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도깨비불

기자 2024. 5. 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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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후 저녁 아이가 되어 골목 어귀 쭈그려 앉아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검은 나무 아래에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어 다가가 보니, 둥지에서 떨어져 날개 꺾인 작은 새가 있었다. 새는 나를 보고선 두려움에 발톱을 동그랗게 오므렸다. 조심스레 새를 쥐고선 박명 너머 까마득한 하늘 끝에 걸린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시작하기도 전, 새가 있는 힘껏 내 손을 쪼았다. 나는 그만 새를 떨어뜨렸고, 그 작은 새가 거무튀튀한 흙바닥에 닿기도 전에 난 눈을 질끈 감고선 집을 향해 뛰어가 이불 속에 웅크렸다. 손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바람 소리가, 먹구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갗을 가진 그 소리를 손바닥 안에 쥐고선 나는 지친 엄마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불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날 밤 내내 내 손은 문간을 왔다 갔다 하며 내 등을 두드렸다.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그 자리에 가보니 작은 물웅덩이에 검은 나뭇잎 하나가 동그랗게 말려 있었고, 물의 살결 위로 균형을 잃은 잿빛 불꽃 하나가 반짝였다. 김안(1977~)

함께 놀던 “동네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저녁, 아이는 “지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지. “검은 나무 아래”, 작은 기척에 홀린 듯 다가갔지. 둥지에서 떨어진 아주 조그맣고 겁이 많은 새, “두려움에 발톱을 동그랗게 오므”린 새. 어떡하나. 어미 새가 찾고 있을 텐데, “하늘 끝에 걸린 둥지”는 너무 아득했지. 놀란 새가 아이의 손을 쪼았지. 도깨비불이었나. 아이에게서 사라진 빛. 새를 놓친 아이는 집으로 뛰어가 이불 속으로 숨었지. 작은 새가 어미 새를 못 만나면 어떡하나.

다음 날 “등굣길”에 보았지. 새가 떨어진 자리에 “물웅덩이”, 그 위에 “검은 나뭇잎 하나” 떠 있었지. 어떡하나. 내가 새를 죽였나 봐. 새는 날지 못하는 웅덩이. 그 위에 “잿빛 불꽃” 하나 도깨비불처럼 반짝였지. 오늘도 골목 어귀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저녁 아이”들, 작은 새를 손에 꼭 쥐고서.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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