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거목’ 임영웅, 오지 않는 고도 찾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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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고도를 기다리던 사나이가 떠났다.
한국 연극계의 거목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가 4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배우인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와 윤여정 박정자 손숙 윤소정 사미자 김용림이 산울림 창단 멤버다.
고인은 2012년 "나도, 극단 산울림도, 산울림 소극장도 '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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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연출 데뷔… 기자-PD 거쳐
극단 산울림 동아연극상 23회 수상
소극장 만들고 3층에 직접 살아
고인의 아들 임수현 산울림 예술감독(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은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평생 연극에 헌신하신 아버지가 1년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며 “1985년 개관한 산울림 소극장 40주년을 맞아 내년에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고인의 인생을 바꾼 건 부조리극의 대표적 작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다. 두 부랑자가 시종일관 얼토당토아니한 대화를 나누며 ‘고도’라는 정체불명의 인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작품이다. 고인은 1969년 초연한 이 작품의 성공을 계기로 1970년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초연 배우인 김성옥 함현진 김무생 김인태와 윤여정 박정자 손숙 윤소정 사미자 김용림이 산울림 창단 멤버다. 이후 50여 년간 1500여 회 공연에 22만여 명이 고인의 공연을 봤다. 고인은 2012년 “나도, 극단 산울림도, 산울림 소극장도 ‘고도’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아내인 오증자 서울여대 명예교수(89)와 사재를 털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산울림 소극장을 열었다. 23㎡(약 7평) 크기의 무대에 객석 74석의 작은 공간이었다. 인건비도 안 나오는 소극장을 유지하기 위해 고인은 말년까지 극장 건물 3층에 살았다. 극장 건물 3층에서 자란 아들이 산울림 예술감독, 딸이 산울림 극장장으로 아버지의 꿈을 잇고 있다.
산울림은 ‘연극학교’로 불리며 수많은 연출가와 배우를 배출했다. 특히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평일 낮에 공연해 주부에게 인기를 끌었다. 박정자의 ‘위기의 여자’, 윤석화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 손숙의 ‘담배 피우는 여자’가 대표작이다. 배우 손숙은 이날 “산울림은 남성 배우들이 차지하던 연극판에 주부를 불러들이고, 여성 배우 전성시대를 열었다”며 “고인은 열악한 시절 오직 뚝심만으로 연극계의 지평을 넓혔다”고 했다.
고인은 1985년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로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받았다. 또 그가 이끈 극단 산울림은 1986년 대상(‘위기의 여자’) 등 동아연극상을 총 23회 수상했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었던 고인은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8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1995년) 동랑연극상(1995년) 보관문화훈장(2004년) 금관문화훈장(2016년)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1989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국립극단 이사,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한국연극연출가협회 초대 회장 등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고인은 2019년 “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이라며 “반세기 외길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증자 교수, 아들 수현 산울림 예술감독, 딸 수진 산울림 극장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7일 오전 8시.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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