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다리 잃고 자전거에 인생 건 사이클 2관왕

박재영 기자(jyp8909@mk.co.kr) 2024. 5.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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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석 달 전 왼쪽 다리를 절단했던 박찬종 씨(34)가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겠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한 업체로부터 의족을 후원받았어요. 다른 장애인들이 의족을 산 돈으로 지원받은 제품이라고 생각하니 고작 취미로 자전거를 탈 순 없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죠. 한 분이라도 저를 보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길 바랐어요." 최근 그가 펴낸 책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역시 회복과 도전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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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장애인사이클선수권대회 2관왕 박찬종씨
자전거가 취미였던 연구원
2년전 사고로 왼쪽다리 잃어
의족 후원받고 선수 꿈 생겨
주 6일 훈련하며 책도 펴내
내년 국가대표 선발 도전
박찬종씨가 지난해 이탈리아로 떠난 신혼여행 중 ‘패럴림픽에서 만나요’란 팻말을 들고 사진촬영하고 있다. 본인제공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

2022년 12월, 석 달 전 왼쪽 다리를 절단했던 박찬종 씨(34)가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겠다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화학회사 연구원이었던 그는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했다. 2차로를 주행하던 5톤 트럭이 인도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3차선 우측을 달리던 박씨를 덮쳤고, 그는 왼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박씨는 다리를 잃고 사이클 선수가 됐다. 의족을 맞추기 전 자전거부터 구매했다는 그는 수술 부위가 아물자마자 다시 자전거에 오를 훈련을 시작했다. 휠체어에 앉아 유산소 운동을 했고, 한발 스쿼트로 근력을 키웠다. 사고 후 16개월이 흐른 지난달 14일, 그는 전국 장애인 사이클 선수대회 2관왕에 올랐다.

스무 살 때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그는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마니아였다. 자전거 정보를 공유하는 개인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다. 박씨는 “당시 국내 자전거 관련 유튜버 중엔 가장 구독자가 많았다”며 “제 영상을 보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는 분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찬종씨가 지난해 이탈리아로 떠난 신혼여행 중 촬영한 사진. 본인제공
자전거에 푹 빠져 살았던 만큼 사고 직후엔 절망감도 깊었다. 자전거 마니아에게 다리 절단은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처음엔 자전거 용품을 모두 버렸어요. 자전거도 유튜브도 다 끝났다고 생각했죠.” 그런 그가 다시 안장 위에 앉게 된 건 블로그에 남긴 ‘병상일기’ 덕분이었다. 사고 당시 감정과 치료 과정을 기록한 그의 글엔 수많은 응원 댓글이 달렸다.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두 발로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구독자들을 위해 유튜브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자전거를 좋아했지만 끔찍한 사고로 활동을 접은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진 않았어요.”

박씨가 처음부터 선수 활동을 계획한 건 아니었다.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이 선수 활동을 권유했지만, 큰 사고를 겪은 몸으로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은 부담이었다. ‘절단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없었으면 선수는 되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말한다.

“한 업체로부터 의족을 후원받았어요. 다른 장애인들이 의족을 산 돈으로 지원받은 제품이라고 생각하니 고작 취미로 자전거를 탈 순 없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죠. 한 분이라도 저를 보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길 바랐어요.” 최근 그가 펴낸 책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역시 회복과 도전 과정을 공유하기 위해 집필했다.

지난 3월 박찬종씨가 서울에서 자전거 훈련을 마치고 사진촬영하고 있다. 본인제공
박씨는 자전거를 진심으로 즐겼기에 재활과 훈련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자전거 선수가 되고 나서 알게 된 건 제가 자전거를 여전히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에요. 사고 전에는 ‘취미가 일을 방해하게 하지 말자’는 생각에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을 누르려 애썼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6일은 자전거를 타거든요.”

취미였던 자전거는 박씨가 사고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고, 이제는 삶의 전부가 됐다. “취미가 어떤 것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소중하고, 그 시간들이 바로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걸 알게 됐죠.” 전국 장애인 사이클 선수대회 개인도로독주·개인추발3㎞ 종목에서 우승한 박씨는 내년 국가대표 발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는 2026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28년 로스앤젤레스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낸다는 계획이다.

박씨는 사이클 외에 다양한 종목도 도전한다. “올해엔 10㎞ 마라톤에 도전할 예정이에요. 이미 등록까지 해놔서 무를 수도 없죠. 언젠가는 철인 3종경기 대회도 나갈 거예요. 절단 장애인이 자유롭게 운동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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