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업무시간 연장 아니라 혁신이야” [권상집의 논전(論戰)]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2024. 5. 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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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도입한 임원 주 6일 근무, 재계로 확대될 조짐
임원만 참여하는 주 6일 근무 두고 비효율 논란 여전

(시사저널=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삼성그룹이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임원의 주 6일 근무를 꺼내들었다.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비상경영 카드로 긴급조치를 전격 선언한 셈이다. 주 6일 근무가 삼성 내부에서 새로운 의사결정은 아니다. 이미 지원 및 개발부서 소속 임원은 주 6일 근무를 진행하고 있고 삼성물산 임원들도 주 6일 근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 조치는 전체 계열사 임원 모두에게 적용된 일종의 '비상선언'이다.

최근 삼성과 SK가 시행한 임원 주 6일 근무를 두고 재계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과 주 6일 근무에 대해 언급한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격변하는 환경이 불러들인 주 6일 근무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특정 제도 도입을 선언하면서 예외 없이 이를 적용하는 건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계열사별 자율경영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재용 회장이 자율경영에서 비상경영으로 유턴한 배경은 무엇일까. 핵심 요인은 외부환경의 변화에 있다. 코로나19가 재택근무를 불렀다면 이어지고 있는 격변 환경은 오히려 사무실 근무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삼성뿐 아니라 국내 모든 기업은 기업 규모와 처한 상황을 막론하고 비상경영 처지에 놓여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 중심의 중동 리스크 확산 같은 통제 불가능한 외생변수부터 저성장 고착화, 고령인구로 인한 내수시장 침체 등 국내시장 변수는 또 한 번의 위기 조성이 필요함을 모든 CEO에게 각인시켰다. 삼성이 주 6일 근무에 돌입하면서 다른 기업도 동참을 고민 중이다.

삼성전자로 영역을 좀 더 좁히면 비상경영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2017년까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수많은 경쟁사가 신기술 개발과 기술융합으로 산업의 경계선을 허물면서 삼성전자는 2022년 R&D 투자 규모에서 세계 7위로 밀렸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폭스바겐 외에 중국의 IT 대표기업 화웨이마저 R&D 투자에서 삼성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삼성은 그룹 차원의 비상경영을 진행하기 위해 전 계열사 임원에게 사정에 따라 토요일 또는 일요일 중 하루를 선택해 근무하는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사실, 삼성만 유달리 오버액션을 취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SK그룹은 올해 2월부터 토요일에 진행되는 토요사장단회의를 부활시켰다. 2000년 이후 24년 만에 시행된 조치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위기경영을 강조하며 임원에게 오전 7시 출근을 권장했다.

그룹 임원에 한해 주 6일 근무를 도입하자 직장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일종의 격론이 벌어졌다. 눈에 띄는 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MZ세대만의 주장도 아니다. 다수의 직장인은 말 그대로 격변하는 상황에서 주 6일 근무가 과연 무슨 효과가 있냐고 반문한다. 현재, 상당수 직장인은 시대착오적 제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먼저, 삼성과 SK 등 굴지의 국내 대기업이 주 6일제, 토요사장단회의 등을 왜 부활시켰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고한 김인수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1980년대 조직과학(Organization Science) 학술지 등에 국내 대기업의 건설적 위기 조성에 관한 사례를 논문으로 발표해 경영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국내 기업은 CEO가 건설적 위기를 조성하며 업무 강도를 높여 조직 학습과 성장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삼성과 SK가 이번에 꺼내든 주 6일제는 일종의 비상선언이다. 재난 상황에 직면한 비행기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듯이 기업들도 임원에 한해 일종의 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한 격이다. 특히, 1980~90년대 국내 기업들은 CEO가 위기를 조성하고 임직원들의 업무 강도를 높여 글로벌 기업을 추격, 일부 산업은 세계 1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예전의 성공 방식이 지금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주 6일 근무를 본격 도입하기 전에 고민해야 할 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가 '과연 주 6일제가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최적의 대안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둘째는 '국내 기업의 위기가 정말 주 5일제 등 워라밸에서 비롯된 문제인가'이다. 삼성그룹도 주 6일 근무에 대한 논란을 의식한 듯 임원을 제외한 부장급 이하 직원들은 모두 주 5일 근무를 그대로 유지하라고 강조했다. 임원만 참여하는 주 6일 근무의 비효율은 여기서 드러난다.

회사 경영진 및 임원은 기업전략, 사업전략 등 이른바 큰 그림에 집중한다. 쉽게 말해, 의사결정에 집중하는 게 임원의 역할이다. 그리고 임원의 의사결정을 지원하기 위해 부장급 이하 직원은 양질의 보고서와 검토 자료를 만들어낸다. 주말에 임원만 나와서 근무한다는 얘기는 결국 임직원의 자연스러운 주 6일 근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위기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근면성실, 업무 강도와는 거리가 멀다.

주 6일 근무의 허와 실

AI도 예측하기 힘든 미래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요구되는 건 창의성과 혁신역량이다. 주 5일에서 하루 더 근무한다고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도 아니다. 격변하는 상황, 산업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해 창의성에 초점을 두고 조직을 관리하는 글로벌 기업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 우리의 성공 방식인 근면성실로 맞서는 데는 무리가 있다. 주말에 임원이 모여 혜안을 모색한다고 한들 이게 집단지성으로 확장될 가능성 역시 작다.

또한, 국내 기업이 직면한 위기가 과연 주 5일제에서 비롯된 이슈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국내 대기업은 격주로 주 4일 근무를 도입하고 있고 4.5일 근무를 적용한 IT, 콘텐츠 기업도 많다. 유연문화와 소통, 집단지성을 통해 조직의 기업가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 글로벌 위기 대응에 최적의 방법이라고 그들은 얘기한다. 삼성그룹이 관심을 기울일 영역은 R&D 투자에 있지 업무시간 확대가 아니다.

세계적인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2021년 아카데미 경영연구지에 창의성과 관련된 연구를 발표해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빡빡한 업무시간보다 여유와 사색 등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제공돼야 임직원의 창의성이 향상된다는 점을 그는 연구로 밝혔다. 업무시간 연장은 창의성, 혁신과 관계가 없다. 지금 삼성에 필요한 건 창의와 혁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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