 총선 선방위 제재는 대부분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보도를 향했다. 역대 선방위는 여론조사 보도나 특정 후보자에 대해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편파적 보도를 중점으로 심의하고 감독해왔다. 제22대 총선 선방위는 달랐다. 사법농단 재판 1심 판결을 비판(MBC)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이태원참사 특별법 거부권 행사를 비판(CBS, 가톨릭평화방송)하는 등 선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보도에도 징계를 내렸다.

그렇게 법정 제재 26건이 쌓였다. 선방위 징계는 MBC(16건), CBS(3건), YTN·가톨릭평화방송(2건), 대전·울산MBC(1건)에 집중됐다(총선 다음 날인 4월11일 채널A가 종편 중 처음으로 법정 제재를 받았다). 이때 징계 근거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조항이 공정성·객관성 조항이다. 전체 26건 중 여론조사 보도, 사실 보도, 후보자 출연이 제한된 방송의 출연 등 구체적인 기준 위반 사항 없이 공정성·객관성 조항 위반으로만 내린 법정 제재가 16건이다.

3월27일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4월18일 제22대 총선 선방위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공정성 조항 위반을 이유로 중징계인 ‘경고’를 의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방위는 해당 방송에서 김준일 시사평론가가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대해 “참 미래가 고생이 많다”라고 한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국민의힘 추천 최철호 선방위원은 이를 두고 “민주당 위성정당은 왜 공격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그동안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더군다나 당시는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기로 확정하지 않은 상태였다”라고 반박했다. “지금 선방위가 하는 방식대로 (공정성·객관성 기준을) 따지면, 모든 방송이 선거 토론방송처럼 (각 정당 관계자를) 똑같은 비중으로 출연시킨 뒤 정확히 초를 재서 발언권을 줘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선방위가 공정성·객관성 위반으로만 법정 제재를 내린 전례는 2008년 제18대 총선 2건,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1건, 2012년 제18대 총선 2건,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1건, 2022년 제20대 대선 1건 등이다. 2016년 제20대 총선 선방위원으로 활동한 심영섭 교수는 제22대 총선 선방위의 제재 수위가 일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선방위는 이전의 결정을 참고해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이번 선방위는 그 기준을 전혀 적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공정성’은 방송심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공정성은 저널리즘 윤리의 영역이다. 선거방송 심의는 위법성과 위해성을 기준으로만 따져야 한다. 공정성 등 보도 내용을 심의하는 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지금의 선거방송 심의 제도는 실패했다”

지금까지는 현행 규정으로도 선거방송에 대한 제재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유독 제22대 총선 선방위가 논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운영상의 문제’라고 짚었다. 방심위 내부에선 지난해 11월부터 22대 총선 선방위원 구성을 두고 반발이 나왔다. 선방위는 선거 때마다 일시적으로 구성된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회 교섭단체 정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외에 방송사·방송학계·대한변호사협회·언론인단체·시민단체에서 한 명씩 추천해 구성된다. 선방위원 9인을 꾸릴 때 어느 단체에 추천권을 줄지 방심위의 상임위원들이 논의해서 정한다.

애초 선방위 구성은 연속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어렵다. 심석태 교수는 선방위원을 ‘초단기 아르바이트 자리’에 빗댔다. “선거 때만 잠깐, 초단기로 활동하고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에 많은 사람이 알게 된 것처럼 휘두를 수 있는 권한은 막강하다. 그렇게 선거가 끝나면 다음 선거 때 또다시 경험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심의를 한다.”

제22대 총선 선방위 구성에는 그간 방심위가 쌓아온 선례도 반영되지 않았다(〈그림 2〉 참조). 방심위는 지금껏 방송사 몫으로 한국방송협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 방송 관련 협회를 추천해왔다. 방송학계 몫은 대표성을 띠는 학회에 돌아갔다. 이번에는 관행을 깨고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TV조선에 22대 총선 선방위원 추천권을 주었다. 시민단체 몫은 보수 언론단체인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 돌아갔다. 방송학계 몫 추천권은 2019년에 설립된 한국미디어정책학회가 받았다. 당시 야권 추천 방심위원들이 철회를 요구했지만, 류희림 방심위원장과 황성욱 방심위 상임위원(국민의힘 추천) 2인의 결정으로 선방위 구성이 확정됐다.

공직선거법은 정당원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곤 선방위원 자격 조건에 별다른 제한을 두지 않는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은 “그동안에도 방심위원 구성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긴 했지만, 방심위원끼리 합의해 선방위원 추천 단체를 정했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이해관계 충돌을 배제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제22대 총선 선방위 구성 뒤에는 선방위원들의 이해충돌 논란이 불거졌다.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지난 2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권재홍 위원(공언련 추천)과 최철호 위원(국민의힘 추천)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으로 신고했다. 두 위원은 공언련 임원 출신이다. 공언련이 선방위에 민원을 제기한 안건을 두 사람이 회피하지 않고 심의에 참여했다는 의혹이다.

4월24일 언론·시민사회와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 8당은 한자리에 모여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뜻을 모았다.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재입법과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한 국정조사, 언론자유 보장을 위한 국회 미디어개혁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이진순 민주언론시민연합 상임공동대표는 이 자리에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임기가 오는 8월 만료되는 점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날을 위해 방심위와 선방위는 차곡차곡 MBC를 무너뜨리기 위한 벌점을 축적했다. 이번에 방송 3법을 재입법하지 않으면 복구할 수 없는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최영재 교수는 “지금의 선거방송 심의 제도는 실패했다”라고 진단한다. “22대 총선 선방위는 선거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특정 정당과 관련한 특정 방송사의 보도에 무더기 징계를 내렸다. 법원은 이런 선방위 제재에 효력정치 처분을 잇달아 내렸다. 방송심의 제도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번 악용된 제도는 반복해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선방위가 처한 위기를 오히려 선방위 제도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심석태 교수의 말이다. “선거의 공정성은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방송 매체가 언론의 자유를 앞세워 선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지금의 선방위가 제도화됐다. 일부 방송 보도가 정치적으로 과열되어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방송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다만 행정적 규제의 근거는 명확해야 하고, 극히 제한적이어야 한다.”

4월25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 앞에 선거방송심의위원회 해체 촉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IN 박미소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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