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졸려도 달린다

이지은 2024. 5. 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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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화물차 사고.

화물차 사고 3건 중 2건이 졸음운전 사고입니다.

발생했다 하면 대형사고가 되기 때문에 화물차 사고는 도로 위 다른 운전자들에게도 치명적입니다.

김필수 /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내가 그걸 피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돼요. 영화에서 피하죠. 영화입니다. 100% 못 피해요 .


시멘트 트레일러 운전자 이성철 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됩니다. 화물을 싣고 먼 길을 달리려면 서둘러 움직여야 합니다.

오늘 운반할 화물은 건설용 콘크리트 원료입니다.

이성철 /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 운전자
제품 이름이 '고로 슬래그 미분말'. 제철소 공장에서 철광석을 만들고 나온 폐기물인데 그거를 우리나라에서는 폐기시키지 않고 갈아서 시멘트에 섞어서 콘크리트 원료를 쓰고 있어요.

이성철 씨는 20년째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장 내 숙력된 직원이 이 작업을 맡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부터인가 화물 싣는 작업이 기사들의 일이 됐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혹시 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합니다.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20년 전에는 시멘트 회사에서 사람을 채용해서 짐을 실어줬어요. 직원들이 짐을 실어준 다음에 탱크 뚜껑을 닫아주고 그 다음에 송장을 주면 가지고 가는 거죠.

가는 현장마다 설비가 다르고 조작 방법이 다르고 절차가 다 달라요. 예전에 자동화가 안 됐을 때인데 사인이 안 맞아서 직원이 차 위에 있는데 모르고 출발하라고 해서 사람이 죽었어요.

본격적인 운행이 시작되면, 첫 관문인 고속도로 과적 단속 시스템을 만납니다.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가는 무게 중심이 차량 한쪽으로 쏠려 과적 표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 이성철 씨는 어림잡아 400km를 달려야 합니다.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수원에 있는 건설 레미콘에 가서 짐을 내리고 다시 나와서 영동고속도로 타고 충북 단양에 갈 거예요. 충북 단양 시멘트 공장에서 시멘트를 실은 다음에 천안으로 가서 짐을 내리고 다시 처음에 출발했던 당진으로 올 거예요. 그러면 거리가 400km 정도 될 것 같아요.

하루에 매출이 최소한 70만 원 선은 돼야 돼요. 운행 거리 100km당 매출이 최소한 14만 원 정도는 나와야 될 것 같더라고요.

장거리를 운행하다 보면 항상 신경쓰이는 건 사고입니다. 이성철 씨는 14년 전 운전 중 사고를 겪었습니다.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수금이 안 됐어요. 화물차 할부가 700만 원이 들어가야 되는데 수금이 안 되는 거예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죠. 그런 스트레스가 터널시야를 만들어요.그러니까 시각이 이렇게 좁아지는 거죠. 그래서 운행하는데 갓길이 안 보였어요.갓길에 차가 서 있었는데 차선을 살짝 벗어나면서 차하고 부딪힌 거예요.

25톤 화물차를 10년 넘게 운전해 온 김영광씨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길 위에서 보냅니다.
김영광 / 25톤 카고 화물차 운전자
혹시 비가 올 경우 화물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고, 또 화물에서 가루 같은 게 떨어지지 않게 제품을 포장해야 합니다. 화물에 천막을 씌우지 않으면 요즘에는 적재 불량으로 단속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실을 화물은 목재 가구를 만드는 데 쓰이는 합판 24톤 물량입니다. 차량의 적재 허용 중량인 23톤 900㎏을 초과하는 무게인데 과적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현행 도로법상 화물차와 화물 무게를 합한 총중량 40톤이 과적 기준입니다. 여기에 오차범위 10%까지 감안해 44톤을 넘기지 않으면 과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컨대 5톤 트럭에 15톤 무게의 화물을 실어도 걸릴 일은 없다는 뜻이죠.

그런데 때때로 위험을 감수하고 화물을 실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많은 화물차 기사들이 사용하는 화물 주문 모바일 앱에서는 화물차의 적재함 규격과 맞지 않는 화물을 운송해 달라는 주문이 적지 않습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화물 길이가 11.5m인데 적재함 길이가 10.5m예요. 그러면 화물 1m 정도가 적재함 밖으로 빠져 나오는 거죠. 저희가 이렇게 싣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일이 이렇게 들어와요. 적재함 문을 연 채로 운송하라는 거예요.

이성철 씨는 1시간을 더 달려 경기도 여주 근처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 한 통에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운송 일정 하나가 취소됐다는 연락입니다.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그럼 어떡해요? 지금 여주까지 가는데. 일단 좌우간에 여기서 차를 돌릴 수 없는 거니까 내일 거라도 실어야지. 좌우간 전화 주세요. 앞으로 한 1시간 정도 걸리니까

며칠간 내린 비로 시멘트 보관 탱크에 원료가 가득 차 있어 추가로 물량을 내려 놓을 공간이 없다는 연락입니다. 이미 실은 원료를 내리기 전까지 다른 화물 운송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운송이 취소되면서 이번 달 매출에도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 중이었던 2년 전만 해도 사정이 나았습니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운전자들의 과로를 막아 사고를 방지한다는 취지로 2020년부터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됐었습니다. 이 제도에서는 차주들이 적정한 운임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갑작스럽게 운송이 취소되면 차주들이 '회차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물류비 급등과 화물차 사고 감소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초 시행이 중단됐습니다.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안전운임제에서는 몇 킬로미터 가면 돈이 얼마다 이렇게 정해져 있잖아요. 다 법적으로 정해져 있었어요. '회차할 경우에 1.5배를 준다', '10만 원짜리면 15만 원을 준다' 이렇게 했었거든요. 그런 게 없어졌죠. 일단 대기료 없어지고 회차비도 없어지고….

100% 나빠지죠. 사람들이 불안해 하잖아요. 항상 염려하고 또 운송비 걱정하기 시작하고 예전처럼 각자도생해야 되니까 이제 잔머리 굴려가지고 일거리 더 확보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죠.

첫 출발지를 떠난 지 8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성철 씨 눈커풀이 자꾸만 내려앉기 시작합니다.


마음대로 차를 세울 수 없는 고속도로에서 졸음은 불청객입니다. 다행히 가까운 졸음쉼터에서 차를 세운 이성철 씨는 잠도 쫓을 겸 차량 점검에 나섰습니다.

그사이 김영광 씨는 군산에서 인천으로 가는 길을 달립니다. 첫 번째 운행을 마치고 벌써 2번째 운송입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새벽에 인천을 갔다 왔습니다. 새벽 2시 반에 출발을 했어요. 인천 도착해서 물건 내려주고 군산으로 돌아온 게 오후 3시 반이에요. 와서 공장 들어가서 물건 싣고 다시 나온 게 오후 6시 반이잖아요. 그럼 새벽 2시 반에 출발을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잠을 못 자고 계속 일을 하고 있잖아요.

군산에서 인천까지 5시간 만에 다시 200km 달려야 합니다. 사고 걱정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졸음운전 사고가 크게 날 뻔했어요.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몸이 너무 피곤하면 잠깐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겨요. 잠깐 눈을 감았는데 떠보니 중앙분리대 바로 앞에 있더라고요 제가. 진짜 이대로는 죽겠구나 싶어서 사고 난 이후로는 졸리면 무조건 졸음쉼터 가서 10분이든 30분이든 자고 가요.

화물차 운전자의 졸음운전은 특히 치명적입니다. 지난 2022년 홍정열 계명대학교 도시학부 교수는 고속도로 교통사고의 주요 요인을 차종별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화물차의 경우 졸음운전이 사고를 낼 확률이 다른 요인에 비해 2배 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홍정열 / 계명대 도시학부 교수
보통 타 차종들 같은 경우에는 사고 주요 요인이 보통은 운전자의 그런 법규 위반 예를 들어서 과속이라든지 아니면 안전거리 미확보 이런 법규 위반으로 인해서 발생이 되는데요. 실제로 화물차 사고 같은 경우에는 졸음운전이나 주시 태만 이런 운전자들의 어떤 신체적인 피로하고 관련돼서 발생하는 운전 행태가 주요 사고 요인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자정 무렵, 김영광 씨는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잠에서 깨면 다시 도로 위를 달려야 합니다.

사고 위험을 겪을 때마다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가도 차량에 들인 비용이 적지 않아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너무 위험하니까 그런데 할 수 없었던 게 이 차에 할부금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이 차를 팔면 손해를 많이 보더라고요.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릴 때도 많지만 정작 손에 남는 돈은 얼마 없습니다.

악착같이 일해도 한 달에 벌 수 있는 수입은 대략 400~500만 원선. 네 식구 생활비 하기에도 빠듯한 돈입니다. 차량 정비도 자꾸 미루게 됩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화성에서 군산 가는데 170km인데 29만 원이에요. 일반인이 보면 29만 원이면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거 가면 10만 원이나 남을까

이상을 느낄 때가 있어요. 차가 좀 평소하고 달라서 정비 한번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일단 일이 급해요. 먹고 사는 게 우선이다 보니까 사람이라는 게 그러면 일단 이거 한 탕 더 하고 주말에 가서 정비 한번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또 사고가 난다는 거죠.


한상진 /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화물 운송 시장은 공급 과잉입니다. 그러니까 화물차를 운전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자가 이 수요에 비해서 더 많다라고 보여지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협상력 즉 '바게이닝 파워'가 화주에게 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가격도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높은 시장이고요. 또 마찬가지로 화주의 요구에 가급적이면 맞춰주는 것이 앞으로 안정적인 물량 확보에 중요할 수 있죠.


김성희 /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
중소업체인 운송회사들이 화주의 운송을 수탁받아서 그거를 화물 운송기사에게 위탁하는 구조로 돼 있죠. 이제 적절한 운임을 주도록 하는 제도적 강제가 없으면 그 운송 단가는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고 중소 운송업체들은 화물 운송 기사들에게 적절한 운임을 책정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거죠.

화물차 기사들은 적정한 기본 운임을 보장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김영광 / 화물차 운전자
우리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러니까 최소한의 화물차 기사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운반비를 측정해서 '이 정도 이하로는 안 된다' 하면 좋은데 그런 게 없잖아요

이성철 / 화물차 운전자
시스템적으로 휴식시간과 잠자는 시간 또 일하는 시간, 운행 거리 이런 것들이 정립이 돼야 돼요. 그게 이 정도 이상 하면 안 된다라는 것이 틀이 정해지고 그 안에서 그러면 어떤 게 합리적인 운임비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야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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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기자 (writte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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