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통과? 폐기?… 기로 선 고준위 특별법 [기후가 정치에게]
산자위 합의는 시간문제라지만
정국 냉각에 불똥 튈 수도
27일 혹은 28일 본회의 ‘마지막 기회’
기회는 단 한 번 남았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시설 특별법(고준위 특별법) 얘기다.
21대 국회 임기가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임기 종료 하루 전 열리는 본회의(27일 혹은 28일)에서 고준위 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윤 원내대표 설명대로라면 양당 원내대표 간 합의가 있는 만큼 산자위 문턱만 넘으면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새 국회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 강행 처리로 정국이 다시금 얼어붙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국회 의사일정 협조 불가’까지 선언한 터다. 산자위-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를 차례로 거쳐야 하는 고준위 특별법의 앞길이 험난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관리 시설이 따로 없어 전부 원전 부지 내 저장 중이다. 불과 5년 뒤인 2029년 한빛·월성원전을 시작으로 2030년 한울원전, 2031년 고리원전, 2043년 신월성원전 등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포화가 시작될 거란 전망이 나오는 터다(2018년 12월 방사성폐기물학회 연구용역 결과 기준). 더는 처분시설 건설 추진을 늦출 수 없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더욱이 특별법이 공포된다고 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을 짠하고 바로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는 부지 선정 착수 후 무려 ‘20년’ 내 중간저장시설을, ‘37년’ 내 영구처분시설 확보를 목표로 내놨다. 그러니 특별법 내 근거로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용량을 늘려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 정부가 시설 확보에 손놓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전두환정부 때인 1984년 방사성폐기물 관리대책 의결을 시작으로 경북 울진, 영덕, 영일 등 3개 지역을 후보 부지로 정하고 조사에 착수했다가, 노태우정부 시절인 1989년 지역사회의 격렬한 반대 운동에 무산됐다. 이런 부지 확보 시도만 해도 총 9차례가 있었고 하나같이 실패했다. 다만 2004년 원자력위원회가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을 분리해 추진하기로 의결한 이후 2005년 경북 경주를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시설 부지로 최종 확정해 현재 운영 중인 게 성과라면 성과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발목을 잡은 건 결국 ‘원전 논쟁’
사정이 이런데 21대 국회는 4년간 뭐하다가 임기 막바지 들어서야 부랴부랴 고준위 특별법 처리에 나선 거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실 국회는 2021년부터 꽤 부지런히 고준위 특별법을 논의해왔다. 여야 협의가 이토록 지체된 건 근본적으로 원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서다. 탄소중립이 지상과제로 떠올라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해진 현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원전을 계속 가져가야 할 에너지로 보는 데 반해 야당은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다리’ 정도로 평가하는 시각이 짙다. 산자위 여야 위원들이 고준위 특별법 내용 중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 용량을 두고 약 2년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것도 결국 이런 맥락에서다. 쉽게 말해 정부여당에선 이 용량을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놓고자 했고 야당은 엄격하게 제한하고자 한 것이다.
고준위 특별법에 대한 산자위 마지막 정식 회의인 지난해 11월22일 산자위 소위 회의록 내 민주당 김성환 의원의 발언을 보면 이런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김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고준위 특별법 중 1건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는 당시 소위원장인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오랜 기간 논의를 해온 만큼 위원 모두에게 각자 ‘최종적 입장’을 한 번 정리해달라고 요청해 나온 발언이었다. 김성원 의원은 김성환 의원 등 위원들의 입장을 모두 들은 뒤 “실무적으로 쟁점을 논의하는 건 이미 수많은 논의를 통해 많이 진행했다. 앞으로 더 논의한다고 해서 쟁점이 해소되리란 기대가 별로 없다”며 “이건 여야 지도부 간에 큰 정치적·정무적 타결이 필요하다”고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실제 이 말대로 고준위 특별법은 결국 산자위 내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최근 여야 원내지도부의 논의 테이블에 올랐고 정부여당의 적극적인 설득 끝에 민주당 홍익표 전 원내대표가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 처리하기로 결단했다. 홍 전 원내대표는 3일 박찬대 의원에게 원내대표직을 넘기고 임기를 마무리한 상태다. 그는 본회의가 열렸던 2일 오전 CBS 라디오에서 고준위 특별법에 대해 “굉장히 국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다. 이미 쟁점도 상당 부분 해소가 됐다”며 “(채 상병 특검법이) 일단락되면 저는 도리어 (고준위 특별법 등) 산자위 관련 주요 법안 등이 (2일 본회의 이후) 한 20여일 논의해서 잘 마무리하면 27일이나 28일에 열리는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 전 원내대표 측은 최근 통화에서 정책위의장과 산자위 야당 간사 측에 고준위 특별법 처리를 위한 협조를 이미 당부해놓았다고 전했다.
국민의힘도 채 상병 특검법 변수가 있긴 하지만 산자위 내 합의 자체는 ‘시간 문제’인 만큼 21대 국회 임기 종료 전 본회의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산자위 여당 간사인 김성원 의원은 3일 통화에서 “2일 본회의에 올리지 못한 건 민주당이 법안 자구심사를 이유로 시간을 좀 달라고 요청해서였다. 민주당이 산업부 등과 그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며 “따로 민주당 위원들하고 얘기도 했는데 (본회의 처리 가능성이) 아예 꽉 막혀있는 상황은 아니였다”고 설명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검토보고(2021년·국회 산자위 채수근 수석전문위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록(2023년11월22일)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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