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에 항공기까지 '구름씨' 살포…5년간 인공강우로 산불예방 실험

이채린 기자 2024. 5. 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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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비상을 준비하는 인공강우용 드론. 기상청 제공

"드론 이륙 시작!" 지난 3일 해발고도 823m 대관령에 자리한 강원 평창군 '구름물리선도센터' 실험장에서 드론 한 대가 굉음을 내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 드론은 인공강우용 드론으로 아랫 부분에 인공강우 유발 물질인 '구름씨'를 뿌리는 연소탄 2대를 장착했다. 목표 고도인 20m 상공에 도착하자 '탁' 소리를 내며 연소탄이 동시에 터졌다. 그러자 뭉게뭉게 하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약 5분 동안 연소통 한개가 단위공간 1cm2당 10만개에서 100만개의 구름씨를 하늘에 살포한 뒤 드론은 서서히 착륙했다. 

기상청은 지난 3일 구름물리선도센터, 강릉기상레이더, 양양공항에서 인공강우 실험 시연을 공개했다. 시연 현장에선 올해부터 2028년까지 산불예방을 목표로 인공강우 실험을 실시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했다. 이용희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기상응용연구부 부장은 "지난해보다 인공강우에 약 38억원 예산이 증액돼 올해는 약 73억원을 배정받았다"고 밝혔다. 

● 올 6월 인공강우용 전용 항공기 도입 

인공강우란 구름 속에 구름씨를 살포해 구름입자가 인위적으로 성장하게 만들어 눈과 비가 내리게 유도하는 방법이다. 영하의 날씨에는 구름 속에 얼음 결정이 있다. 이때 요오드화은, 드라이아이스를 구름씨로 뿌려주면 이 구름씨가 주변 얼음결정을 자기 몸에 끌어들여 붙이면서 점점 크고 무거워져 눈이나 비로 내린다. 영상 기온에는 염화칼슘, 염화나트륨이 구름 속에 많은 수증기를 잡아당겨 물방울 크기를 키워 비로 떨어지게 만든다. 

인공강우용 드론이 상공에서 연소탄을 터뜨리고 있다. 기상청 제공

인공강우용 드론은 인공강우 실험에 사용되는 여러 장비 중 하나다. 이밖에 지상에서 구름씨를 뿌리는 지상 연소기, 기상항공기 '나라호' 1대가 사용된다. 1년에 2, 3번 공군수송기와 협력하기도 한다. 이날 드론 시연을 진행한 차주완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기상응용연구부 연구관은 "평소 1km 내외까지 드론을 띄워 인공강우 실험을 한다"면서 "기상항공기에 비해 드론은 조종하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어디서든 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개의 장비를 동시에 사용하면 인공강우 효과가 커진다. 이날 드론 시연에 앞서 지상 연소기를 작동했다. 지상 연소기는 드럼통에 위로 기다란 관이 달린 형태다. "지상 연소기 작동"이라는 차 연구관의 말과 함께 '툭' 소리가 나더니 5초 뒤에 관에서 흰 연기가 뭉게뭉게 나왔다. 실험기 안에 염화칼슘을 탑재한 연소탄 12개가 터진 것이다. 염화칼슘 입자는 하늘로 올라가 물방울을 키운다.  

이날 비는 발생하지 않았다. 인공강우는 뿌린 구름씨에 수증기가 엉겨 붙어야 빗방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구름이 있어야만 활용할 수 있다. 건조하고 맑은 날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2일 대관령은 최고기온 21.7℃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였다. 차 연구관은 "지난해 10월 50m 상공에서 드론으로 구름씨를 뿌리자마자 구름이 만들어지는 현상을 관측했다"면서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상청 기상항공기 '나라호'. 기상청 제공

3일 기상청은 양양공항에서 인공강우 실험에 활용되는 나라호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철규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 관측연구부 부장은 "나라호는 계절별 태풍, 집중호우 등을 관측하는 '위험기상 선행관측', 미세먼지나 황사를 관측하는 '환경기상 감시', '온실가스 감시', '구름물리 관측과 인공강우 실험' 4가지 임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길이 14.22m, 폭 17.65m, 높이 4.37m인 나라호는 일반적인 소형 항공기지와 다르게 내외부에 임무를 위한 여러 장비가 달려 개조됐다.   

나라호에 연소탄 12개가 한쪽 날개에 달려 있다. 기상청 제공

인공강우 실험을 위해 오른쪽, 왼쪽 날개 아래에 각각 연소탄 12개 총 24발을 달 수 있는 거치대가 있다. 드론의 탑재용량의 12배다. 아랫 부분에도 연소탄을 태울 수 있는 또 다른 장치가 설치돼 있다. 나라호의 장점은 인공강우 실험을 하는 동시에 구름이 잘 만들어지는지 관측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라호 오른쪽 날개에는 강수입자, 구름입자를 관측하는 기다란 기기가 탑재돼 있고 왼쪽에는 상층수증기량 등을 관측하는 기기가 있다. 이 부장은 "나라호로 실험하면 구름씨를 뿌려 바로 강수입자가 서서히 커지는 모든 과정을 관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기를 채집하는 연통. 이채린 기자

외부 위쪽 상단에는 10여 개의 날렵한 연통이 있었다. 지나치는 공기를 빨아들여 채집해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 나라호 내부는 오른쪽과 왼쪽에 여러 관측장비가 설치돼 있어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폭이 좁았다. 내부에는 구름이 될 수 있는 입자를 미리 측정할 수 있는 장비도 있었다. 

여러 관측장비로 내부가 좁아 통로는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크기다. 이채린 기자

나라호의 한계는 인공강우 전용이 아니라는 점이다. 1년에 100~110번 운행되는데 이중 4분의 1 정도만 인공강우를 만드는 데 쓰인다. 올해 6월 기상청은 구름씨를 뿌리는 인공강우 전용 항공기 2대를 임차해 인공강우 실험을 본격화한다. 이 항공기는 하나에 연소탄 48발을 달 수 있다. 2대를 동시에 운행하면 나라호 1대에 비해 탑재용량이 4배로 늘어난다. 인공강우용 고정익 드론 1대도 자체적으로 개발한다. 기상청은 이들 장비를 동시에 사용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강원 및 경북 동해안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 효과는 아직 미지수 

기상청에 따르면 43개국에서 인공강우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대표적인 곳은 미국, 태국, 아랍에미레이트 등이다. 지난달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하루새 2년치 폭우가 쏟아졌을 때 "인공강우 탓"이라는 주장이 나온 건 아랍에미레이트가 20년 넘게 인공강우를 만들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 인공강우가 실용화가 가능한지 실험하는 단계다. 1963년 국내 최초로 인공강우 실험을 시작했지만 60여 년이 지난 2020년 인공강우 기술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올해부터 5년간 본격적으로 인공강우 실험 횟수를 늘려 인공강우 기술을 축적할 예정이다.

인공강우의 첫 번째 목표는 산불 예방에 효과가 있는지 가늠하는 것이다. 기상청 측은 "산불 진화가 아니라 인공강우를 내리게 함으로써 겨울철에 눈을 많이 쌓아두거나 땅을 촉촉하게 적셔 산불 예방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대기오염 정화, 가뭄 해결 등이 가능한지 알아본다.

현재 기상학계에서 구름씨 파종 효과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이 있다. 인위적으로 구름씨를 이용해 인공강우를 만들 수는 있지만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기상청도 2019년 인공강우로 미세먼지 저감을 할 수 있는지 실험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한 바 있다. 

유희동 기상청장이 2일 강릉 기상레이더에서 인공강우 계획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있다. 기상청 제공

기상청은 미래를 위해 인공강우 실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인공강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 축적을 한 뒤 기상을 어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재난 방지에 드는 비용을 눈에 띄게 줄일 수 있다"면서 "인공강우는 꿈의 미래를 앞당길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가뭄에 시달리는 미국 서부나 중동의 사막 국가들도 빗물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거액의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인공강우 실험을 할 때마다 물방울을 채집해 성분 분석을 한 뒤 인공강우로 인한 것인지 계속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공강우 속 인공물질이 환경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이 부장은 "현재 실험 뒤 내린 물방울을 회수해 한국환경공단에 성분 분석을 의뢰하고 있는데 염소 등의 불순물 농도가 위험 기준치에 비해 매우 낮아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올해 기상청은 한국 강수 특성에 맞는 구름씨 물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한다. 현재 해외 사례처럼 요오드화은, 염화나트륨 등을 구름씨로 사용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구름씨 신물질을 만든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한반도 구름 특성을 먼저 조사한 뒤 '구름물리실험챔버'에서 어떤 모양과 어떤 원소로 구성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강수를 내릴 수 있는지 개발하고 있다. 구름물리실험챔버란 온도, 기압, 습도 등을 제어해 구름과 눈 입자의 생성·성장·소멸을 연구할 수 있는 인공 실험 장치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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