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T·SKT·LG U+ 합작법인, 이달부터 ‘신 파일러’ 구제할 신용평가 개시

오종탁 기자 2024. 5. 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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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0만 이동통신 가입자 데이터 기반으로 대안신용평가 시장 뛰어들어
휴대전화 통신비만 꼬박꼬박 잘 내도 신용점수 오른다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한 황정환씨(가명·27)는 생애 처음 은행 대출을 받으려다 허탈감에 빠졌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1000만원 정도 대출을 받아 유럽 장기 여행비로 쓸 참이었다. 대출금은 취업하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황씨가 받을 수 있는 저금리 대출상품은 500만원 한도의 정책자금밖에 없었다. 1500만원 한도의 시중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대출금리가 10% 이상으로 올라가 쳐다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제야 황씨는 자신의 금융 신분이 '신 파일러(Thin Filer·파일 두께가 얇은 사람)'란 걸 알았다. 신 파일러는 최근 2년간 신용카드 사용 실적이 없고 3년간 대출을 보유하지 않은 금융 이력 부족자를 지칭한다. 신 파일러들은 쌓은 금융거래 정보가 없다 보니 신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낮은 신용점수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신용점수가 낮으면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거나 높은 금리로 빌려야 한다. 

4월30일 서울 시내 한 휴대전화 판매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황씨의 신용점수는 700점대 중반이었다. 취업준비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점수다. 황씨는 못내 억울했다. 대학 시절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다. 등록금 외에 자취방 월세와 공과금, 휴대전화 요금은 스스로 벌어서 냈다. 한 번도 밀린 적이 없다. 무분별한 소비를 할까 걱정돼 신용카드는 쓰지 않았지만, 꼭 필요한 일에는 지갑을 열었다. 나름대로 건강하고 어엿한 경제인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1000만원 대출하기도 힘든 신세일 뿐이었다. 

황씨는 유럽 여행을 포기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신용점수 올리는 법'을 검색해 봤다. '신용카드를 만들어라' '마이너스통장을 뚫어라'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게 맞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메시지가 왔다. '황정환 후원자님, 5월 소식지를 전해드립니다.'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있는 봉사단체에서 온 연락이었다. 그는 "내가 뭐라고 기부를 하느냐"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이스(NICE)평가정보, 코리아크레딧뷰로(KCB) 등 국내 주요 신용평가기관은 황씨와 같은 신 파일러가 전국적으로 1200만~130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국민 4명 중 1명이 신 파일러인 셈이다. 취업준비생과 사회초년생을 비롯해 주부, 노년층, 외국인 근로자 등이 신 파일러 그룹의 주를 이룬다. 

신용점수의 초점이 금융거래 정보에 맞춰지다 보니 돈을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는 신 파일러들도 대출 제한 등 불이익을 받아왔다. 2016년 이후 비금융정보(공과금·통신요금·보험료 납부, 온라인쇼핑 거래 등)를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이 속속 도입돼 왔지만, 보편화하지는 못한 게 사실이다. 2020년에 금융기관이 아닌 회사도 전문 개인신용평가업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진입 규제가 완화된 효과도 미미했다. 신 파일러 전체를 아우를 만한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통신요금 납부나 온라인쇼핑 거래 내역은 관계사들이 사전 조율 없이 제각기 신용평가사에 제공하는 탓에 표준화 문제에 부닥쳤다. 표준화된 데이터가 없어 활용하기 번거롭고 시너지를 내기도 어려웠다. 

해결이 난망해 보였던 신 파일러 문제가 새로운 기점을 맞게 됐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는 이달 중 4700만 명에 달하는 이동통신 가입자의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접 신용평가에 나설 예정이다. 이미 통신 3사의 대안신용평가 합작법인인 통신대안평가준비법인이 통신 데이터를 표준화해 개개인의 신용을 점수화하는 평가 모델 '텔코CB'를 개발해 놓은 상태다. 케이뱅크, 신한카드 등이 텔코CB를 중금리 대출 심사 등에 활용키로 했다. 

표준화가 이뤄진 덕에 고객이 통신사를 바꾸더라도 기존 데이터를 이어서 분석할 수 있다. 문재남 통신대안평가준비법인 대표는 "온 국민이 관여된 통신 3사의 통신 데이터를 통합하고 표준화했으니 그 신뢰성은 그동안 대안신용평가에 사용돼온 여타 비금융정보와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기존 금융정보에 우리의 비금융정보를 더하면 신 파일러 문제 등 정보의 비대칭과 불균형으로 점증하는 사회경제적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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