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강아지 머리 때린 유치원 교사…“이 정도는 동물학대 아니다” 판결 [법조인싸]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5. 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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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애견유치원 근무하던 교사
3kg 포메라니안 체중 측정 도중
휴대전화로 머리 때리고 짓눌러
1심선 동물학대 유죄 벌금 선고
2심선 “잔인한 학대는 아니다”
3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4 서울 FCI 국제 도그쇼’에서 핸들러와 강아지가 경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4살짜리 포메라니안 반려견 ‘우리’를 키우는 A씨는 최근 우리의 이상행동을 자주 관찰하게 됐다. A씨가 스마트폰을 들면 옆에서 턱을 괴고 편히 엎드려 쉬던 우리가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손을 들 때도 우리는 이따금씩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은 우리가 매일 다니던 애견유치원을 다녀온 이후 더 잦아졌다. A씨는 우리가 매일 가는 애견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됐다.

부산에 위치한 애견유치원 폐쇄회로(CC)TV를 직접 확인한 A씨는 충격에 빠졌다. 가족과 같은 우리가 애견유치원에서 학대를 당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2022년 5월16일자 CCTV 영상에는 애견유치원 교사 B씨가 누리의 체중을 측정하는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에 따르면 B씨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우리의 머리를 휴대전화로 가격했다. 얌전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우리의 몸을 들어올려 흔들었고, 우리의 뒷목에 손을 대고 바닥으로 누른 뒤 다른 손바닥으로 머리 부위를 가격했다.

A씨의 경찰 신고로 수사가 시작됐다. 애견유치원 교사 B씨와 운영자 C씨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C씨에게는 자신이 고용한 B씨가 우리에게 정당한 사유 없이 신체적 고통을 주면서 학대한 행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주의와 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 과정에서 B씨와 C씨는 우리를 학대한 적이 없고 학대의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촬영된 CCTV 영상과 A씨가 제출한 사진 등 증거자료를 종합해 판단할 때 B씨가 우리를 학대한 사실, C씨가 B씨의 학대 행위 방지를 위한 사전조치를 하지 않은 사실 등이 모두 인정된다고 보고 이들에게 각 100만원 벌금형을 선고했다.

1심은 “몸무게가 3㎏ 정도에 불과한 우리는 B씨로부터 폭행을 당하자 많이 놀라는 모습을 보였고 체중 측정이 끝나자 곧바로 B씨로부터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며 “우리를 통제하기 위한 행위임은 인정되나 이 사건 행위는 정당한 수준을 넘어 우리에게 과도한 신체적 고통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유죄 인정 판결에 A씨는 한시름 놓았지만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B씨와 C씨가 불복했기 때문이다. 피고인들의 항소로 이어진 2심 재판의 판결은 A씨에게 다시 한 번 상처를 줬다. 2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머리를 가격하는 등 행위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나 동물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동물학대 규정’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본 것이다.

동물보호법은 ‘누구든지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신체·재산 피해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에 대해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시행규칙 제4조 제6항 제4호는 ‘동물의 사육·훈련 등을 위해 필요한 방식이 아님에도 다른 동물과 싸우게 하거나, 도구를 사용하는 등 잔인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근린공원 농구장에 설치된 강남구 반려견 순회놀이터에서 한 견주가 강아지와 함께 놀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2심은 이 사건 B씨의 행위가 ‘잔인한 학대 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잔인은 사전적 의미로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진 것’을 뜻하는데 잔인성에 관한 논의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상대적·유동적으로 변한다”며 “B씨가 이 사건 행위 이후 더 이상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은 점 등을 우리 시대 사회통념에 비추어 보면 다른 동물과 싸우게 하거나 도구를 사용한 것에 비견할 정도의 ‘잔인한 방식’으로 신체적 고통을 줬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동물보호법 위반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과 검찰 양 측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반려견에게 잔인한 방식으로 고통을 줬느냐 아니냐 하는 부분이 이 사건의 쟁점”이라며 “공소사실 내용을 글로만 보면 잔인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CCTV 등을 통해 실제로 B씨가 한 행동을 보면 강아지를 통제하기 위한 행위로 잔인한 학대까지는 아닌 것으로 법원이 후속 판단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씨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관계에 대한 정도의 차이를 법원들이 다르게 본 것 같다”며 “만약 휴대전화를 벽돌이나 흉기처럼 사용해 머리를 찍는 수준이었다면 잔인한 학대 행위라는 점이 인정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는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을 좀 더 촘촘히 하고 수위를 강화하기 위한 양형기준을 신설할 예정이다. 양형위는 다음 달 동물학대범죄 관련 양형기준 설정안을 심의하고 올해 11월 이를 최종 확정한다.

양형위 관계자는 “동물학대 사건 발생 빈도가 증가하고 있고 동물의 생명권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동물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고 동물학대 범죄자에게 책임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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