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700년간 청소한 ‘월-E’... 최강 성능 청소로봇은 역시 중국산일까[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5. 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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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21] 영화 ‘월-E’

오늘은 영화로 경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성비’의 시대가 열리며 로봇청소기도 각광받고 있습니다. 돈을 좀 더 쓰더라도 가사에 투입할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소비로 여기는 건데요. 100만원을 넘나드는 로봇청소기를 구입해서 청소 시간을 하루 30분씩 아끼면 1년에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생기는 거니까요.

전 세계적으로 로봇청소기가 시간을 아껴준다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시장도 나날이 커집니다. 시장조사업체 포천 비즈니스 인사이츠에 따르면 전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 규모는 매년 27%씩 성장해 2032년 70조원에 달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 로봇청소기 시장 또한 2021년 2100억원에서 지난해 4300억원으로 2배 이상 불어난 것으로 추산됩니다.

영화 ‘월-E’는 청소로봇 월-E의 이야기를 담았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
픽사 영화 ‘월-E’는 700년 후 지구에 홀로 남은 청소로봇 월-E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혹시 월-E는 어느 나라에서 만든 로봇일까요? 영화에서는 이 로봇의 생산 회사가 ‘바이 앤 라지’로 등장하는데요. 혹시 바이 앤 라지가 중국 가전 업체를 통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형식으로 제조한 건 아닐까요?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입니다만, 최근 로봇청소기 시장 동향을 보면 그럴 수도 있을 듯합니다. 중국산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거든요.

오늘은 영화 ‘월-E’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로봇청소기를 비롯해 그 안에 담긴 여러 경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무인행성 지구에서 700년 동안 청소한 ‘월-E’
사람이 더 이상 살지 않는 ‘무인 행성’ 지구. 그곳에서 월-E가 혼자 청소하고 있습니다. 월-E는 폐기물을 모아 육면체로 압축하는 청소로봇인데요. 700년 전 ‘지구 대청소’에 투입됐으나 끝내 대청소에 실패하면서 지구에 홀로 남게 됐습니다. 월-E는 수백 년 동안 해온 일인 만큼 질릴 이유도 없다는 듯 묵묵히 청소합니다.

그러나 월-E는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청소하던 도중 만난 벌레를 애지중지 다루기도 하고요. 700년 전 인류가 남겨둔 로맨스 영화 ‘헬로, 돌리!’를 보며 사랑이란 어떤 감정인지 궁금해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월-E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궁금해하게 만든 영화는 ‘헬로, 돌리!’다. 1969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사랑은 비를 타고’를 연출해 뮤지컬영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진 켈리 감독이 연출했다. [IMDb]
월-E는 영화 속에서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남녀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런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에 빠지는 듯한데요. 그 순간, 거대한 모래폭풍이 불어와 몸을 잠시 숨겼다가 충격적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월-E는 식물 탐사 로봇 이브의 아름다움에 시간이 멈추는 듯한 경험을 한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
그곳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로봇이 있었습니다. 움직임이 조금만 큰 물체만 봐도 레이저빔을 발사해서 파괴할 정도로 공격적이긴 하지만, 공격성마저 그 로봇의 아름다움을 가리지 못했는데요. 월-E는 용기를 내서 낯선 로봇에게 다가가고, 그 로봇의 이름이 이브라는 걸 알게 됩니다. 월-E는 본인에겐 관심도 없는 이브를 졸졸 따라다니는데요. 이브도 월-E를 파괴하거나 내치지 않는 것으로 봤을 때, 싫지만은 않은 내색입니다.
그는 그저 문득 외로워졌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
이브는 700년 전 지구를 떠난 인류가 다시 지구에 보낸 식물 탐사 로봇입니다. 이브는 식물을 발견하면, 인간이 타고 있는 초거대 우주선에 해당 정보를 알리는 임무를 맡았는데요. 지구를 청소한 끝에 드디어 살 만한 공간이 됐다고 알리는 것이죠. 실제 이브는 지구에서 식물을 발견해 우주선으로 해당 정보를 전송합니다.

그렇지만 지구 대청소에 성공했다는 정보를 받아들인 인류, 어쩐지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데요. 지구를 떠난 지 700년이 지나면서 그들은 지구가 어떤 곳인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과연 두 로봇은 지구를 전혀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지구로 데려갈 수 있을까요. 나머지 내용은 OTT에서 확인해 보시죠.

영화에서 그리는 700년 뒤 인류의 모습. 로봇이 모든 일을 해주면서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어졌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
중국산은 저가? 150만원대 고가에도 잘 나가는 로보락
‘월-E’와 관련해서 로봇청소기 시장 현황을 들여다보기로 했는데요. 현재의 시장 추세가 지속된다고 했을 때, 월-E 또한 중국에서 만든 청소로봇일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 이 영화에서 월-E는 이브에 비해 영어 실력이 달리는 걸로 나오는데요.

이를테면 이브라는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 ‘이바’라고 하기도 하죠. 이브에 비해 구형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겠는데요. 어쩌면 모국어가 중국어였기 때문은 아닐까요? 중국어를 시키면 갑자기 청산유수처럼 말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뒤의 로봇청소기 이야기로 넘어가기 위한 반쯤 농담으로 받아들여 주시면 좋겠고요.

두 로봇의 사랑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선호받는 로봇청소기가 중국산입니다. 우리나라 시장만 봐도 로보락이라는 중국 업체가 꽉 잡고 있는데요. 이 회사는 2020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뒤 매년 2배씩 매출을 키우며 지난해 20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지난달엔 서울에서 신제품 론칭쇼를 개최하기도 했고요. 로보락을 포함해 3개의 중국 회사가 국내 로봇청소기 소비자 사이에서 ‘3대장’으로 불립니다.

중국 회사가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선전하는 양상은 기존 중국산의 판매 공식과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중국산은 한국산 대비 저렴한 가격을 중심으로 경쟁하는데요. 중국 로봇청소기는 한국산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높은 가격이 책정됐는데도 잘 팔린다는 게 특징입니다. 쓸고, 닦고, 걸레를 빠는 일까지 알아서 하는 ‘올인원’ 기능으로 소비자 마음을 훔쳤죠. 발달한 자율주행과 AI(인공지능) 기능을 통해 혼자서도 청소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50만원을 넘나드는 데도 인기를 끈 이유입니다.

반면, 한국산에 대해선 구석에서 길을 잃고 혼자 헤매고 있어 ‘짠했다’는 식의 사용자 후기가 많았습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표 가전 기업이 올인원 기능을 오랜 기간 내놓지 못했던 것도 중국산에 비해 열위에 놓이는 원인이 됐죠. 다만, 삼성전자가 지난달 출시한 올인원 로봇청소기가 초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고, LG전자도 조만간 일체형 제품을 내놓는다고 하니까요. 국내 가전 회사의 반격이 소비자 선호 순위 변화로 이어질지 두고 봐야겠습니다.

롯데백화점 인천점에서 진행한 로보락 청소기 팝업 스토어에 고객들이 몰려 있다. [롯데백화점]
중국 로봇 질주 어디까지 지속될까
청소로봇을 넘어 ‘글로벌 AI 전쟁’이라는 더 넓은 차원에서 보시죠. 중국의 로봇·AI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르다 보니 선진국 사이에서는 경계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이 대중 제재에 나서면서 중국에선 AI 기술 상용화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엔비디아 그래픽 처리 장치 등 첨단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한 영향입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선 엔비디아 밀수시장까지 생겼다고 하니, AI 패권을 잡으려는 초강대국의 경쟁이 어디까지 지속될지도 관심 포인트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미국 정부가 대중 첨단 반도체 규제에 나서자 중국 내에는 엔비디아 밀수 시장까지 등장했다. [엔비디아]
지루함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오늘은 ‘월-E’를 통해서 로봇청소기 시장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이 영화에는 로봇 산업 발전 외에도 폐기물 처리와 AI에 의한 인간 소외 등 다양한 경제 현상을 엿볼 포인트가 있는데요.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자극 중독을 다루는 영화의 시선이 인상적입니다.

우주선 안에서 살아가던 미래 인류는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홀로그램 영상만 보는데요. 로봇과 우연히 충돌하면서 홀로그램 영상에서 벗어나 창밖에 펼쳐진 우주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사실 늘 옆에 있었는데 영상을 쳐다보느라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거든요. 우리가 지루함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일상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두 로봇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에 적용해 볼 여러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월-E’ 포스터. [월트 디즈니 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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