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치의 새’를 불러들일 것인가[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실제로 서학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그림은 실제 순간을 묘사한 이미지라기보다는 영원 속에 박제된 그림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하얀 학이 훨훨 날고 있는 것 같지만 날고 있는 상태에서 정지된 모습이다. 서학도에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 날아다니는 학의 역동적 움직임보다는 궁궐과 더불어 이루는 대칭적이면서도 상서로운 이미지다. 요컨대 서학도는 좋은 정치에 깃드는 상서로운 기운을 포착하려는 정치적 장르화다.
아름다운 그림을 생산하는 것이 정치적 권위에 도움이 될까? 된다. 세금을 낭비해 가면서 어설픈 홍보 영상을 찍거나 조악한 거리 환경 미화를 하는 것은 역효과를 내겠지만 진정 아름다운 것이라면 권위의 창출과 유지에 도움이 된다. 아름다움이 행사하는 힘은 실로 막강하지 않은가. 아름다움의 특징은 자신의 힘을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보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납득하게 되는 것이 아름다움의 힘이다. 진정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보라. 선물을 주기보다는 선물을 손에서 떨어뜨리게 되고, 물을 권하기보다는 물을 쏟게 되며, 웃기보다는 울게 될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권위의 실추를 반영한다. 말로 자신의 처지를 변호하기 시작하면 그 권위는 이미 위태롭다.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방법은 꼭 논리적 설득이나 물질적 보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심미적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러니 정치적 리더라면 얼굴을 깨끗이, 복장을 단정히, 행동거지를 품위 있게 하는 일을 게을리해서야 되겠는가. 연애 비결을 묻는 학생들에게도 늘 말하곤 한다. 잘 씻는 게 생각보다 중요해요. 일단 씻으세요.
그러나 현대 유권자들은 심신을 잘 씻지 않은 이들을 국회로 보내기도 한다. 사진작가 강홍구의 1997년 포토 콜라주 작품 ‘흉조 5’를 보라. 이것은 판화보다 더 대량 복제가 가능한 사진 작품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검은 새들이 모여들고 있고, 전면에는 박쥐 사진이 크게 프린트돼 있다. 이 새들은 선출된 국회의원들을 상징할지 모른다. 도록에서는 이 작품이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 ‘새(The Bird)’를 연상시킨다”고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는 서학도와 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뭔가 조짐을 그린다는 점, 국정의 전당을 장소로 삼는다는 점, 그곳에 모여든 새들을 그린다는 점,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적절한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금개혁안 놔두고 유럽출장 가겠다는 담당 국회의원들
- 한동훈 칩거 끝내고 세 결집 나서나… 비공개 당직자 회동
- 野 “김건희 특검법 수사 시늉으로 피할생각 말라”
- ‘찐윤’ 이철규, 결국 원내대표 불출마…이종배-송석준-추경호 3파전
- 공수처, ‘채상병 의혹’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 15시간 조사… 이종섭도 곧 소환
- 김용태 “대통령이 결자해지…특검법 대국민 기자회견 해야” [중립기어]
-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으며 소변을 볼 때 통증이 느껴진다
- ‘허재아들 결승 맞대결’서 형이 이겼다… KCC 13년만에 우승
- 미국 탱크가 모스크바 한가운데… 전리품 자랑한 러시아의 속내
- 尹, 청와대로 어린이들 초청…“어린이 만나는 일 항상 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