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 양회동씨 부인 “열사 호칭 어색하지만…”

강릉·이상원 기자 2024. 5. 6. 08:5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사망한 지 1년이 지났다. 유가족은 정부와 언론에 ‘건폭몰이’의 책임을 물으려 한다. 부인 김선희씨는 “중학생인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고 양회동씨의 부인 김선희씨가 4월24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인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5월1일 노동절은 김선희씨 가족에게 기일이다. 지난해 5월1일 김씨의 남편인 건설노동자 양회동씨가 몸에 불을 붙였다. 경찰이 양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 등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공갈·업무방해를 했다는 혐의를 뒀다. 보름 뒤 〈조선일보〉는 ‘분신 현장의 건설노조 간부가 양씨를 막지 않았다’는 기사를 냈다.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 보도를 인용해 의혹을 증폭시키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올해 3월 경찰은 해당 노조 간부를 불송치(각하)했다. 자살 방조 혐의가 없다고 본 것이다.

양회동씨의 아내 김선희씨를 만났다. 그는 경찰 관계자와 〈조선일보〉, 원희룡 장관 등을 상대로 공무상 비밀누설, 명예훼손 등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수사기관·언론이 합작한 ‘건폭몰이’의 부당함을 알리고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4월24일 김씨를 만난 인터뷰 장소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근처. 1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곳과 가까웠다.

지난 1년 어떻게 흘렀나?

생활하던 자리에 아빠만 없는 상태로 1년을 보냈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나거나 문 여는 소리가 나면 혹시나, 혹시나 한다(울음). 어딘가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지난해까지는 잘 나서지 않았다.

이제는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에게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중3 아들이 장례식 때 건설노조 분에게 ‘저희 아빠 죄지은 것 아니죠?’라고 물었다고 하더라. 아이들에게 그런 아빠면 안 된다. 진실을 알려야 한다.

양회동씨는 어떻게 건설노조에 가입하게 됐나?

남편이나 나나 노조에 대한 인식이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조에 가입했다. 2016년쯤 성남에서 고시원 방을 얻어 철근 일을 배우고 그 뒤엔 설계도면 보는 법을 익혔다. 그렇게 했는데도 속초 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노조에 가입된 사람만 일을 할 수 있었다. 남편이 “나도 노조를 좋게 생각 안 하는데, 먹고살아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노조에 가입해 일자리를 얻고 좀 지나니까 반장이 되고, 팀장이 되더라. 월급도 제때 나오고 인건비도 더 받았다. 더 바랄 게 없었다.

지대장(건설노조 산하 특정 권역을 총괄하는 직책, 사용자 측과의 교섭을 맡는다)은 어떻게 맡았나?

나는 팀장 일만 할 때 만족했지만 남편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는 내용이 있었다. 건설 현장의 여러 불합리를 목격했다. 어느 날 갑자기 “지대장을 해야겠다”라고 말하더라. 나는 반대했다. 현장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일자리까지 책임져야 하니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은 소신이 생기면 해야 하고 말려도 끝을 보는 사람이다. 살면서 (남편을) 이겨본 적이 없다. 일단 지대장을 맡고 나서는 “이번 건이 자리 잡을 때까지만 하겠다” “12월까지만 하겠다”라고 했다. ‘좀 더 말려볼 것을, 왜 더 못 말렸을까’ 하고 많이 후회했다.

수사받을 때 양회동씨는 어땠나?

내색을 안 했다. 그래서 정말 걱정을 안 했다. 죄가 없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대장 하고 오히려 수입이 좀 줄었다. 바가지를 긁으면 남편은 소수의 나쁜 일(협박)을 하는 분들 얘기를 했다. “그럼 내가 그런 식으로 (돈을 많이) 벌어왔으면 좋겠어?”라고. 수사받는 동안에도 “받은 게 없으니 괜찮지”라고 했다. 다만 수사받을 때 남편이 교섭을 끝내면 현장에 꼭 경찰이 다녀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 중 밥을 시켜주던 수사관이 ‘이거 좋아하시잖아요’라며, 남편이 잘 먹는 메뉴를 알고 있었다고도 하더라. 표현은 잘 안 했는데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매일 핸드폰으로 웃긴 애니메이션을 켜놓고 잠들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사건 전날 기억은?

오후 3시쯤 남편이 전화로 오랜만에 소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더니 “돈도 못 벌어다 주는데 소고기 먹자고 해서 미안해”라고 했다(울음). 그날 저녁에는 나한테 “당신은 나야 애들이야?”라고 물었다. “당연히 애들이 먼저지”라고 하니 “나도 애들이 먼저야”라고 했다. 다음 날 새벽 5시쯤 일어나서 자는 애들 안아주고 볼에 뽀뽀하고, 나를 안아주더라. 평소에는 손도 잘 안 잡는데. 출근하고 20분 뒤 다시 들어와서 “탄원서 받을 노트랑 봉투 안 챙겨 갔어”라고 했다. 그게, 탄원서에 쓸 노트가 아니었던 거다.

지난해 6월21일 양회동씨의 장례 행렬이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앞을 지나고 있다.ⓒ시사IN 박미소

유서에 업무방해와 공갈 혐의를 받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썼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도 이 선택은 아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인터넷으로 노동 3권을 검색해보고 ‘많이 억울했겠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솔직한 마음은 그랬다. 그런데 남편은 노조 활동에 자부심이 있었다. 딸한테 “누가 너 괴롭혀? 아빠가 ‘단결투쟁’ 머리띠 매고 가서 투쟁 외쳐줄게”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내가 일하는 마트에 노조 물품을 사러 오고는 했는데, 아무리 말려도 건설노조 조끼를 입고 왔다. 정당하고 옳은 활동을 한다는 생각이 확실했던 것 같다.

남편의 분신을 건설노조에서 방조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

사고 당시에는 의심했다. 원망도 했다. 남편이 치료받던 새벽 한강성심병원에 노조원 두 분이 계셨다. 그분들 붙들고 노조가 뭐 했느냐고 원망을 쏟아냈다. (장례를) 노조장으로 치를 생각도 안 했다. 왜 남편을 이렇게 혼자 놔뒀는지 원망이 컸다. 그래도 남편이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풀어야 하지 않나 싶더라. 그래서 서울로 (노조장을 치르러) 가게 됐다.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 뒤 노조 분들을 보면서 감정이 점점 변해갔다. 현장에 계시던 분(〈조선일보〉가 분신을 막지 않았다고 지목한 사람)을 이전에 알지는 못했다. 장례식 때 못 들어오시고 주차장에 앉아 펑펑 우시더라. 작년 가을쯤 다른 노조원분들하고 뵌 게 마지막이다.

경찰과 〈조선일보〉, 원희룡 전 장관 등을 상대로명예훼손·공무상 비밀누설 등 소송을 제기했다. 무엇을 회복하고 싶나?

남편의 노조 활동이 정당했음을 밝히고 싶다. 사건 이전이나 이후나 〈조선일보〉에서 연락받은 적이 없다. 기사에 들어간 (분신 장면이 담긴) CCTV 장면을 본 적도 없다. 어디에서 누구한테 듣고 이런 기사를 썼으며 동영상은 어떻게 입수했는지 의심이 크다. 원희룡 장관 발언을 동영상으로 봤는데, ‘이 사람들은 노조 탄압을 위해서라면 사람이 어떻게 되든 신경 안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한 수사부터 이상한 보도까지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남편의 결백이 밝혀질 때까지는 뭐든지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데 사실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양회동 열사’ 호칭이 어떻게 들리나?

어색하다. ‘연대’ 같은 단어도 낯설고…. 지금 건설노조에 대한 마음은, (정적 후) 안타깝다. 마음이 아프고. 뭐라고 설명을 못하겠다. 그런데 새로 알게 된 게 많다. 나는 비정규직 마트 노동자이고 노조가 없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보통 참고 넘어갔다. 그런데 그거 사실 불합리한 거잖나. 내 목소리를 내야 하고, 그러려면 정말 노동자의 단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5월1일 이후에도 이 일이 잊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릉·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